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까지의 '국사'는 대학교에서 배우는 '역사학'와 좀 다릅니다.
역사학은 사학도를 위한 학문이지만, 국사는 국민을 위한 상식입니다.
(과거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순수학문 공통의 목적 하에, 왕조/국체/지역/문화권, 아니면 특정 계층의 역사같이 다양한 스케일에서 연구하는 역사학과는 달리 국사는 한 국가의 국민, 시민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지식을 가르치는 것, 국가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국가가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고 어떤 가치를 추구했는 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지를 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거죠.
예를 들어, 1960년 3~4월간 한국에서 있었던 대규모 소요사태에 4.19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여 국사 교과서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대한민국이 독재와 부정선거에 대한 저항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이를 지키는 것을 국가의 목표로 하고 있음을 설명해 줍니다.
때문에, 국사 교과서에 어떤 내용이 실려야 하는가는 국가가 결정해야 합니다. 국가가 무엇을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지, 앞으로 어떤 국가가 되려고 하는지, 무엇이 한국의 정체성인지를 아이들에게 가르쳐, 한국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국가가 뭐죠?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의 명대사를 인용해볼까요. '국가란 국민입니다.'
정부가 국가인게 아닙니다. 정부는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어떤 나라여야 하는지 결정할 권한이 없어요. 그 권한은 차라리 베츙이나 가스통할아범에게 있을지언정 대통령에게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교과서로 배울지, 어떤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칠 지 선택할 수 있다는 건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가 되면 좋을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가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선택의 결과가 교학사 교과서라면, 차라리 존중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의 권리를 무시하고 정부가 결정한다? 진보/보수를 떠나, 그냥 비민주적입니다.
마찬가지로 다음 대선 때 정권이 바뀌어 새민련이 정권을 잡더라도, 혹은 좌파 정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국정 교과서에 반대합니다. 정부가 그런 권한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국정 교과서 찬성 입장은 그래서 독재 옹호 논리와 닿아 있습니다. 격렬한 이념 대립이니, 한국의 실정이니, 소모적인 논쟁이니 하는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권위있는 누군가가 나서 올바른 방향으로 질서를 찾아 준다...는 이야기는 예전에 충분히 듣지 않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