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자연계열 학과에서 대학원까지 나온 2n세 처자임.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다니던 곳에선 대학원생 중 몇명을 선발해서 수업 조교로 들여보냈음. 실험이 같이 딸려오는 수업에 조교로 들어가고 실험보고서 평가도 조교가 맡았음. 그래서 생각보다 성적에 미치는 영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음.
내 친구 동생놈은 딱 보면 순딩한 얼굴에, 성직자 자녀임. 실제로 성격도 성직자 집안 자녀답게 누가 건드려도 뭐라고 안 하고 허허 웃으면서 넘기는 순둥이임. 일 잘 하고 조용한 애라 군대에서도 별 탈은 없을 줄 알았는데 탈이 생겼음......
워낙 순한데다 부모님한테 걱정 안 끼치려고 노력하는 타고난 효자임. 차마 엄빠한테는 말을 못 하고 누나한테만 면회 와 달라고 불렀는데 그 때 나도 따라감. 덩치는 산만한 놈이 자기 반밖에 안 되는 누나한테 매달려서 엉엉 우는게 너무 안쓰러웠음. 선임이 괴롭힌다는데 나나 내 친구나 군대의 ㄱ도 모르고 동생은 동생대로 나만 참으면 된다는 소리나 했음;; 하필 또 거의 맞선임이라 엄청나게 오래 볼 사이라고 했음.
편지라도 많이 보내주고 예쁜 후배들한테 부탁해서 사진 보내주고...당시 학생이었던 내 친구는 지갑 탈탈 털려가면서 그 선임한테 내 동생 잘 봐달라고 별 조공을 다 바침. 그 와중에 뭐 사서 보내라고 주문도 넣음 ㅡㅡ...내 친구 지갑이 털리다 못해 가루가 되어갈 때 쯤에 두 번째로 면회를 갔음.
맛있는 거 먹고 싶을 테니 먹고싶은 거 다 말하라고 해서 다 싸갔음. 더럽고 치사하지만 그 선임도 같이 나오라고 해서 먹이자고 ㅠㅠ 군대 많이 좋아졌다니까 걱정 말라던데...내가 보기엔 여전히 아니었음. 대한민국 장병들 너무 고생함......
하여간 가서 기다리는데 들어오는 사람이 뭔가 익숙해 ㅋㅋㅋㅋㅋㅋㅋㅋ 머리를 밀어서 한번에 못 알아봤는데 내 후배였음. 필자가 3학년이었을 때 신입이었고 해서 잘 아는 놈이었는데, 1학년 때도 거들먹거리는 거나 허세가 심해서 선배들한테 쿠사리 많이 먹었던 놈임. 설마했는데 그 뒤로 내 친구 동생이 따라들어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자리에서 바로 전세역전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최대한 예쁘고 조신하게 차려입고 간 거 다 때려치우고 머리 확 풀어헤치고 야, 너 나 알지? 이랬음 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띠꺼운 표정을 지으면서 군대에서 일진놀이 잠깐 즐기고 대학 생활 내내 엿되고 싶냐고 협박도 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후로는 이야기를 듣자 하니 전혀 터치를 안 했다고 함 ㅋㅋㅋㅋㅋㅋㅋ 제대하고 복학생과 조교 관계로 다시 만났을 때 내 눈 피하는 게 너무 웃기더랔ㅋㅋㅋㅋㅋㅋ 참 세상 좁다는 걸 느꼈었음.
그리고 번외편. 저런 놈이 공부라고 제대로 할 리가 없음. 성적이 어찌나 핵폐기물처럼 나왔는짘ㅋㅋㅋㅋㅋ 그나마 내 지도교수님이 학과 교수님들 중에 가장 인자하고 점잖으시다고 소문나신 분이심. 다른 분들이 나쁜 분이라는 건 아니지만 성적 정정의 가능성을 점치자면 우리 교수님이 가장 높았음. 그 놈 복학하고 첫 학기가 끝난 여름방학때 성적 고쳐달라고 찾아옴.
위에 썼다시피 내 지도교수님은 그 인품 때문엨ㅋㅋㅋㅋㅋ 성적 정정기간에 오히려 힘든 케이스셨음. 하도 문턱이 닳도록 찾아오니까 그 때는 아예 해외로 도망가시면서 실험실 학생들에게도 휴가를 주셨음. 오전만 안전점검하고 대충 돌볼 것만 보고 가라고. 이 놈이 학교에 와서 안 계시니까 조교인 나한테 전화를 걸었음.
난 그 때 일찍 끝나니 오랜만에 친구랑 카페에서 노가리까고 놀고 있었고 동생도 같이 있었음. 제츨 안 한 보고서 다 새로 써서 가져왔다고 받아달라 사정하길래 일단 나 어딨으니까 이리 오라고 불렀음 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 동생 보는 앞에서 처절하게 까줬음 ㅋㅋㅋㅋㅋㅋㅋㅋ 실제로 보고서 퀄리티가 핵폐기물급이기도 했고. 걔가 마지막에 그 놈 얼굴 보고 씨익 웃어보이는데 괜히 내가 속이 다 시원했음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