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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anic_2338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2ss2s★
추천 : 3
조회수 : 1864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1/15 01:08:50
귀신은 실제로 존재하는것인가 아닌가 하는 물음은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음직한 이야기이다.
이제와서 이러한 진부한 질문을 새삼스럽게 다시 언급하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어쨌거나 누군가가 '그럴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그런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에게는 그런 질문은 괜시리 마음을 답답하게만 할 뿐이다.
귀신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이 질문을 처음 들었을때는 내가 중학교 3학년때 였다.
나는 당시에 가장 유행하던 프로그램인 '전설의 고향' 의 진위 여부를 놓고 친구들과 한참
논쟁하고 있었다.
"야 웃기지마. 귀신이 어딨냐? 달나라에 사람이 가는 시대에 뭔 개소리를.."
이렇게 강하게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나선 친구는 준호(가명) 라는 친구이다.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인상을 가지고 있고, 기(氣) 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얼핏 보기에도 참 기운이 쎄게 생긴 얼굴이다.
준호는 친구들이 귀신얘기를 할때마다 언제나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그날도, 준호가 아마
친구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한참 늘어놓고 있을 때였을 것이다.
"야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라. 귀신이라는게 진짜로 존재한다는게 말이 되냐? 눈에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만질수도 없는 그런 존재를 믿으라고? 흥.. 눈에 보이지 않는건 존재하지 않는거야."
"임마! 그러면 귀신을 봤다는 사람이나... 가위눌림이나.. 그런건 어떻게 설명할건데?'
"그건 일종의 정신착란 같은거지. 정신병이라고. 가위눌림은 이미 수면장애라고 밝혀졌고."
"... ..."
그날도 어김없이 준호의 말에 다들 인정하고 수그러드는 눈치였다. 귀신은 없다, 존재하지 않는것이다.
그것이 우리들이 내린 최종적인 결론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자 우리들은 우리가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우쭐해지곤 했다. TV 에서 마구잡이로 방영되던 심령 관련 프로그램을 향해 우리는
중학생 답지 않은 시니컬한 비평을 하기도 했다. 그것이, 우리의 어처구니 없는 착각이었을 줄은.
그것은 아무도 생각치 못했다.
여름의 무더위가 한껏 기승을 부릴 즈음 해서야, 우리 학교는 방학을 했다. 방학! 얼마나 좋은 어감인가.
마음껏 늦잠을 자도 상관없고, 거의 두달동안은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마음껏 놀 수 있는 그런 휴가!
하지만 그런 무한한 자유에 얹혀진 숙제는 언제나 우리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내가 다녔던 학교의 전통 상, 3학년의 마지막 여름방학은 언제나 '자유과제' 를 선정해서 다른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 하이라이트 였다. 방학을 하던 날, 함께 어울려 다니던 나와 내 친구들은 이 마지막
자유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뭔가 기상천외하고, 기발하고, 다른 애들보다 확 앞서가는 그런 주제 어디 없나?"
"여름이고 하니까... 식물 관찰일기 이런건 어때? 금방금방 자랄텐데. "
"야.. 그런 주제에 누가 관심이라도 가지겠냐? 임팩트가 큰걸로 한방 콱! 해줘야지."
"그런게 뭐가 있는데?"
"그러니까 그걸 생각해 보자고..."
그렇게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생각하던 찰나, 누군가가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흉가 .. 조사는 어때?"
"뭐?"
"왜 있잖아.. 변두리쪽에 흉가 하나 있는거... 십년째 사람이 아무도 안산대나 뭐라나 하는 그곳."
"거기서 뭘 어쩌자구?"
"그러니까..음... 흉가 이야기 따위는 누군가 지어낸 거짓말에 불과하다! 이걸 입증하는거지. "
"흠...그럼... "
"조를 짜서, 흉가에서 캠프 같은걸 하는거야. 분신사바 같은거라도 해서 귀신을 부르는 의식도 해보고.
실제로 뭔가 반응이 있는지 없는지, 있으면 그걸로도 대박인거고. 없으면 그것도 괜찮구."
