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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게시물ID : humorbest_24258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무서
추천 : 20
조회수 : 1904회
댓글수 : 7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9/08/13 20:47:43
원본글 작성시간 : 2009/08/12 10:30:25


만약에 신이있다면, 제 소원을 한가지만 들어주십시오. 예, 비록 잘한일 하나 한적 없는 놈이지만 제 소
원 한가지만 들어주십시오. 참, 소원을 말하기전에 고백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쁘신 몸이시겠지만 한
번 들어나 봐주십시오.



전 어렸을때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나는 꼭 커서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다른 길로 빠지지않고 열심히 공부했고, 어느정도 이름있는 명문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게 되었습니
다. 



공부해서, 돈도 많이 벌어서 나같이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는 아이가 없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죽자사자 
공부했습니다. 때문인지 패션감각이란 전혀없었고 얼굴도 평범한축에 간신히 끼는 외모여서인지 이성친
구라곤 상상도 못하고 커왔습니다. 술자리엔 한번도 껴본적이없고 MT조차 가본적이 없었기 때문일수도 
있었겠지요. 하기사 뿔테안경에 커다란 배낭가방에 책을 꽉 체우고 다니는 제게 누가 가까이 하고싶었을
까요..



그런제게 말을 걸어준 여자가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여자였습니다. 대학교에와서 처음으로 이야기한 이성
이었죠. 도서관에서 만났습니다. 공부를 하고있는데 옆에앉아있던 그녀가 제가 공부하는걸 보더니 이것
저것 물어보더군요.. 여자가 말을 걸어주는게 그것도 아름다운 여자가 말을 걸어 주는게 너무나도 떨렸
지만 최대한 침착한 척 친절하게 알려주고 이야기도 이것 저것 나누었고 결국엔 점심까지 같이 먹게 되
었죠 처음으로 남자가 아닌 이성과 둘이서 먹는 식사였습니다. 포크와 나이프 다루는 법을 잊어 버릴 정
도로 떨렸죠. 



그렇게 식사를 하고 헤어진후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그녀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매일 같이 식사하고 같이 
공부했죠. 대화도 나누었고 공감도 나누었고 같은시간을 나누었습니다. 어느날이었습니다. 그녀가 제게 
말했죠.




"내일 영화보러 갈래?"




못 갈 이유가 어디있겠습니다. 무조건 가겠다고 했죠. 그날 난생 처음으로 정장을 샀습니다. 턱도없는 알
바비에서 정장이라니.. 고민했지만 결국 사게되었죠. 아마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에게 푹 빠져버렸나 
봅니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다음날 허겁지겁 일어나 약속시간에 어제 산 정장을 입고 나갔습니다. 두근
대는 마음을 감출수가 없더군요. 그녀가 도착해 같이 영화관 티켓을 살때에는 약간의 우월감마저 느끼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본 날 이후로 그녀와 전 더욱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결국엔 사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저를 그녀는 이리저리 끌고다녔습니다. 공부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고, 영화보는시간
과 그녀를 위한 쇼핑을 하는 시간이 늘었고, 그녀를 위해 뭐든 해주고싶은 마음에 제 알바시간도 늘어났
습니다. 멍청하게도 전 그게 행복인줄알았고 행복이었습니다.



이것저것 그녀가 원하는건 다 사주었고 그녀가 원하지 않는것도 다 사주었습니다. 전 그게 그녈위한 진
정한 사랑인 줄 알았죠. 그러다가 이제 그녀는 노골적으로 내게 모든것을 원했고, 전 그녀의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랬죠 그게 사랑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다 결정적인 날이 오고야 말았죠.



알바가 끝난뒤 집에 가고있던 차였습니다. 새벽내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침 6시가 되어서야 
나오는길에 저멀리 모텔에서 한쌍의 커플이 나오더군요. 처음엔 눈길도 안갔었는데 여자쪽이 많이 낯이 
익은 얼굴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여자가 어디있었겠습니까. 바로 그녀였죠. 제가 사준 옷, 귀걸이, 가방
, 구두... 그 모든것을 하고 다른남자를 만나는 그녀를 보게 되어 버린 것이죠. 머리가 터져버릴듯이 분
노가 일어났지만 소심한 성격의 저는 전봇대 뒤에 숨어 그둘이 지나가는걸 기다리는 일밖엔 하지 못했습
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와 헤어지자는 문자를 보낸 뒤 몇일을 집안에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 만약 그녀가 날 붙잡으러 와준다면 하고 바랬었습니다. 빌고 빌었습니다. 하다못해 
문자로 답장이라도 보내주길 빌었죠. 허나 그녀는 오지 않았고, 답장조차 없었죠. 제가 다시 집밖으로 
나오게 된 이유는 갈수록 나를 옥죄어 오는 상상. 내가 사랑했던 그녀가 다른남자의 밑에 깔려 달뜬 신
음소리를 내고 있다는 상상.. 오직 그 이유하나만으로 현관문을 열게되었죠. 근 10일만에 밖으로 나와 
맞이한 빛은 너무도 강렬했습니다. 빛이 강렬한 만큼 제 살의도 강렬해졌습니다. 



