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에는 장공이라는 왕이 있었다. 그는 색을 아주 좋아해 신하인 최저의 아내를 유혹했다가 들통나 최저가 구데타를 일으켜 왕을 죽였다.
비록 왕을 죽였지만 '왕을 죽인 사람'으로 역사에 남고 싶지 않았던 그는 제나라의 사관인 태사 백(伯 : 첫째 백)에게 "왕이 학질로 죽었다고 기록하라"고 명했다.
그러나 태사는 "崔杼弒莊公(최저가 장공을 시해했다)"고 죽간에 기록했다. 이를 본 최저는 태사를 죽였다.
당시 사관은 한 가문에서 가족간에 물려주는 세습직이었다. 이에 따라 중(仲 : 둘째 중)이 태사가 됐다. 최저는 다시 중에게 "왕이 학질로 죽었다고 기록하라"고 명했다.
그러나 중도 "崔杼弒莊公(최저가 장공을 시해했다)"고 죽간에 기록했다. 이를 본 최저는 둘째도 죽였다.
다음은 막내인 계(季 : 막내 계)의 차례였다. 최저는 계를 불러놓고 "너의 두 형이 내 명을 따르지 않다 죽었다. 기록해봐라"고 말했다. 계는 죽간에 다섯글자를 기록했다. 崔杼弒莊公. 이를 본 최저는 크게 탄식을 하며 그 기록을 그대로 놔두었다.
한편, 백과 중이 사망하고 계가 왕실에 들어갔을때, 태사 아래서 역사를 기록하는 관리인 남사(南史)가 그 소식을 듣고 죽간을 챙겨 궁궐에 들어가다 계를 만났다.
계가 "어딜 그리 급히 가는가?"고 묻자 남사는 "그대 형제들이 모두 죽었다고 하여 실록이 왜곡될까 봐 달려 온 것이오.나라도 바른 기록을 남겨야 하지 않겠소?"라고 말했다.
태사 계는 말없이 자신이 쓴 죽간을 남사에게 보여주었다. 남사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거리고 돌아갔다.
....어제는 연세대, 오늘은 고려대에서 사학과 교수들이 국정 교과서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그 또한 기개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만, 과거 제나라 사관들의 기개에 견주어 봤을때 어딘지 아쉬운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출처 | 사마천 사기 "제태공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