"반응이 없을게 뻔하잖아. 귀신은 없다고."
"밑져야 본전 아닌가?"
친구들은 처음 그 말을 꺼낸 친구에게 비웃음 섞인 웃음을 날려 보내면서도, 머릿속으로는 '괜찮은데'
라고 생각했었음이 틀림없다. 누가 뭐라고 반박할 새도 없이, 우리는 그 주제를 우리의 자유과제로
삼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럼, 22일 저녁 8시에 학교 운동장에서 만나서 같이 출발하는걸로 하자. 웅이 너는 후래쉬 좀 챙겨오구
선호 너는 A4 지랑 빨간 펜 같은거 준비해 오고. 각자 그날 밤에 먹을거랑 담요같은건 알아서 챙겨와.
나는 비디오 카메라랑 녹음기를 준비해 올게. "
준호의 일사불란한 지시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의 이런 자신감에 넘치는 행동들은 다른 친구들
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모두들 마음속으로 '준호가 있으니까 안심이야' 라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방학이 그렇게 시작되고, 열심히 놀다보니 어느새 시간은 우리가 약속한 22일에 가까워져 있었다.
준호는 22일 전날 저녁에 모두에게 전화를 돌렸고, 나도 준호와 전날밤에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지호야. 내일 알지? "
"어 그래 준호냐? 당연히 알고있지. "
"늦지말고 나와. 내 생각엔, 뭐.. 크게 문제될 건 없을것 같은데. 그냥 밤새 논다고 생각하자고"
"놀면서 숙제한다니, 괜찮은데?"
"풉... 어쨌거나 내일보자고~ "
"그런데 준호야. 거기 가서 뭘 어떡할 생각이야?"
"음... 뭐 그거야 뻔하지. 인터넷에 나와있는 귀신 부르는 방법들을 하나씩 차례로 해보는거지.
비디오 카메라는 우리를 향하도록 설치해 놓고 사진은 수시로 찍을거야."
"그렇게 해서 뭐가 걸릴까?"
"너 아직도 그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믿고 있냐? 아마 비디오나 사진에 찍힐 모습들은 우리가 반쯤
졸린 눈초리로 놀고있는 모습 뿐일걸. "
"후.. 그래 그럼. 내일 보자고"
그렇게 얘기는 했지만, 실상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이치였다. 열 여섯살 짜리는
남자건 여자건 똑같다. 무서운 것은 무서운거다. 낮에도 아무도 찾지않는다는 그 유명한 흉가에
중학생짜리 너댓명이 우르르 몰려가서 할 수 있는 것이라 해봐야 겁에 질려서 소리를 내지른다거나
도중에 도망쳐서 내빼는 일 뿐이리라. 물론, 준호가 있다면야... 얘기는 다르겠지만.
모든 친구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오만생각을 다 하는동안
나는 잠이 들었고, 순식간에 다음날 아침이 밝아올랐다.
내가 하는일은 간단했다. 아침을 먹고, 오후까지 늘어지게 놀다가 저녁에 준비물들을 챙겨서 학교 운동장
으로 찾아가는 일 뿐이다. 준비물이라 해봐야, 거창한 것도 없다. 약간 얇은 담요 한벌과 도중에 먹을
간식들. 나머지는 친구들이 준비해 올 것이다. 부모님께는 준호네 집에서 잔다고 말 해 놓고 나는
여유롭게 집을 빠져나왔다. 벌써 어둑어둑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여름이라 그런지 해가 평소보다 조금
긴 편이었지만, 해가 지고 나자 어둠은 의외로 급속도로 찾아들었다. 늘 가던 길이라 나는 어두워진
주위 풍경과는 관계없이 쉽사리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학교에는 벌써 웅이와 선호가 나와있었다.
"여어 지호왔냐? 먹을것좀 많이 챙겨왔어?"
"크크.. 걱정하지마라. 소풍갈때 싼 가방보다 무겁게 챙겨왔으니."
"...술은?"
"어쭈.. 설마 그걸 안챙겨 왔을까봐. 다 있으니 걱정하지 마셔. 근데 준호는?"
