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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 투혼 - 5 -
게시물ID : panic_231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ka
추천 : 16
조회수 : 88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1/10 22:36:59

(4회에 이어)


아줌마가 콜택시를 타고 간 곳은 시내 중심가에 있는 대형 백화점이었다. 목을 꼿꼿이 쳐든 아줌마는 표정부터 다른 사람 같았다. 어느 옷 매장에 들어서자 직원들이 달려와 인사를 했다. 그 인사들을 받지도 않고 아줌마는 거만함이 느껴지는 손길로 옷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는 가격표에 적힌 숫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았다.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기가 힘든 가격이었다. 아줌마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옷을 여러 벌 고르더니 마음대로 입어보았다. 이번엔 직원들이 아줌마한테 쩔쩔 맸다. 마치 아줌마를 위해 이 옷이 만들어졌다는 듯 최상급의 칭찬을 늘어놓다가 아줌마가 맘에 안든다고 하면 이유가 무엇인지 묻지도 못하고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귀신인 내가 볼 때 아줌마는 처음부터 옷을 살 마음이 없었다. 옷 매장 직원들이 자신한테 굽실대는 모습을 보러 온 거였다. 

그렇게 입고 벗은 옷이 열 벌을 넘어갈 때쯤 아줌마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아니, 실은 아줌마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자 벨이 울렸다. 폰에서는 아무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줌마는 열심히 떠들었다. 아, 잠깐 귀국했다고? 지금 어디야? 어머, 마침 나도 볼 일 있어서 밖에 나와 있는데. 우리 시간되면 볼까? 내가 여기 맛있는 집 어딘지 알아.

아줌마가 전화 받는 척 자연스레 옷 매장을 떠나자 직원들이 한데 모여 쑥덕거렸다. 왜 안오나 했다. 니가 그런 생각하니까 왔지! 어휴, 정말 언제 저 꼴 안볼까? 저 남편만 아니면 진짜… 그래도 오늘은 입어보기만 하고 갔으니 다행이지 뭐. 지난번처럼 왕창 사고 죄다 반품한 것보다는 낫잖아.

나는 더 이상 아줌마를 쫓지 않았다. 밤에 길 다닐 때 무서우면 누구랑 통화하는 척 하라고 있는 기능이 이렇게 쓰일 수도 있구나 싶었다. 나는 기분이 더 이상해졌다. 우리 엄마도 내가 모르는 다른 모습이 있을까? 우리 아빠는? 상상을 해보려 해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오늘 본 것을 죄다 잊고 싶었다. 바다로 가 한참 얼굴을 담갔다.



정아는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나는 정아가 좀 놀라더라도 말을 붙이기로 했다. 오늘은 꼭 얘기를 하고 싶었다.

-…정아야.

글씨를 쓰던 펜이 아무렇게나 선을 그렸다. 

-꼭 할 말이 있어! 이것만 들어줘, 부탁이야!

나는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모은 채 정아의 처분만 기다렸다. 제발, 제발… 

“…뭐, 뭔데.”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정아가 비명을 지르며 날 쫓아내는 상상이 아직 눈앞에 남아있었다.

“어, 얼른, 마, 말해.”
-어, 그게 말야. 그 자식이…
“그 자식?”
-그러니까 반장이… 니가 자기를 쳐다본 줄 알아.
“어?”
-그러니까, 반장은 니가 자기를 쳐다봤다 생각하고 너한테 무지 신경쓰고 있어.
“나, 난, 걔, 걔 본거, 아, 아닌데.”

지금은 정아의 눈이 시원하게 드러나 있었다.

-너는 물론 날 쳐다본 거지만, 그 자식이 그걸 알 리가 없잖아. 그리고 니가 도망까지 쳤잖아. 그 자식은 널 의심하고 있다고.
“으, 으, 의심?”
-그 자식은 니가 자기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건 아닐까 끙끙거리고 있어.
“비, 비밀? 그, 그게 뭐, 뭔데.”
-그래서 병문안 핑계 삼아 니네 집에도 와본 거야. 그러니까 다시는 그 자식을 쳐다보지마. 알았어?
“어, 어.”
-그리고 왜 자기를 보고 도망쳤는지 물어볼 거야. 근데 왜 도망친 거야?

정아가 대답하기까지 뜸을 들였다.

“…니 …니가, 보, 보일, 까, 봐.”

그 말을 들으니 내 가슴에 돌이 하나 더 얹어지는 것 같았다. 

“바, 바, 반장이, 나, 나를, 또, 차, 찾으면, 어, 어떡, 하, 하지..?”

나는 노트 위에 누워있는 펜을 주시했다.


  
정아가 걱정한 상황은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자 바로 일어났다. 정아는 내가 말한 대로 점심을 먹고 나서 한적한 스탠드에 나가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식이 다가와 1미터쯤 떨어져 앉았다. 정아는 가능한 한 그 자식을 쳐다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 연기를 주문한 건 나였지만 옆에서 보고 있으니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었을 것 같았다. 여하튼 정아는 말을 하는 대신 연습장에 글로 썼다. 

「믿지 못할 거야」
 “얼른 말해.”

 그 자식은 자꾸 주위를 살폈다.

「모르는 게 좋을 텐데」 
 “하, 말씀하시는 게 좋을 걸요?” 
「알았어. 그럼 말해줄게」
 “진작 그럴 것이지.”
「대신 더 이상 나한테 묻지 않는다고 약속해」
 “하, 약속까지… 알았어, 알았다고.”

 정아는 잠시 망설이는 연기를 하더니 새로운 종이에 썼다.

「너한테 귀신이 붙어있어」

그 자식도 알고 보니 얼어붙을 줄 아는 인간이었다.

 “…뭐어? 뭐? 마… 마… 말도 안 돼…”
「거봐 내가 믿지 못할 거라고 했잖아」
 “하… 하… 하하… 하…”

정아가 내 말대로 연습장을 닫자 그 자식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직! 말… 안 끝났어…”

정아는 내 쪽으로 살짝 곁눈질을 했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그… 그 귀, 귀, 귀신이… 누, 누군데…?”

이 타이밍에서 정아가 빤히 쳐다보자 그 자식이 엉덩이를 급히 뒤로 뺐다. 혼자 보기엔 아까운 광경이었다. 정아가 연습장을 아무데나 펼쳤다. 그 자식의 눈이 동그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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