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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 투혼 - 10 -
게시물ID : panic_232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ka
추천 : 17
조회수 : 104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1/11 21:28:14

 (9회에 이어)


 서랍 속에 들어있던 보통 책 크기만한 상자는 누런 테이프로 봉해진 것이 참 볼품없었다. 그래도 누가 자기 걱정은 해준 모양이라며 뜯어보던 그 자식은 이내 상자를 떨어뜨렸다. 그 안에서 아주 조그맣고 까만 것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1교시 시작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 자식은 그 까만 것들을 마구 짓밟으며 비명을 토해냈다. 반 아이들이 떼로 모여들어 구경했다. 왜 그러냐고 누가 물어도 그 자식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까만 것들을 마구 짓밟았다. 대체 검은 깨가 어쨌기에 그러냐고 누군가 소리치는 걸 듣고나서야 그 자식은 발아래 깔려 있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쳐다보았다. 그것들은 분명 검은 깨였다. 누군가가 웃었다. 그 자식은 그 길로 교실을 뛰쳐나갔다.

 그로부터 10여 분 뒤 그 자식은 교회에 있었다. 사실 그곳에 가기 위해 학교를 나갔다기보다, 가는 길에 교회가 보여 들어갔다고 하는 게 맞았다. 예배당에 들어선 그 자식은 눈앞에 나타난 대형 십자가에 잠시 주춤했다. 순간적인 위압감에 멍하니 서있는 그 자식을 발견하고 누군가 다가왔다. 

 “무슨 일이지요? 도움이 필요한가요?”

 한복 비슷하게 생긴 옷을 입은 할머니였다. 그 자식이 돌아서서 나가려 하자 할머니가 얼른 불러 세웠다.

 “괜찮아요.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봐요.”

 그 자식은 곧 할머니와 예배당 안에 나란히 앉았다. 그 자식은 결코 눈을 들지 않았다. 할머니는 안보는 척 그 자식의 옆모습을 이리저리 뜯어보았다. 그 자식이 입을 열 때까지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를 괴롭히는 게 있어요.”
 “그게 뭐지요?”
 “귀…신…”

 할머니의 눈이 커졌다. 그 자식이 돌연 일어나 물었다.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시죠?”

 나가려는 그 자식을 향해 할머니가 얼른 말했다.

 “믿어요, 믿는다고요.”

 그 자식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할머니는 짧게 기도를 하고 나서 말했다.

 “귀신이 괴롭혀서 괴롭다… 그럼 그 귀신은 누구지요?”

 그 자식은 그곳에서도 뛰쳐나왔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순찰중인 경찰차를 보고는 허겁지겁 근처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경찰이 따라 들어왔다. 그 자식은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버튼을 마구 눌러댔다. 경찰이 다가왔다. 그 자식은 아예 버튼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경찰이 그 자식 뒤로 지나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 자식은 엘리베이터 구석에 주저앉았다. 문이 닫히는 순간 손이 쑥 들어왔다.


 경찰차에 실려 학교로 돌아온 그 자식을 담임은 개인 면담실로 데려갔다. 

 “아까 왜 그랬는지 설명을 해봐.”

 갈색 뿔테 안경을 고쳐 쓰고 그 자식한테 집중하는 담임의 눈매가 왠지 명탐정 셜록 홈즈를 생각나게 했다. 

 “말을 해봐. 그 깨는 뭐고 학교를 왜 나갔는지.”

 그 자식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실상은 쉴 새 없이 눈을 굴리고 있었다. 

 “제가 사실.. 그런 거에 공포가 있어요. 작은 것들이 떼 지어 모여있는 거에...”
 “그럼 니가 그런 걸 무서워한다는 걸 아는 사람이 보냈다는 거네?”
 “……”
 “그럼 누가 보낸거 같은데?”
 “글쎄요.” 
 “나는 말이야, 이런 생각이 들었어.”

 담임의 말투가 달라졌다. 그 자식도 그걸 느꼈는지 살짝 고개를 들었다.

 “벌레..” 
 “네?”

 그 자식의 심장이 크게 요동친 것을 담임은 알까?

 “애들한테 얘기를 들어보니 난 네가 그걸 벌레로 착각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 중에서도… 개미.”

 그 자식의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 자식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나?”
 “아… 아니요.”
 “그래. 그럼 학교는 왜 나갔지?”

 돌변하는 그 자식의 눈빛을 보고 나는 알았다. 이번엔 담임이 ‘찍혔다’는 것을.

 “나간 이유가 있을거 아냐.”
 “…짜증나서요. 내가 왜 이런 걸 받아야 되나 생각하니 짜증나서요.”

 그 자식의 대답은 마치 ‘내가 왜 이런 질문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면담실에서 먼저 나온 그 자식은 문 안쪽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난 이제 담임도 걱정해야 했다.