"어, 지금 올거야. 아까 출발하기 전에 연락 받았으니. "
우리들은 그렇게 서로의 긴장감과 두려움을 덜어내기 위해 시덥잖은 농담을 몇마디 주고받았고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준호는 양손에 짐을 가득 든 채로 나타났다.
"야야 많이 기다렸지? 준비물이 좀 많아서 말야. "
"뭘 그렇게 바리바리 싸왔어?"
"후후.. 오늘 연구의 핵심적인 아이템들이라고. 뭐 자세한건 가면서 설명해줄께. 일단 출발하자."
우리는 버스를 잡아타고 시내의 변두리로 향했다. 그 유명한 흉가는 변두리에 위치한 버스정류장에서
약 30분을 더 걸어 올라가면 나온다고 했다. 위치상으로 보면, 거의 인가가 없다고 봐도 무방한 그런
산 기슭에 위치한 집이었다. 주위는 허허벌판에 논과 밭들 뿐이었고, 여름의 밤바람이 살랑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약간 오한이 드는 것처럼 바르르 떨려왔다. 하지만 그런 표정이나 행동을 내색하면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감이 될게 뻔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계속 걸어가자, 우리의 눈 앞에
다 쓰러져서 바람만 불어도 넘어갈 것 같은 그런 낡은 나무 문이 눈에 들어왔다. 준호는 앞장서서 걷다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음.. 도착한거 같은데? 우선 정면에서 사진한방 찍고 들어가자. "
"휴... 야 이거 막상 와보니까 장난아니다..."
"왜 ? 무섭냐? 그래봐야 낡은 집일 뿐이야."
우리는 짐을 한쪽에 잘 모아두고, 낡은 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각자의 짐을 들고 집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삐이이이이 걱..
나무문은 살짝 밀었을 뿐인데도 금방이라도 박살 날 것처럼 기괴한 소리를 자아냈다. 마치 뭐랄까..
귀신이 내지르는 귀곡성 같은..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준호는 손전등으로 휘휘 주변을 비춰보더니
이내 맨 왼쪽에 있는 사랑채(로 추정되는) 에 손전등의 불빛을 고정시켰다.
"여기에 자리를 잡으면 되겠네. 우선 들어가서 우리가 쉴만하게 장비를 세팅해보자."
준호는 성큼성큼 그 사랑채로 들어가 문을 벌컥 열었고, 손전등이 비추고 지나갈 때마다 여기저기
부서지고 박살이 난 가재도구들이 이리저리 어지럽게 널부러진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준호는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가 발로 대충 그런 파편들을 치워내고 나서는 우리에게 손짓했다.
"올라와."
준호를 제외한 나를 포함한 친구들 두명은 쭈뼛쭈뼛 하면서도 준호의 그런 대범한 행동에 용기를 얻어
준호의 뒤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한의 공기는 묘하게 날카로운데가 있었다. 날이 바짝 선 칼날의
위를 걷는 것 같은 그런 긴장감이 맴돌았다. 준호는 방문을 닫고 다시 손전등을 이리저리 비춰보더니
이내 자신의 짐꾸러미에서 자그마한 기름 등을 꺼내었다.
"손전등으론 아무래도 느낌이 안 사니까 이녀석을 쓰자구."
준호는 기름등에 불을 붙였고, 손전등보다 더 으스스 한 불빛의 기름등의 심지가 파르르 하고 타올랐다.
준호는 기름등을 방 가운데에 놓고 친구들을 주욱 둘러보며 말했다.
"자리 깔고 앉어 일단. 조금 놀다가 자정이 넘으면 시작하자고. "
뻣뻣하게 굳어서 준호가 하는 행동을 보고만 있던 우리는 준호의 그말에 정신이 퍼뜩 들어서 자신들이
가져온 짐을 하나 둘 씩 풀었고 방안을 가득 채운 기름등의 불빛때문인지 조금은 친구들의 표정에
안도감이 감돌았다.
"뭐야.. 이름난 흉가래서 귀신이라도 바로 튀어나올 줄 알았더니 의외로 평범한데?"
