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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 투혼 - 1 -
게시물ID : panic_231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ka
추천 : 16
조회수 : 135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2/01/10 21:53:05


 나는 자살했다.



 그날따라 아파트 복도에서 내려다 본 아래 세상은 걱정거리 따윈 찾아볼 수 없는 정지화면 같았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지금 서있는 곳에서 아래로 떨어지기만 하면 나는 완벽하게 아래 세상의 일부가 될 수 있을 듯 했다. 그 믿음에 어떠한 의심도 들지 않던 순간 나는 움직였다. 아래 세상이 순식간에 눈앞으로 들이닥쳤다.


 나는 곧 다시 복도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도 층계도 이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는 여전히 화단의 흙바닥 위에 엎어져 있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중 몇 사람은 바퀴벌레라도 발견한 것 마냥 마구 비명을 질렀다. 곧 내 등 뒤에서 문이 열리고 엄마가 복도로 나왔다. 엄마는 내가 얌전히 벗어둔 운동화를 발견하곤 휘청거렸다. 나는 엄마가 아래를 내다보지 못하게 막아섰지만 엄마는 가뿐히 나를 통과했다. 날카로운 비명이 복도를 채웠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달려 나왔다. 나는 계속해서 엄마를 불렀지만 내 목소리에 반응을 보이는 건 허공을 가르던 새들 뿐이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무슨 일을 벌였는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화단의 내 몸은 뭔가로 덮여지고 엄마는 이웃집 아주머니의 부축을 받아 엘리베이터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아래 세상을 더 지켜보고 싶었으나 화단 주변에 바글대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여 얼굴을 돌렸다. 그러자 비둘기 두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지어도 그들은 반응이 없었다. 약이 오른 나는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이 내 발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동안 나는 허공에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바람이고 바람이 나였다. 나는 쉬지 않고 날아다녔다. 내 자신의 무게를 도무지 느낄 수 없었다. 그게 너무 신났다. 나는 언제든지 날 수 있었고 얼마든지 날 수 있었다. 낮에는 낮 풍경을, 밤에는 밤 풍경을 닥치는 대로 보고 다녔다. 비둘기 두 마리한테 부리려던 허세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17년 동안 살면서 가보지 못한 곳들을 마음대로 찾아다녔다. 그 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장도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멤버가 방학을 어떻게 보낼 거냐고 묻는 순간 나는 현실로 되돌아왔다. 내가 뛰어내린 날은 여름방학하고 3일째 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고등학생한테 방학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하루 쉬고 보충수업이 시작되었다. 방학식 날만 해도 그 다음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좋았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밤이 되자 숨도 쉬기 힘들 만큼 가슴이 조여 왔다. 한 두 시간 간격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창문이 아침으로 가득 찬 것을 보고는 눈앞이 흐려졌다. 혹시라도 엄마가 나를 깨우러왔다가 내 눈이 부어있는 것을 알아챌까봐 바쁘게 눈가를 훔쳤다. 말끔히 다려진 교복을 입고 아무 문제없다는 듯 집을 나서는 일이 그날따라 헛구역질 나올 만큼 버겁게 느껴졌다.


 한 낮의 교실 풍경은 여전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내 책상 위에 흰 국화꽃 한 송이가 놓여있다는 것뿐이었다. 말라가는 꽃잎을 만지작거리다가 책상이 어딘지 모르게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책상 상판이 아주 깨끗했다. 칼로 파낸 글씨도, 볼펜 볼이 빠져라 새겨 넣은 글씨도 없었다. 드러워, 꺼져, 병쉰새끼, 병 옮는다, 괴물이 따로 없네. 내 병은 전염병이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혼잣말일 뿐이었다. ‘그 자식’이 전염병이라고 선포한 뒤로 나는 전염병 환자가 되었다. 그 자식은 내가 근처에만 가도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그 자식은 물론이고 그 자식과 관련된 그 어떤 것과도 스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화장실 앞에서 마주치는 건 나로써도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실로 처음으로 그 자식을 제대로 보았다. 교실 한 가운데 자리에서 선생님 얼굴에 구멍이라도 낼 기세로 쳐다보고 있는 그 자식의 얼굴을, 나 또한 구멍이라도 낼 기세로 그 자식의 코앞에서 들여다보았다. 짙디짙은 눈썹. 눈에 뛰게 발달한 광대뼈. 저 스스로 깔치들이 환장한다고 자부하는 두툼한 입술. 부러진 콧대를 수술하면서 높이도 같이 올려준 코. 나는 그 자식이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그 자식의 인중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몇 번을 날려도 헛손질이었다.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린 것과 비슷하게 나는 어떤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쪽을 보자 나를 쳐다보고 있는 여자애가 있었다. 양 손으로 코와 입을 가린 채 얼어붙어있는 그애를 보고 나야말로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 살아있는 존재 중에 나를 알아본 건 동물들이 전부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애는 곧바로 정신을 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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