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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 투혼 - 7 -
게시물ID : panic_2317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ka
추천 : 17
조회수 : 925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2/01/11 00:33:59

 (6회에 이어)


나는 옷장 위에서 정아를 기다렸다. 저녁을 다 먹은 정아가 과일 접시를 들고 왔다. 

“이, 이리 와…”

포크가 두 개였다. 가슴 한 켠이 찌릿했다.

“아, 안 먹어?”

-먹고는 싶은데… 이렇게 되고 보니 제사상에 올린 음식들이 왜 안 줄어드는지 알겠어. 

정아가 내 말에 처음으로 웃어줬다. 나도 따라 웃었다.

“부, 분신, 사, 사바는, 어, 어..”

정아는 말을 하다 말고 연습장을 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말로 해. 괜찮아.

정아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정아를 쳐다보았다. 정아가 얼른 시선을 치우고 말을 이었다.

“무, 물건, 모, 못잡, 는다며. 어, 어떻게, 하, 한 거야.”
-그게, 볼펜 잡은 애 손에다 내 손을 넣으니까 되더라고!
“그, 그래? 그, 그럼, 비, 빙의도, 돼?”
-빙의? 

그러고 보니 남의 몸에 완전히 들어가는 건 아직 해보지 않았다. 이참에 한번 시도해봐?

“그, 근데 너, 왜, 바, 반장한테, 부, 붙어…”

정아가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서, 설마 너… 바, 반장, 때, 문에, 주, 죽은, 거야?”

나는 입을 다물었다. 정아가 나한테서 이 얘기를 듣게 된다면 정아한테는 큰 부담이 될 게 틀림없었다. 뒷받침 해줄 증거도 없는데 그런 짐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다. 

“마, 맞아? 그, 그런, 거야?”
-나중에… 다 알게 될 거야.

정아의 얼굴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

“니, 니가, 나, 한테, 마, 말하고, 시, 싶은 게, 이, 이거, 아니었, 어? 왜, 어, 어떻게, 죽었, 는지…”

그것만큼은, 분명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처음엔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있다는 게 반가웠고, 그 다음엔 니가 반장한테 괴롭힘 당할 까봐 그거 말해주려고 그랬지. 어쨌든 니가 그 자식한테 찍힌 건 나 때문이니까.

정아의 입이 한동안 벌어져 있었다. 나는 그 입에 과일을 넣어주고 싶었다. 정아의 얼굴에 가득 찬 게 미안함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 수 있었다.

“나, 나는, 그, 그런 줄도 모, 모르고… 내, 내가, 너무 느, 늦게, 무, 물어봤다…”

정아가 이렇게 말해주니 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게 있었다. 

-아, 아니야…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그치만 난 너한테 말해주지 않을 거야. 혹시라도 니가 다치면 안되니까…

정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내, 내 힘이, 피, 필요하면, 마, 말해. 도, 도와, 줄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 눈가가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벌점은 효과가 있었다. 다음날부터 분신사바 하는 애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학교에서만.

비는 집 곳곳에서 판이 벌어졌다. 아주 내 이름을 부르며 와달라고 하는 애들도 있었다. 가만 보니 죄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나는 이 귀신 무서운 줄 모르는 애들을 어떻게 놀려줄까 하다가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이 집 거실에서 혼자 놀고 있는 고양이의 놀이 상대가 되어주기로 했다.

우선은 거실에 깔려있는 돗자리를 따라 뱅글뱅글 돌았다. 처음엔 심드렁하게 쳐다보기만 하던 녀석이 어느 때부터 어슬렁어슬렁 내 뒤를 따랐다. 은밀히 판이 벌어지고 있는 작은 방에 계속 신경을 쓰면서 속도를 조절했다. 애들이 방에서 나올 기미가 보이면 속도를 높여 고양이를 100미터 달리기 선수마냥 달리게 만들 생각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동물을 이용하는 게 조금 미안했지만 다음에 진짜 놀아주기로 하고 고양이를 운동시켰다.

애들이 방에서 나왔다. 걔들이 본 고양이는 먹이를 쫓는 맹수처럼 돗자리 위를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파리조차 없는 허공을 향해 발톱을 휘두르기도 했다. 고양이 주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다른 애들도 고양이 왜 저러냐고, 미친 거 아니냐고 한 마디씩 거들었다. 고양이 주인이 그만하라고 소리쳐도 고양이의 미친 짓이 계속되자 애들은 서로 부둥켜안으며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이제 그만 빠져나와야 할 때라는 걸 알았다. 자칫하다간 죄 없는 고양이가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무서워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애들을 통과해 현관의 센서등을 켜주고 당당히 대문으로 빠져나왔다. 문 긁는 소리가 나를 배웅했다.

다음날, 고양이 주인은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 집에 있던 나머지 세 명 중 한 명도 결석이었다. 내가 두 번째 소동을 벌이던 날 펜을 잡았던 우리반 애도 오지 않았다. 학교에 내가 나타난다는 소문은 이미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나는 점심시간 바로 전 시간이자 우리 반 담임이 우리 반에 선생으로 들어오는 수업을 기다렸다. 정아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무대가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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