"원래 이런 종류의 흉가가 다 그래 바보야. 들어갈 용기가 없을 뿐이지 들어오면 다 똑같지 뭐."
"으음... 그래도 이 방 밖으로는 별로 나가고 싶지가 않네. "
"뭐 어때서 그래?"
준호는 약간 긴장한듯한 선호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날렸고 선호와 웅이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어쩔수 없이 억지웃음을 지어보였다. 우리들은 자정이 되기 전까지, 서로의 바보같은 표정을 사진으로
찍어주거나 몰래 가져온 소주와 간식등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었다. 그렇게 놀고있는 장소가 흉가라는점을
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중학생들의 파티처럼 보였을 것이다. 한참 그렇게 웃고 떠들던 중
준호가 갑자기 스윽 시계를 한번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시작해도 될 거 같은데. 내가 비디오를 설치할 동안 니들은 분신사바 하게 종이에 좀 그려봐."
준호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짐더미에서 비디오 카메라와 세움대를 꺼내 조립하기 시작했고 선호와 웅이
그리고 나는 열심히 종이에다 한글의 초성, 중성, 종성, 숫자, 그리고 OX 표시를 크게 그려넣었다.
그렇게 투닥거리며 종이에 다 내용을 채우고 나자 비디오 카메라 설치를 끝마친 준호가 우리곁으로 와서
앉았다. 준호는 턱으로 비디오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부터 촬영되는 내용은 100% 리얼리티야. 비디오 테잎은 두시간정도 분량이니까 열심히 데이터를
수집하자구. 그리고 음성 녹음은 별도로 또 할거야. 자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웅이 넌 사진을
계속 찍어. 사진도 중요하다고."
웅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호는 박수를 소리내어 짝! 하고 한번 치더니 비디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장연중학교 3학년 2반 이준호, 박선호, 최웅, 김지호 조의 자유과제 연구를 시작하겠습니다.
저희 조의 연구 과제는 흉가 탐험입니다. 지금부터 하나씩 하나씩, 귀신을 부르는 의식을 거행할텐데요.
과연 귀신들은 우리의 부름에 응할 것인지? 흥미롭게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을 끝마친 준호는, 우리에게 찡긋 하며 신호를 보내었고 웅이와 선호는 그 신호를 따라
분신사바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분신사바... 분신사바... "
바로 그때였다.
쾅!!!!
"으악!!"
마당쪽에서 문을 엄청나게 세게 닫는소리가 들려왔고, 놀란 선호는 펜을 놓쳐버렸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선호는 물론이고, 웅이와 나는 입을 벌린채 밀려드는 공포감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오직 준호만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준호는 피식 하고 웃으며 말했다.
"뭐야. 그냥 대문이 열렸다 닫힌거 뿐이야. 바람때문에. 계속하자. 이거 흥미진진해 졌잖아?"
선호는 울먹울먹하는 목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별다른 말 없이 다시 펜을 잡고 분신사바의 주문을
외웠다. 그렇게 주문을 외우던 중, 웅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쳤다.
"와...왔어!"
"!!"
준호는 A4 지가 놓여진 자리에 바싹 다가와 앉았다. 그리고 웅이와 선호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뭐가 느껴지냐? "
"페..펜을 누가 잡고있는것...같아. 무..무서워. 흑흑.."
"좋아. 뭐가 대체 와 있는건지 물어보자. "
준호는 겁에질린 선호를 무시한 채, 웅이에게 눈짓을 보냈다. 웅이는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호...혹시 지금 오신분이 귀신이십니까?"
웅이와 선호가 마주잡은 손에 쥐어진 붉은 펜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O 에 가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준호는 픽 하고 웃으며 웅이와 선호 두명에게 말했다.
"야, 니들 장난치는거지?"
"... ..."
웅이는 얼굴빛이 새파랗게 변해서 아무말도 없었고 선호는 울먹울먹 거리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바르르 떨고 있었다. 준호는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야, 이거 믿어지냐? 완전 장난같은데. "
"... 진짜로... 뭔가 와있는게 아닐까? 다른 질문을 해보자."
