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삼국 중 가장 빨리 국가의 틀을 완성하고 전성기역시 가장 빨랐지만
주변국의 발호로 인한 승리의 역사보다 패배의 역사가 많은 나라가 백제이지요.
일단 전장에서 전사한 왕 만도 3명인데
책계왕
개로왕
성왕
이 중 2명이나 단순 전사가 아닌 적장에게 목이 잘린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죠.
또 한 특이하게도 삼국 중 실질적으로 국가가 2번 망한 나라인데
1차 멸망은 개로왕 때 고구려의 어그로를 분산해 보려다 카운터로 3배로 끌어 장수왕의 극딜로
수도는 물론 한강유역 일대를 완전 상실한 1차멸망, 2차 멸망은 고구려와 왜의 외교관계만 믿고
신라를 극딜하다 대고구려전에서 2차전선이 필요했던 당과 모든 국운을 걸고 백제멸망을 불사르던 신라로 인해
삼국 중 대외적 여건과 군사력 등으로 볼 때 상대적으로 가장 우위에 있었고 멸망 따위와 거리가 가장 멀었던 백제가
두 나라의 극딜로 빛의 속도로 완전히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죠.
백제 멸망 시기 꼭 들어가는 것이 의자왕의 사치와 실정이기에 망국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듯 교과서에서도 설명되지만
사실 의자왕 시절의 백제는 당항성 획득만 실패해서 그렇지 영토적 판도만 해도 우리가 알고있는 근초고왕에 버금가는
판도를 자랑했습니다. 신라는 가야지역은 대부분 백제에 빼앗겻고 당항성 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었으며 북쪽으로는
고구려에게 지금의 경상북도 북쪽까지 털릴만큼... 즉 진흥왕 때의 영토가 아니라 원래 신라 건국 시점의 영토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영토를 아주 힘겹게 유지하던 시절이었죠. 말년의 사치와 향락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평시에 있어서는
국력에 큰 카운터 수준이 되진 않았을거란 얘기입니다.
다사다난한 역사를 전체를 쓰려고 하려다 어쩌다 멸망 위주의 스토리를 쓰게 되었는데 결국 백제의 멸망 원인은 그 국가가 약하거나
부패해서가 아닌 국가 간 치열하게 전재하던 시기 대외정책의 오판으로 망한 나라입니다. 1차 멸망때의 고구려 어그로 끈 건 당시
중국이 고구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던 그 상황을 캐치하지 못했지만 당시 거의 최선의 판단을 했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2차 멸망의 경우 백제가 어떤 수를 썻더라도 큰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고는 하나 대신라 정책 간섭을 이유로 조공사를 끊는
일방적인 단교 정책을 단행한 것, 신라의 당의 요청에 의해 대고구려 병력을 파견했을 때 신라의 성을 점령한 것은 당대의 상황을
고려했을때도 최선의 판단과는 매우 거리가 있었기에 한타까운 사항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