 교실로 돌아온 그 자식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예상대로 정아를 쳐다본 거였다. 나는 정아한테 그 자식이 너를 보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정아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 자식은 자기한테 검은깨를 보낸 범인으로 정아를 지목하고 있었지만, 정아는 도리어 나에게 물었다.

 “누, 누가, 너, 넣은, 거, 걸까.”

 나는 잠자코 있었다.

 “부, 분명, 개, 개미와, 과, 관련이, 이, 있는, 거야. 그, 그치?”
 -나중 되면 알게 될 거야.
 “어, 언제?”
 -다 끝나면…
 “다, 다, 끄, 끝, 나면?”

 그날 저녁, 나는 담임이 애인과의 약속도 취소하고 포장마차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담임은 맞은편에 앉아있는 내 앞에 술잔을 놓더니 술을 따랐다. 그리고는 내 이름을 불렀다.

 “요즘 학교에 나타난게 네가 맞다면… 말좀 해주라… 왜 나한테 개미를 쓰게 했는지…”

 한 잔을 더 비우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혹시 말이야… 혹시 말인데… 혹시… 반장이 관련 있는 거니…”

 담임의 한숨 소리와 더불어 내 술잔에 잔물결이 일었다. 담임은 새 술을 하나 더 시켰다. 내가 내쉰 한숨은 담임의 술잔에 물결을 일으키지 못했다. 나는 소리 내어 말하고 싶었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쌤. 



 담임은 바빠졌다. 점심시간에 학생주임을 귀찮게 하더니 무슨 종이를 얻어왔다. 거기엔 근 10년간 정학 이상의 처분을 받은 애들이 일을 저지른 장소가 적혀있었다. 그 중 학교에서 멀다싶은 곳을 빼고 담임은 매일 한 군데씩 가보고 있었다. 장소들은 뻔했다. 주인 없는 놀이터, 인적 드문 뒷산, 공사장, 빈 집… 

 작년까지만 해도 가장 문제가 많은 장소였던 구립 놀이터는 공원처럼 단장되면서 CCTV까지 설치되었다. 그 뒤로 거기서 진한 애정 행각을 벌이는 애들도, 어둠을 틈타 돈을 뜯는 애들도 사라졌다. 공사장이었던 곳은 대부분 번듯한 건물이 세워졌고, 학교 근처의 산에는 산책로가 만들어지면서 밤에도 빛이 환했다. 문제는 빈 집이었다.

 나는 담임이 그곳만큼은 가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담임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탐정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었다. 학교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좁고 긴 골목이 있었다. 그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는데 그 몇 집이 모두 비어있었다. 얼마 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어떤 돈 있는 할아버지가 그 집들을 합쳐 큰 집을 지으려 했다. 뒤늦게 만난 어느 할머니와 그 집에서 알콩달콩 살려고 하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공사 전에 돌아가시자 그 자식들이 할머니를 돌연 꽃뱀 취급하며 모욕을 줬다. 너무나 분했던 할머니는 ‘귀신이 되어서라도 그곳에서 살겠다’며 그 빈집 중 한 곳에서 세상을 버리셨다. 그곳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한테 골목 안 주민이 들려준 얘기였다. 

 담임은 같은 사람한테서 빈집들에 얽힌 사연을 전해 들었다. 굳게 닫혀있는 철문들을 잡아 흔들어보다가 그 중 한 집의 문이 잠겨있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 녹슨 철 대문이 가늘고 긴 소리를 내며 열리자 담임은 그 안으로 들어섰다. 대문에서 작은 마당까지 가는 길이 골목만큼이나 좁고 긴 집이었다. 마당으로 들어서자 적막이 흘렀다. 담임은 유리가 떨어져 나간 마루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마루 왼편에 있는 방문이 반쯤 열려있었다. 아직 해가 남아있는 저녁시간, 담임은 한 손가락을 세워 방문을 밀었다. 문이 제법 활짝 열리고 담임은 방안으로 고개를 디밀었다. 그러나 곧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방 안에 까만 물체가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 까만 것으로 뒤덮인 물체였다. 담임이 실눈을 뜨고 다시 쳐다본 그것은 숨이 끊어진 동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개미떼의 밥 신세가 되고 있었다.

 밖으로 나온 담임은 한동안 그 집을 눈여겨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 모습을 눈여겨보는 녀석이 있었다. 나똘이었다. 아직 얼굴에 붓기가 남아있어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다니던 녀석은 담임이 그 집 앞에 서있는 것을 보고는 허겁지겁 골목을 달려 나왔다. 그리곤 벌벌 떠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고압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야.
 “다, 다, 다, 담탱이가…”
 -담탱이가 뭐?
 “그, 그, 그, 그 집… 그 집에서 나, 나왔어!”
 -뭐라고? 끊어!

 자기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던 그 자식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숨을 크게 몇 번 내쉬더니 스마트폰의 전화번호 목록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그 중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너, 내가 시키는 일은 뭐든지 다 한다 그랬지?”

 스마트폰 저편에서 ‘응’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정아에 이어 담임쌤 또한 위험에 빠뜨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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