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108년 한(漢) 무제가 고조선(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낙랑 임둔 진번 현도 대방 등 한 군현의 위치를 둘러싼 갈등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한 군현 위치는 동북아역사재단(이하 재단)이 47억 원을 쏟아 부어 2008년부터 8년째 진행 중인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사업’의 핵심 쟁점이다. 국회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위와 일부 재야 사학계는 4월 재단이 제작 중인 역사지도를 공개하면서 이 지도가 낙랑군을 현 평양 지역에 그리는 등 한 군현의 위치를 한반도 북부에 위치시켜 “재단이 중국의 동북공정을 추종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쳐 왔다. ○ 동북아재단, 한 군현 위치 병기 계획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재단 국정감사를 하루 앞둔 4일 역사지도 제작을 총괄하는 장석호 재단 역사연구실장은 “한 군현의 위치에 대해 학계와 재야 사학계의 의견이 통합되지 않으면 최종적으로는 양측 입장을 지도에 병기한다는 것이 재단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역사지도 연구 용역은 다음 달 20일 마무리된다. 당초 이 지도는 올해 말 출판될 예정이었으나 한 군현 위치 논란이 불거지면서 검수를 이유로 출판을 3년 늦췄다. 논란이 된 한 군현의 위치는 학계의 통설인 한반도 북부설을 따른 것이다. 일부 현행 고교 국사교과서에도 낙랑군을 평양 지역에 그린 지도가 실려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평양 지역 고분들에서 한나라 계열의 유물이 출토되고, 2005년 평양에서 낙랑군 속현들의 인구가 적힌 ‘낙랑 목간’이 발견되는 등 고고학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반면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등 일부 학자들은 한 군현의 위치를 중국 동북부 허베이(河北) 성 또는 요하 일대로 보고 있다. 이 소장은 올 8월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를 출간하며 “동북아역사지도는 중국이 동북공정 차원에서 그린 ‘중국 역사지도집’을 그대로 베낀 것”이라며 “한반도가 외부의 식민 지배를 받아 왔다는 인식을 심기 위해 만들어진 일제 식민사학을 주류 사학계가 그대로 계승했다”고 주장했다. ○ “고조선 세력 범위에 대한 지적은 수용할 만” 이와 별개로 한과 위(魏)나라의 국경을 각각 한반도 북부까지 연장해 그린 것은 편찬위의 잘못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낙랑군이 중국 왕조의 직접 지배를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최근 학계의 연구와도 어긋난다. 지도 편찬위원장인 윤병남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문제의 지도는 작업 중인 자료였을 뿐 최종 결론이 아니다”라고 해명하면서 “후기 낙랑군은 토착적 성격이 강했다는 연구 결과 등을 반영할지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역사지도가 고조선의 강역을 축소했다는 비판에 대해 주류 사학계에서도 수용할 만한 부분이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 소장은 “역사지도가 고조선 관련 유물이 쏟아져 나온 요하 서쪽을 고조선의 강역으로 명시하지 않고 ‘고조선 관련 문화’라고 모호하게 설명한 것은 잘못됐다”고 썼다. 고조선사를 전공한 한 대학 교수도 “랴오닝 성 서부 대릉하를 너머 현 랴오닝 성과 허베이 성의 경계지점까지는 고조선의 세력 범위로 보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재단이 당초 동북공정과 관련돼 있어 예민한 사안임에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지 못한 데다 뒤늦게 학계 통설과 일부의 주장을 병기하겠다는 것 역시 일시적인 봉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국회 동북아역사왜곡특위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은 지도 편찬위와 재야 사학계에 국회에서 공개 토론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편찬위가 이를 수용해 11월 중순 양측의 ‘맞짱 토론’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조종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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