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 국회가 시민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집단자위권 행사에 필요한 안보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일본은 전후 70년 만에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거듭났다. 법안통과를 주도했던 아베 총리는 ‘강한일본’을 주장하며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주장해왔다.
그는 전쟁을 일으킬 법안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 법안 여러 곳에는 침략전쟁의 명분이 숨겨져 있다. 전범 국가였던 일본이 반성은커녕, 다시 침략전쟁의 발판을 놓은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우려가 크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데자뷰처럼 스치는 게임들이 있었다. 일본은 게임을 통해 침략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해 왔다. 자위대의 해외 파병 시나리오를 정교하게 시뮬레이션 한 게임도 나왔다.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의 침략무기들을 친근감 있게 의인화 시켰고, 과거 정한론을 주장했던 일본 극우파 인물들을 미화하는 작업도 계속해 왔다. 이렇게 정교하게 조작된 일본게임들은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주고 있다.
당시 이런 게임들을 나왔을 때는 불쾌감이 앞섰지만, 자위대 파병이 현실이 된 지금은 공포감마저 느껴진다. 게임 안에서 일본의 역사는 어떻게 미화되고 있을까? 일본 안보법안이 통과된 시점에서 다시 한 번 그때 게임들을 점검 해보자.
이미지 확대보기 “인류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데 있다”
-토인비-
게임에서 기획된 자위대 해외파병 시나리오!
10년 전 비슷한 기획기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일본게임의 역사왜곡에 관한 기획인데, 해당 게임들을 다시 들춰보니 또 다른 느낌이다. 특히 ‘현대대전략’이라는 전략게임이 그렇다. 현대대전략은 유명 시뮬레이션 게임 ‘대전략’ 시리즈의 외전격 작품이다. 이 시리즈는 출시 때마다 역사왜곡 논란을 일으킨 게임으로 유명하다.
이미지 확대보기 <'현대대전략2001' 광고. 마치 15년 후 일을 예측이나 한 듯 '자위대 파병결정, 이란 문구가 섬뜩하다>
2001년 출시된 ‘현대대전략: 해외파병의 길’은 자위대 해외파병을 정당화 할 뿐만 아니라 선동하고 있다. “21세기 자위대는 바다를 넘는다!”라는 주제로 세계 분쟁지역에 자위대를 투입해 일본이 세계의 질서를 확립한다는 내용이다. 한국에 관한 시나리오도 있다.
한국과 북한의 2차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이때 자위대가 투입되어 인천 상륙작전이나 서울 탈환전 등의 작전을 펼치는 시나리오다. 처음에는 한국을 돕기 위한 평화유지군으로 상륙하지만, 이내 점령군으로 변한 다는 내용도 섬뜩하다. 게임에 나온 독도문제는 더 심각한다.
'현대대전략 2002'부터 대놓고 독도를 다케시마로 표기하고 '다케시마 수복작전' 시나리오를 포함시켰다. 한국에서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출시된 ‘현대대전략2005’부터다. 이 게임은 일본 자위대가 유엔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해 중앙아시아 분쟁에 개입한다는 내용을 전재로 깔았다.
이미지 확대보기 <현대대전략2005, 한국과 일본의 독도전쟁 시나리오를 다뤄 당시 사회적인 공분을 일으켰다.>
특히 독도 관련 시나리오는 충격적이다. 다음은 독도침탈 시나리오의 일부다(그들의 말로는 수복이라고 표현했다). 일본군이 독도 상륙 도중 한국 해양경찰에 구속된다. 이에 일본은 특수부대를 투입해 독도를 점령한다.
한국은 보복 차원에서 대마도를 습격한다. 대마도를 점령한 한국군은 일본 양민들을 인질삼아 독도반환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양민학살이 벌어지고, 일본에선 분노여론이 들끓는다. 일본 자위대는 자국국민의 안전을 수호하기 위해 한국을 공격한다.
게임에서 일본의 침략주의는 철저히 미화됐다. 자위대 파병은 일본 국민의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란 것을 계속 주입하고 있다. 한국의 이순신함, 일본 이지스함 등 실제 존재하는 무기들이 대거 등장한다.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약하게 설정되면서, 일본 군사력에 대한 자긍심을 키우고 있다.
