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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이 아닌 수탈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선 생산 관계를 봐야합니다.
게시물ID : history_237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미답
추천 : 18
조회수 : 834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5/10/15 19:48:52
일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국정화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주말을 집회로 반납하게 만드는 아주 몹쓸 것입니다. 

아무튼. 수출과 수탈에 관한 논쟁의 글들을 살펴보고, 제가 생각하는 바를 박찬승 선생님이 페이스북에 남긴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해서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식민지시기에는 수출이 아닌 이출을 하게 되는데요. 이 이출도 명목적으로는 경제적 거래에 의해서 진행이 됩니다. 즉 돈을 주고 사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하튼 빼았아갔다는 수탈론"은 틀린 것입니다. 항구에 집적되어있는 수많은 쌀은 일본 상인에 의해서 일본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미곡판매상 및 지주들은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그러면 수탈은 틀린 것일까요? 이출은 경제적 거래가 맞는데, 왜 수탈이라고 우기는 것일까요? 

문제는 생산관계에 있습니다. 당시 농촌을 지배하고 있던 지주-소작관계와 자본주의 경제의 발달 현상을 제외하고 매매거래만을 가지고 수탈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선 당시 농민들은 대다수 소작농입니다. 70~80%의 농민들이 자소작겸농 이거나 소작농의 상황이었습니다. 이들은 50~70%의 지대를 납부합니다. 조선시대는 기본적으로 병작반수 즉 절반을 지대로 납부합니다. 기본적으로 조선시대에 준하거나 더 높은 고율의 소작율을 내게 된것입니다. 기본적으로 근대자본주의가 발달하게 되면 소작제는 철폐됩니다. 왜냐면 노동생산성을 보장할 수 없기 떄문입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오히려 지주-소작제가 점차 강화되어갑니다. 

더 심각한 것은 소작기간이 근대적 계약관계로 변경된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소작은 관행적으로 평생 이어져갔고, 소작권이라는 개념으로 농민들의 권리로 인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제시대 토지조사사업으로 근대적 사적소유권이 발달하면서 소작권은 없어지고 소작은 근대적 계약관계로 전환되었습니다. 문제는 계약기간에 있었습니다. 계약은 70%정도가 1년으로 단기계약이었습니다. 농촌의 몰락현상이 심화되면서 소작농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그나마 소작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주와 마름의 횡포에 고분고분하게 있어야했습니다.  

그리고 농사에 필요한 각종 물품들, 특히 비료비와 수리조합비 등에 돈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자본주의 경제가 발달해간 것입니다. 하지만 당장 수중에 현금이 없었던 농가에서는 이 돈을 구하기 위해서 고리대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고리대를 갚고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수확 후 쌀을 내다팔았습니다. 문제는 조선 전체에 오로지 쌀만이 상품이 되는 상황에서 쌀값은 자연히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고리대의 압박은 농민들로 하여금 서둘러 쌀을 팔게 만들었습니다. 불리한건 농가니까요.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게된 농민들은 자연스럽게 소작쟁의를 일으키게 됩니다. 소작료 인하와 소작기간 연장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일제는 강력한 경찰력을 바탕으로 소작쟁의를 진압합니다. 일제시기 거의 내내 농가에서는 소작쟁의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됩니다. 

일제가 이처럼 지주-소작제를 옹호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고율의 소작료는 고리대와 함께 농가를 피폐하게 만들고 가난해진 농가는 돈을 구하기 위해서 서둘러 헐값에 쌀을 내다팔 수밖에 없습니다. 뉴라이트가 말하는 조선 쌀이 가지는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른말로 하면 이출의 비용을 줄이는 것입니다. 

자. 식민지 농촌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지주-소작관계를 바탕으로 발전해갑니다. 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농가에는 돈이 필요했고, 농가는 돈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들이 가진 유일한 상품인 쌀을 내다팔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적 거래 관계에 의해서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폭력적이었고, 착취적이었고, 그래서 '수탈'이였습니다. 식민지가 가지는 비대칭적 권력관계는 농가에 일방적 희생을 강요했습니다. 농가는 생존을 위해서 조선의 쌀을 내다 팔고 하루 하루 연명하기 위해서 만주의 좁쌀을 사먹었습니다. 

이걸 우리는 자본주의적 거래관계, 무역, 수출이라고 해야할까요? 폭력적인 '수탈'이라고 해야할까요? 

수탈이라는 용어가 가지는 무조건, 무작정의 함의는 아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계약관계, 거래관계도 폭력적이고 억압적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취업현장에서, 알바현장에서 갑들의 폭력을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현상을 '수탈'이라고 불어야할지? '착취'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수탈이 갖는 무조건 빼앗아갔다. 일본 경찰이 농민에게서 직접 가져갔다는 이미지가 싫어서 자본주의적 착취라고 보는게 맞지않을까 생각도 합니다. 

수탈이라고 부르기 싫으시다면 전 찬성합니다. 저도 그 용어가 가지는 문제점에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식민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었던 폭력성과 억압성은 고려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럼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ps. 링크를 걸어서 출처를 표기했는데, 이게 제 개인정보도 나오고 그러내요? 페이스북 글은 어떻게 링크 걸어야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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