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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 투혼 - 3 -
게시물ID : panic_231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ka
추천 : 17
조회수 : 93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1/10 22:01:26

 (2회에 이어)


 나는 책상 위로 목을 빼고 그 자식의 상대녀를 보았다. 교복만 안 입으면 성인영화를 얼마든지 보러 다녀도 걸리지 않을 것 같은 외모였다. 발갛게 달아올라 있는 그녀의 얼굴이 과외선생의 한 마디에 더욱 발개졌다. 조금만 쉬었다 하자.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오피스텔을 빠져나온 두 사람은 비상계단에서 만나 두어층을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는 층계참과 층계참 사이의 계단에서 급하게 한 몸이 되었다. 두 사람의 몸놀림이 익숙해보였다. 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불을 밝혀주려다 끝날 때까지 그냥 구경했다. 그 자식의 두툼한 입술이 배고픈 개 마냥 여자애의 목덜미를 핥아댔다.

 센서등이 켜졌다. 어둠 속에서 우리집 거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집 안에선 썩은 내가 진동했다. 국 냄비를 통째로 내다 버리고 싶었지만 내 힘으론 뚜껑조차 건드릴 수 없었다. 거실에 나뒹구는 술병은 스스로 분열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늘어나 있었다. 나는 바닥에 쏟아져있는 소주에 혀를 갖다 댔다. 아빠처럼 ‘캬’ 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다.



 교실에는 내 자리까지 책상 두 개가 비어있었다. 담임은 정아가 많이 아프다고 했다. 그 말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내 의자 노릇을 하고 있는 그 자식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나는 정아한테 빨리 말해주고 싶었다. 네가 나를 쳐다본 걸 그 자식은 자기를 쳐다본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그 때문에 너는 그 자식한테 ‘찍혀버렸다’고. 

 종례시간이 끝나고 그 자식은 담임을 찾아갔다.

 “선생님, 제가 정아네 집에 가 볼까요?”

 담임의 눈이 반짝였다.

 “그럴래? 그럼 부반장하고 같이 가.”
 “아니요, 저 혼자서도 괜찮은데요. 그냥 혼자 갈게요.”
 “그럼 잠깐만. 주소하고 전화번호 알려줄게.”

 그 자식의 입 꼬리가 은밀히 올라가는 것을 담임은 보지 못했다. 아마 봤어도 무슨 뜻인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 자식이 늘 타고 다니는 차는 뒷좌석에 몸짱 셋이 앉아도 충분할 것 같았다. 그 자식은 차를 먼저 보내고 초인종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아네 반 반장인데요, 정아 많이 아픈가요?”

 잠시 뒤 정아네 엄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 우리 딸 병문안 온 거에요?”

 그 자식이 깍듯하게 허리 숙여 인사하자 정아네 엄마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잠깐 보고 갈 수 있을까요?”
 “이를 어쩌지, 약 먹고 자는데…”
 “그럼 그냥 갈게요. 내일은 학교 올 수 있겠죠?”
 “아마 그럴 거예요. 이렇게 왔는데 주스라도 마시고 가요. 응?”
 “아니요, 저도 학원에 가봐야 돼서요. 정아한테 얼른 나으라고 전해주세요.”

 나는 2층 창문 밖에서 정아의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정아는 침대에 누운 채 눈을 꼭 감고 있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그 자식을 따라갔다. 최신형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더니 택시를 잡아타고 강남 어디에선가 내렸다. 그리고는 길 양 옆으로 정신없이 늘어서있는 상가 중에 룸 카페 간판이 붙어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보이는 카운터에 일행이 있다고 말하고는 룸으로 직행했다. 게임 효과음이 요란한 그 곳엔 누가 먼저 와 있었다. 과외교습소에서 본 여자애가 아니었다.

 여자애의 잘록한 허리 밑에 깔린 리모컨이 쉬지 않고 채널을 바꿔댔다. 여자애가 아프다고 할수록 그 자식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무릎에 걸려있는 교복바지에서 스마트폰이 울어대지 않았다면 진분홍색 소파 한쪽이 주저앉았을지도 몰랐다.

 “뭐야.”

 전화를 한 사람은 그 자식의 이번주 책상 담당이었다. 키에 비해 살이 많이 쪄 가쁜 숨을 내쉬는 녀석. 그날 내 가슴 위에 올라앉아 턱을 억지로 벌리게 했던 놈. 그에겐 이름보다 더 잘 어울리는 별명이 있었다. 뚱기.