이밖에 중국이 한국을 침략해 서울을 점령하는 시나리오, 북한과 한국이 동맹을 맺고 일본을 공격하는 '황당한' 시나리오 등 다양한 전쟁 시나리오가 등장한다. 모든 시나리오를 통틀어 동북아 평화를 위해 일본 자위대가 나서야 한다는 전재가 깔려 있다. 현대대전략 시리즈는 2009년까지 출시되면서 매년 역사왜곡 논란을 일으켰다.
이미지 확대보기 <현대대전략2005. 한국 이순신함이 일본 잠수함의 어뢰공격을 맞고 격침되고 있다.>
일본 군국주의의 정당성을 부여하다
2005년 발매된 ‘망국의 이지스’도 문제작이다. 게임의 주제는 전형적인 일본 극우파들의 주장과 일치한다. 세계 최강의 군함 ‘이지스함’을 보유하면서도 이를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일본의 처지를 개탄하는 내용이다. 그러면서도 집단자위권에 대한 명분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일본 이지스함을 탈환한 인물이 한국인이란 점에서 일본의 반한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게임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코에이가 만든 작품이다. 동명의 영화와 소설도 나와 있다. 코에이는 ‘삼국지’, ‘대항해시대’ 같은 게임으로 국내에도 팬이 많다. 하지만 ‘태합입지전’, ‘제독의 결단’, ‘풍운 막말지사전’, ‘망국의 이지스’ 등 일본 제국주의를 미화시킨 게임을 만들어왔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물론 이 게임들은 국내에 정식 출시되지 않았다).
이미지 확대보기 <2005년 코에이가 만든 망국의 이지스. 코에이는 삼국지, 대항해시대 시리즈로 국내에서 친숙한 개발사지만, 일본의 제국주의를 미화한 게임들도 만들어왔다>
문제는 이들 게임이 일본 정부의 자위대 파병 합법화 작업과 보폭을 맞춰왔다는 것이다. 2001년, 일본 교과서 왜곡과 고이즈미 수상 신사참배로 국제적 물의를 빚었을 때 `현대 대전략: 해외파병의 길`이 발매됐다.
독도침략 시나리오를 담은 ‘현대대전략2002’는 자위대의 권한을 강화시킨 일본 유사법제에 맞춰 출시됐다. 특히 이 게임의 스텝 중 ‘세이타니 신이치’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 사람은 ‘진 대동아전쟁시리즈', '이상한 나라의 자위대’ 등의 소설을 쓴 일본의 대표적 우익인사다.
게임 속에서 일본은 언제나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며, 그 중심에는 막강한 군사력이 존재한다. 일본의 극우주의를 변호하는 데 이만한 선전효과는 없을 것이다. 역사왜곡 게임으로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개발사는 ‘현재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사실에 근거하여 개발한 게임일뿐 자위대 해외파병을 찬성하는 내용은 아니다'라고 변명하고 있다.
집단 자위권법에 대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법이 아니라고 하는 아베의 주장과 비슷하다. 현대대전략 시리즈는 2001년부터 2009년까지 10년간 꾸준히 나왔다. 그만큼 마니아 층이 탄탄하다. 일본 정치가들의 신사참배 문제가 있었던 15년 전부터, 이 작업은 꾸준히, 교묘하게 진행되어 왔다.
아베의 정치 롤모델, 게임으로 환생하다
집단자위권법 통과의 주인공은 아베신조 총리다. 야당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집단자위권법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이로써 일본 우익들의 오랜 염원인 자위대 해외파병이 성사됐다. 그렇다면 그는 왜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법안을 통과시켰을까.