준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웅이에게 말했다.
"웅아, 이름이 뭔지 물어봐."
"...야... 이거 진짜 장난 아니야.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귀신은 없어. 이것도 뭔가 이유가 있을거야. 물어봐 어서."
".. 으흠.. 혹시, 지금 오신분의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붉은 펜은 천천히 움직였다.
ㄱ...ㅣ....ㅁ........ㄱ.....ㅏ......ㅂ....ㅅ...ㅜ
"김갑수. 김갑수 라는 사람인가?"
"...지금 오신분의.. 나이는 어떻게 되십니까?"
펜은 망설임 없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4.....7....
"진짜로... 니들이 움직이는거 아니야?"
준호는 의심에 찬 눈초리로 선호와 웅이를 번갈아 쳐다보았고 선호는 눈을 질끈 감은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웅이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준호도 약간은 놀란 눈치였다. 시작하자 마자 이런 반응이 올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그리고 준호의 지시에 의해, 우리들은 그 귀신( 으로 추정되는 무언가) 에게 잇달아 질문을 던졌고
펜은 그 질문이 있을때마다 어김없이 움직여서 우리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지금... 이 방에 귀신이 몇명이나 있나요?"
8....
"그 귀신들이 전부 우리를 좋아하나요?"
O... O..... O..... X.....
"좋아한다는건 무슨뜻이고, 또 좋아하지 않는다는건 무슨뜻이지?"
"O X 를 번갈아가면서 왔다갔다 하는건 좋아하는 귀신도 있고, 그렇지 않은 귀신도 있다는 건가?"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계속 질문해보자."
"지금 오신 귀신분은, 우리를 좋아하나요?"
X.... X..... X.....
"그럼... 우리를 해칠...건가요?"
O.... O.... O........
그 질문을 했을때, 조금씩 동그라미를 그리던 펜은 갑자기 미쳐버린 것 처럼 동그라미를 마구 그려대기
시작했다. 웅이와 선호는 깜짝 놀란 눈으로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자기들의 손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준호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몰라서 멍 하니 보고만 있는데 두사람의 손이 갑자기 멈추었다.
그리고 빨간 펜의 끝에서 빨간 잉크가 푸쉭, 푸쉭 하고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잉크는
곧 A4 용지를 새빨갛게 물들였다. 마치 피와 같이.
선호와 웅이는 놀라서 펜에서 손을 떼었고, 우리 네 사람은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 하니 잉크가 터져버린 펜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연 것은 준호였다.
"후...후아! 이거 진짜 소름돋는데? 진짜냐? 이거 진짜야?"
"주...준호야.. 아무래도 ... 우리가 잘못 온거 같아.. 그냥 돌아가는게 어떨까?"
"뭐? 야! 이게 진짜라고 생각해봐. 말은 안되지만.. 진짜라면 이거 완전 대박이라고!"
"... ...흐...흐아... 난 더이상 못해!"
제일 먼저 울음을 터트린것은 선호였다. 아까부터 꾹 참고 있던것이 이제서야 터져나오는 듯 했다.
선호가 울음을 터트리자 준호는 당황했고, 웅이도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새파래졌다 하며 정상이
아니었다. 나도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준호는 우리들의 상태가 안좋은것을 보더니 한숨을 푹 하고
내쉬었다.
"휴... 조원들의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수 없지. 일단 오늘은 여기서 철수하고 좋은날에 다시 와볼까?"
"그래...그래.. 그러는게 좋겠다. "
준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디오 카메라를 다시 접어서 짐 꾸러미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웅이와 선호
그리고 나는 담요를 둘둘 말아서 가방에 거의 쑤셔넣다 시피 했고 이내 짐을 다 정리한 우리들은
다시 손전등을 켜고 기름등의 불을 훅 하고 꺼트렸다. 무서운 어둠이 다시 방안에 깃들었다.