 “뭐, 현수막? 너 지금 그거 말하려고 나한테 전화한 거야?!”

 버럭 대는 목소리엔 거침이 없었지만 그 자식의 시선은 그렇지 않았다. 여자애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그 자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리모컨으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고 있는 여자애를 다시 잡아 눕히더니 진분홍색 소파가 비명을 지르든 말든 열심히 방아를 찧어댔다. 나는 생각이 딴 데 가있는 그 자식한테 얼굴을 들이대고 물었다. 설마 너 지금, 불안해하는 거야?

 뚱기가 말한 현수막은 학교 애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버스 정류장 근처에 걸려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가로로 길게 펼치는 펼침막이었다. 거기엔 너무나 잘 아는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저희 아들이 보충수업을 받고 온 직후 스스로 몸을 던져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도무지 믿기지도, 믿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 일에 대해 어떤 얘기라도 알고 있는 분은 아래 연락처로 연락주세요. 자식을 잃은 어미가 눈물로 호… ’

 나는 끝까지 읽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울음 섞인 엄마의 목소리가 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바람에 몸을 맡기고 하릴없이 떠돌아다녔다. 

 지친 마음으로 집에 오니 손님들이 와있었다. 나도 모르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교장쌤은 맞은편에 앉아있는 엄마의 눈치를 줄곧 살피더니 주눅이 든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님… 이런 말씀 드리기 참 뭐하지만…”
 “그럼 하지 마세요.”

 엄마가 이렇게 냉정하게 남의 말을 끊는 건 처음 보았다. 교장쌤도 놀라하긴 마찬가지였다. 

 “현수막 얘기하러 오신거 다 알아요. 그만 돌아가 주세요.”

 엄마가 방문을 여는데 갑자기 쿵, 하고 바닥을 찧는 소리가 났다. 담임이 마룻바닥에 무릎을 박은 채 머리를 조아렸다. 교장쌤이 뭐하는 거냐고 소리죽여 말했지만 담임은 그 자세로 꼼짝하지 않았다.

 “어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이 모든 게 다 제 불찰입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아빠가 연상될 만큼 담임은 목 놓아 울었다. 담임 입속으로 눈물과 콧물이 섞여 들어갔다. 방문 앞에 잠자코 서있던 엄마는 뽑아 쓰는 티슈를 가져다 담임 앞에 놓아주었다. 코푸는 소리가 여러번 이어졌다.

 “죄송하지만 이만 돌아가 주세요.”

 안방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나는 엄마를 살펴볼까 하다 내 방으로 갔다. 침대에 벌러덩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여 봐도 매트리스에선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난 정말 죽은 게 맞았다. 엉엉 울고 싶어졌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자 정아는 다시 학교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계속 그 자식의 어깨 위에 올라앉고 싶었지만 정아를 생각해서 내 자리에 앉았다. 정아는 오늘도 고집스럽게 교과서만 파고 있었다. 어느 시간엔 선생한테 졸지 말라고 지적을 당하기도 했다. 내가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르는 그 자식은 틈틈이 정아를 주시했다. 그때마다 그 자식의 어깨로 옮겨 앉아 볼을 찰싹찰싹 때려줬지만, 그럴수록 그 자식의 얼굴에 진짜 주먹을 꽂아주고 싶은 마음만 커졌다. 

 학교가 끝나고 정아는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사실 종례시간에 정아와 눈이 마주쳤다. 화장실 갈 때에도 땅만 쳐다보더니 의식적으로 내 자리를 쳐다보았다. 나름 웃어 보인다고 웃었는데 이것도 역효과가 난 듯 했다. 나는 정아보다 10여 미터 뒤에서 조용히 따라갔다. 오후의 햇빛이 세상을 태우고 있었다. 정아도 연신 손으로 얼굴에 바람을 일으켰다.

 버스 정류장에 거의 다 왔을 때 정아가 멈춰섰다. 떼가 탄 펼침막이 정아의 시선을 붙들었다. 그런 정아의 등 뒤로 다가오는 것이 있었다. 낯익은 검정색 승용차. 차에서 그 자식이 내리더니 정아한테 접근했다. 

 둘이 마주 보는 광경이 몇 초쯤 계속 되었을까, 정아가 주위를 크게 둘러보더니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그 자식은 잠시 지켜보다가 얼른 차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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