그는 일본 우익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야마구치 현 지역구 출신이다. 과거 ‘조슈’ 번으로 불렸던 야마구치 현은 일본 메이지유신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지역이다. 문제는 조슈 출신 정치가들이 대부분 일본 제국주의를 주장했고, 아베도 이들의 사상을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이미지 확대보기 <일본 전투기를 시승하고 있는 아베 총리. 비행기에 세겨진 731이란 숫자 때문에 전세계가 경악했다. 731은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생체실험부대 731부대를 떠올리는 숫자다>
실제로 일본 침략전쟁의 사상적 기반을 제시한 ‘요시다 쇼인’과 그의 정신을 계승한 ‘다카스키 신사쿠’, ‘이토 히로부미’ 등이 조슈 출신 정치가들이다. 아베가 존경하는 정치인들도 조슈출신 인물들이다. 일본에서는 시대를 개혁한 영웅이지만, 우리 입장에선 침략주의의 원흉인 셈이다.
그렇다면 게임에서 정한론을 주장했던 세력들은 어떻게 묘사 됐을까. PS2게임 ‘풍운 막말전’에선 조슈 출신의 실존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게임은 근대 일본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막부를 중심으로 뭉친 ‘좌막파’와 일왕을 추대하려는 ‘도막파’간의 세력다툼을 다뤘다.
여기서 도막파는 일본 메이지유신의 주축인 ‘조슈’, ‘사쓰마’, ‘도사’ 지역의 하급무사들이다. 이 중에는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한 ‘요시다 쇼인’, 정한론의 원조 ‘가쓰라 고고로’, 조선출병을 주장한 ‘사이고 다카모리’, 아베 리더십의 정신적 지주 ‘다카스키 신사쿠’ 같은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메이지 유신 이후 조선침략의 기틀을 놓았다.
이미지 확대보기 <한국에서도 정식 발매된 풍운 막말전. 정한론을 주장했던 도막파 지사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미지 확대보기 <풍운 막말전의 다카스키 신사쿠. 아베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정치적 롤모델 중 한명이다. 29세에 요절한 그는 일본에서 가장 극단적인 극우파 인사였다. 게임에서는 풍류를 즐기는 전형적인 일본 무사로 등장한다>
명성황후 시해를 주도했던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가로우', '미우라 고'로 등도 도막파 출신의 인물들이다. 하지만 게임은 ‘메이지 유신’이란 시대적 배경에서 이들의 활약을 낭만적으로 묘사해 놓았다. 마치 한국에서 '김두한', '시라소니' 같은 낭만주먹의 시대를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
코에이가 제작한 ‘유신의 폭풍: 막말 지사전’도 조슈번 출신 무사들이 주요인물로 나온다. 이 게임 또한 젊은 무사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나라를 개혁한다는 교훈적인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은 제국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는 철저히 숨겨 놓았다.
이미지 확대보기 <메이지유신 시대를 다룬 '막말지사전'(좌) 태평양 전쟁을 다룬 '제독의 결단'(우), 둘 다 코에이의 작품으로 심각한 역사왜곡을 담고 있다>
친근한 캐릭터로 부활한 제국주의 망령들
베스트셀러 만화 ‘바람의 검심’의 주인공도 도막파 출신의 암살자다. 실제 역사에서 도막파에는 유명한 암살자들이 다수 존재 했다고 한다. 주인공 히무라 켄신도 조슈쪽 암살자다. 이들 중 일부가 조선으로 넘어가 명성황후를 시해 하고 '을미사변'을 일으켰다는 건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바람의 검심은 이런 암살자들의 모습을 비장하면서도 멋스럽게 묘사하고 있다. 물론 게임은 전쟁에 대한 회의와 반전 메시지를 담았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조슈쪽 무사들이 조선 침략의 선봉에 섰다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다.
이처럼 조선침략의 원흉이자, 아베정치의 사상적 기반이 됐던 인물들이 메이지 유신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선각자의 이미지로 미화되고 있다. ‘바람의 검심’도 여러 게임으로 리메이크 된 작품이다.
이미지 확대보기 <바람의 검심 주인공 히무라 켄신. 한국에서도 팬이 많은 캐릭터. 그는 조슈출신 암살자로 등장한다. 하지만 만화 내용과는 달리, 실제 역사에서 이들은 조선에 넘어와 명성황후를 시해한 살인범이었다>
최근 작품인 ‘은혼’도 제국주의 미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임보다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이 작품은 일본 근대사의 인물들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이 과정에서 딱딱한 역사적 인물들은 코믹하면서도 친근한 만화 속 인물로 둔갑한다.