우리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방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괴성을 지르며 뛰어가는 선호를
필두로 해서 우리들은 포장도 안된 길을 마구 내달렸다. 쾅!! 하고 등 뒤에서 문을 세차게 닫는 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그 날 이후로,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연구과제에 대해서 먼저 말을 꺼낸사람도 없었고
구태여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는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았다. 준호는 그 날 이후로, 갑자기 살이
쭉쭉 빠지기 시작했다. 살이 빠진다고 하면 좋은 표현일테고, 이른바 말하자면 '핼쓱해져' 가기 시작했다.
내가 준호를 마지막으로 만났을때, 준호의 몰골은 마치 해골 같았다. 해골같은 그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긴 했지만, 눈 밑에 진하게 배어있는 다크서클이나 움푹 패어버린 양 볼은 지금 준호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었다. 준호는 그렇게, 방학이 끝나기도 전에 소리소문 없이 전학을
가 버렸다. 왜 그렇게 급하게 전학을 가야만 했는지, 아무도 그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다만, 나와 만났던 이후에 준호를 본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준호가 갑자기, 밤마다 괴성을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라거나..
[준호의 원인모를 행동을 치료하기 위해 점집을 찾았다가 점집의 무당이 기절해서 쓰러졌다.] 라는
사실인지 아닌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소문만이 무성히 떠돌았다.
아직도, 무엇이 진실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들의 짧은 여름은 훌쩍 지나가 버렸다.
항상 어울려 다니던 네명에서 준호가 덜컥 빠져버리자, 우리들은 서로 중심축을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준호가 그렇게 돼 버린것이 우리들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우리들의 기억에서 점차 준호는 잊혀져 갔다. 중학교 생활이 거의 다
끝날무렵이 되서는, 준호는 우리들의 기억속에 '예전에 알고 지내던 친구' 수준으로 떨어졌다.
선호도, 웅이도, 나도 그날의 그 기억들을 떠올릴 때마다 몸서리 쳤지만 준호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게
쉽게 꺼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날 웅이가 문득 입을 열었다.
"아... 아참. 생각난게 있는데. 우리 그때,... 흉가에서 찍은 사진 있잖아. 그거 현상 했나?"
"아.. 그 사진? 현상..이고 뭐고.. 아직 필름도 남아있어서 안맡겼던거 같은데."
"... ..."
"... ..."
궁금증과 두려움 사이에서 열심히 저울질하던 우리들은 결국 그 사진을 현상해서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필름을 현상소에 맡기고, 찾으러 간 날. 사진 현상소의 아저씨는 혀를 쯧쯧 하고 차며 우리들에게
말했다.
"쯧..사진에다 무슨 장난을 친거냐? 참.. 요새 애들이란. 장난을 너무 좋아한단 말야."
무슨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우리들에게, 현상소의 아저씨는 필름과 사진이 든 봉투를 건네었고
우리는 사진을 급하게 꺼내 보았다.
첫번째 사진에는 웅이, 나, 준호, 선호가 나란히 선 채 그 흉가의 정문을 배경으로 하여 찍혀 있었다.
웅이와 나, 선호의 모습에는 별다를 것이 없었지만 준호의 모습은 뭔가 특이했다.
준호의 온 몸에는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준호를 칭칭 둘러싸고 있었고
머리부분에는 뒤에서 잡아당기기라도 하는것처럼 흐느적거리는 손 모양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나머지 사진들에도, 다른 애들은 모두 정상적으로 찍혀 나왔는데, 준호의 모습만은 이상하게 달랐다.
어떤 사진에는 얼굴이 시꺼멓게 돼서 아에 보이지 않았는가 하면 앞의 그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준호의 어깨며, 목에 매달려 있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찍었던 사진을 펼쳤을때, 웅이와 나는 모두 깜짝 놀랄수 밖에 없었다.
붉은 펜을 잡고있는 선호와 웅이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준호의 목에 마치 사형수를 매다는
밧줄처럼 희끄무레한 빛이 뒤엉켜 있었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였을까. 준호는 마치 죽은사람처럼 눈에 흰자위를 보이고 혀를 쭉 빼물고 있었다.
-한여름날의 추억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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