길을 걸었습니다. 일단 그녀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만에하나 그녀가 내게 용서를 
구한다면 용서해주리라는 다짐과 함께요. 전화를해서 그녀의 집 앞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홀로 
테이블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긴장때문에 차분히 앉어있지못하고 안절부절 하고있었습니다. 그때
였죠 




'딸랑'




그녀가 들어왔습니다. 커피숍에요. 잠시 두리번 거리더니 제앞에 앉았습니다. 그녀는 저를 처음 만나던
때와 많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날 보는 시선이나 눈빛은 완전히 다른사람이 되어있었죠. 벌레를 볼때나 
저런 눈빛을 할까요.. 꾹 참고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그남자는 뭐고, 왜 연락한번 없었냐고요. 지금생각
해도 제가 너무 구차하단 생각이 듭니다만 그땐 너무도 절박했습니다.


그녀가 말하더군요.



"그남자? 아, 봤구나? 내남자친구야. 연락? 내가왜해야해? 그리고 너 이거 좀 너무하지않냐? 병신같이."



정말 100톤짜리 망치로 뒤통수를 후려맞은것같은 충격이었습니다. 너무도 그렇게 쉽게 이야기 할줄은 꿈
에도 몰랐기 때문이죠. 배신감과 수치감때문에 얼굴은 벌겋게 물들었고, 손은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떨
리는 손으로 물컵을잡아 억지로 목구멍 너머로 물을 밀어넣었습니다. 그녀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물
었습니다. 나에대한 감정은 모두 거짓이었냐고,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병신. 내가 이럴줄알았어. 내가 너까짓걸 왜사랑해? 사랑해 준 척 한거지. 그것만으로도 너같은 놈한
텐 과분이야. 그댓가로 난 선물좀 받은거구. 왜 이거 뺏아가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가 사준 가방을 제 눈앞에 흔들어 보이더군요. 역겨웠습니다. 세상이 역겨웠고,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가방이 역겨웠고, 가방 뒤에서 미소짓고 있을 여자가 역겨웠습니다. 동시에 어
마어마한 분노때문에 이성을 잃었죠. 앞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허나 빌어먹을 귀는 여전히 잘만 들리더
군요.



"잘 있어 멍청아, 난 가볼테니까. 계산은 알아서 하라구"



그녀가 나가더군요. 너무도 화가나서 어찌할바를 모르다가 계산을 하고 그녀를 몰래 뒤따라 갔습니다. 
횡단 보도였습니다. 그녀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더군요. 그녀의 뒤에 몰래 다가가 섰습니다. 빨
간불이었죠. 멀리 커다란 트럭이 빠른 속도로 달려 오더군요. 신 께서도 예상 하셨겠죠. 



네. 밀었습니다. 
그녀는 마치 가벼운 인형마냥 날아가 도로 한복판에 처박히더군요. 제가 사준 옷, 귀걸이, 가방, 구두 
모두를 자신의 피로 물들이면서요. 하지만 돌아온건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었습니다. 집으로 도망쳤죠. 
다시 방구석에 처박혀 몇날 몇일을 홀로 지냈습니다. 그러다 문득 후회가 되었습니다. 후회했습니다. 
그녀를 그렇게 간단히 죽이는게 아니었습니다. 잠깐의 분노때문에 그녀를 너무도 쉬이 보내버렸습니다. 
다시한번 생각해 보았어야 했습니다. 



만약에 신이있다면, 제 소원을 한가지만 들어주십시오. 제게 기회를 한번만 더 주십시오. 제 모든것을 
앗아가도 좋으니 다시 한번 그녀가 죽기 전의 시간으로 돌려주십시오.



너무나도 쉽게 보내버린 그녀를,





다시한번 죽일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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