작가는 ‘이토 히로부미’처럼 논란의 소지가 큰 인물은 뺐다고 했다. 하지만 ‘요시다 쇼인’, ‘다카스키 신사쿠’ 등 조슈 출신 무사들은 이름만 약간 바꾸어 그대로 등장시켰다. 이 작품 또한 한국에서 우익논란을 일으켰지만, 내용상 노골적인 극우성향은 없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캐릭터들도 실제 역사적 모델들과는 달리 가볍고 코믹한 모습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가벼움이 역사를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친근감으로 다가설 수 있다는 점에서 신경 써야 할 대목이다. 청소년들이 일본 침략주의 인물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확대보기 <은혼 등장인물 요시다 쇼요. 조슈 출신 정치가 쇼시다 쇼인이 모델이다. 만화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량한 선생님으로 묘사되지만, 실제 그는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하며 일본 침략주의의 명분을 구축한 인물이다. 요시다 쇼인 또한 아베가 평소 존경하는 인물 중 한명이다.>
일본 우경화를 비판한 게임
글을 쓰기 전에 스스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필자는 과거 비슷한 기획을 쓰면서 ‘사쿠라 대전’을 일본 제국주의 미화 게임으로 설명했다. 게임의 겉만 보고 깊이 있게 통찰하지 못한 우를 범했다. 사쿠라 대전은 제국주의를 미화하는 게임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본 우경화를 경계하는 메시지가 강하다. 세가의 사쿠라 대전은 화려한 비쥬얼과 멋진 음악으로 두터운 팬을 확보하고 있는 게임이다. 귀여운 미소녀 캐릭터와 흥겨운 음악 속에는 ‘반전주의’라는 묵직한 주제의식이 흐르고 있다.
사쿠라 대전의 배경은 태정시대다. 태정시대는 실제 일본 대정시대를 바탕으로 한 가상의 세계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제국주의 노선을 밟게 되는데, 이 시기가 바로 '대정시대'다. 쉽게 말해 독일 개발사가 나치시대를 배경으로 게임을 만든 꼴이다.
이미지 확대보기 <한때 왜색 짙은 일본게임으로 오해를 산적이 있지만, 사실 사쿠라 대전은 일본 제국주의를 비꼬는 반전주의 게임이다>
주인공이 속한 단체의 호칭도 ‘제국화격단’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이름도 제도(帝都)다. 제국의 도시라는 뜻이다. 복장은 물론, 일본 국화 벚꽃(사쿠라)이 게임 내내 흩날린다. 이 정도면 일본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게임처럼 보일법 하다.
하지만 게임 내용은 역설적이다. 겉으로는 제국주의 향수를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하는 시선이 깔려 있다. 게임 속 악당은 일본 제국주의를 부활시키려는 세력으로 나온다. 악당들은 동경에 쿠데타를 일으키고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려 한다. 이는 메이지유신 이후 정권을 잡은 정치가들이 침략자로 변질된 일본 근대사를 풍자한 것이다.
게임은 군국주의보다는 개인의 우정이나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면서 과거 일본의 전체주의를 교묘히 비꼬고 있다. 복식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를 연상시키지만 내용은 개인간의 사랑과 자유를 강조한다.
이미지 확대보기 <시대적 배경과 복식은 일본 제국주의를 연상 시키지만, 게임은 메이지 유신 후 침략주의로 변질된 일본 정치를 비꼬고 있다>
‘애국심’과 ‘정의’를 부르짖는 제국주의자들은 대부분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는 악당으로 등장한다. 실제로 사쿠라 대전2의 부제 ‘그대여 죽지마오’는 여류시인 요사노 아키코의 반전시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녀는 청일전쟁때 종군한 동생을 걱정하며 반전시를 지었는데, 당시 일본사회를 발칵 뒤집었다고 한다. 사쿠라대전 개발자 '히로이 오지'는 한 인터뷰에서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고 우경화를 경계해야 한다.”며 “사쿠라 대전은 철저한 반전게임이다.”고 밝혔다.
이미지 확대보기 <사쿠라 대전 개발자 히로이 오지. 반전주의자인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쿠라 대전 외 '천외마경' 시리즈를 개발한 유명 크리에이터>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겠다는 야욕으로 점철된 군국주의 침략전쟁인 태평양 전쟁은 세계 평화를 지켜내기 위한 아름다운 소녀들의 싸움이 되며, 일본제국의 침략을 막아냈던 연합군의 함대는 순식간에 ‘세계를 위협하는 괴물들’인 심해서함으로 탈바꿈합니다.”
-칸코레와 태평양 전쟁의 탈정치화 블로그 글 인용-
다시 불 붙은 일본게임 역사논쟁
일본 우경화에 대한 게이머들 간의 시각차를 보여준 작품도 있다. 일본 웹게임 ‘함대 콜렉션’은 태평양 전쟁에 사용된 일본 전함을 다뤘다는 자체만으로 논란이 됐다. 플레이어는 제독이 되어 자신의 함대를 이끌고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 전투는 실제 태평양 전쟁의 주요 전투를 모티브로 했다.
독특한 점은 일본 전함들을 미소녀 캐릭터(칸무스)로 의인화 시켜 묘사했다는 것이다. 다양한 캐릭터들의 개성을 내세워 흥행에 성공했다. 이 게임은 일본문화를 선호하는 미국과 한국에서 인기다. 하지만 논란도 적지 않다. 과거 일본의 침략무기들이 예쁜 소녀 이미지로 희석되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질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미지 확대보기 <일본 웹게임 함대 콜렉션(칸코레). 일본 침략주의 역사를 세탁하는 게임인가? 독특한 소재의 미소녀게임일 뿐인가? 게임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한 블로거의 문제제기에서 발단 됐다. 그는 '함대 컬렉션'이 일본 침략주의 역사세탁 게임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게임이 불러오는 역사의 탈정치화는, 현재 아베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침략 주의적 과거를 게임 이야기로 치환하고 있으며, 이런 방법으로 과거사를 잊으려 하고 있다.
단순한 게임인데 뭐가 문제냐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반대쪽에선 게임에서 정치성을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비약이라고 반박했다. 태평양 전쟁을 다룬 게임을 일본 침략주의로 해석한다면, 폭력게임을 하는 사람은 무조건 폭력적이 된다는 논리와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함대콜렉션’ 논란은 게임의 탈정치화 논쟁과 맞물려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다. 게임이 의도적으로 일제 침략역사를 미화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콘텐츠 속에 스며든 역사적 진실은 알고 플레이해야 한다. 일본 침략주의에 사용된 무기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가져다 주었는지 말이다.
이미지 확대보기 <태평양 전쟁때 사용된 무기를 미소녀 캐릭터로 의인화 시킨 함대 콜렉션. 최소한 역사적 사실만은 알고 플레이해야 되지 않을까>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게임은 '쓰레기'다
지금까지 일본 우경화에 관한 여러 게임들을 살펴보았다. 대부분 일본역사와 영웅들은 과장과 미화로 점철됐다. 물론 게임의 특성상 과장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부끄러운 역사를 세탁하거나 극단적 국가주의를 선동해서는 안 된다. 미화된 일본사관이 유저들에게 지속적으로 유입될 경우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단순한 게임일 뿐”, “재미만 있으면 되지” 같은 지나가는 말속에서 우리가 간과했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애국심으로 포장된 전쟁명분’, ‘구국열사로 미화된 침략자들’, ‘카리스마에 가려진 잔인한 살육’, ‘미소녀로 둔갑한 침략주의 사관’ 등 지금도 일본은 자신의 과거사를 게임으로 세탁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사를 사죄하지 않은 일본이 아무리 아름다운 역사게임을 만든다고 해도, 우리는 곱게 보지 않을 것이다. 앞서 토인비의 말처럼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을 받지 못한 게임은 인간의 정신을 현혹시키는 '쓰레기'일 뿐이다. 일본게임이 역사 앞에서 자유로워지려면, 과거사에 대한 일본정부의 진정성 있는 반성부터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