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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숙 전청와대 홍보수석이 말하는 노무현
게시물ID : humorbest_23574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노총각Ω
추천 : 169
조회수 : 1849회
댓글수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9/06/09 07:41:49
원본글 작성시간 : 2009/06/09 04:47:33
당신에겐 엄격하고 타인에겐 너그러웠던 대통령님

조기숙(前 청와대 홍보수석)

청와대 근무 시절, 권 여사께서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대통령님과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아직까지도 대통령님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어떤 때는 나나 참모들이 잘못한 것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내셔서 무서워서 말도 못하겠는데, 어떤 때는 너무 너그러우셔서 어떤 모습이 진짜 대통령의 모습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나의 대답은 비교적 단순했다.

“대통령님은 원칙주의자이시므로 행동원칙이 분명하다고 봅니다. 공적인 잘못으로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에 대해서는 심하게 꾸지람을 하시지만, 대통령님 개인에게 잘못한 사적인 실수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우신 것 같아요.”

나는 참모들 중, 대통령과의 인연이 가장 짧은 사람이다. 일면식도 없이 언론활동을 하다 부름을 받았으니 대통령과 함께 한 세월이 몇 개월밖에 되지 않는 때였다.

하지만 이심전심으로 대통령을 잘 이해하는 축에 들었는데, 아마도 리더들의 성격 연구를 많이 한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통령의 성격을 진단해서 대통령님과 여사님 앞에서 성격유형을 읽어 드렸을 때에는 어떻게 그렇게 점을 치는 것처럼 잘 맞느냐며 두 분이 무릎을 치며 크게 웃으셨다.

권 여사님은 나의 해석에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 맞아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정확한 것 같아요. 옛날에 고시 공부하실 때에는 아이들이 아빠에게 가지 말라고 해도 막 기어가서 난감했는데 대통령님은 괜찮다며 건호를 무릎에 앉히고 앉은뱅이 책상 앞에서 고시공부를 하셨어요.”

나는 자상한 아버지로서 대통령님의 면모를 그 때 처음 알았다.

"떳떳하지 못한 방법 쓰고 싶지 않다"

한 참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대통령님 후보 시절에 방송국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TV토론 질문을 미리 얻을 수 있었어요. 한나라당 후보에게도 주었다며 노무현 후보만 손해를 보면 어떻게 하냐고 저에게 건네주는 것이었어요.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대통령님께 드리며 이것 보시고 토론 준비하시라고 말씀드렸다가 정말로 불호령을 들었습니다.”

대통령님은 당시 대강 이런 내용의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다른 후보가 질문을 미리 보든 안보든 그건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떳떳하지 못한 방법을 써서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다. TV토론을 잘 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 앞으로 다시는 내게 그런 것 가지고 오지 마라.”

크게 꾸중을 들은 참모는 다시는 정정당당하지 않은 일은 말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를 떠나기 한 달 전쯤, 딱 하루 지각한 날이 있었다. 새벽 1, 2시에 집에 들어와서 다시 새벽 5시 30분에 기상해서 동이 트기 전 집을 나서야 하는 생활이 무척 힘들었다. 하루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아 아침 7시쯤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보좌관은 오전에 아무 스케줄이 없으니 천천히 나오라고 했다. 오전 8시쯤 일어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직원에게 다급한 전화가 왔다.

“큰일 났어요. 대통령님과 신년사 준비회의가 9시에 있어요.”

기자들에게 비보도를 요청해서 내가 곧 떠난다는 것이 외부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그 전해 11월부터 떠날 준비를 했던 터라 나는 2006년 1월 말 예정이었던 신년사 준비팀에서 빠져 있었다. 하지만 함께 독회를 하고 연설을 다듬는 일에는 빠질 수가 없었다. 나는 홍보수석실의 책임자였고 그 일은 우리의 주요업무가 아니었던가.

순간 앞이 캄캄했다.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 불명예를 어찌할 것인가. 실수가 거의 없었던 비서가 왜 하필 그 중요한 회의를 기록해두지 않아 나를 곤경에 빠뜨리는지 난감하기만 했다. 집이 경기 일산이다 보니 아무리 급하게 서둘러도 회의실 앞에 당도하니 15분이 늦었다.

회의 도중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도저히 대통령님 얼굴을 뵐 면목이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엉덩이를 먼저 들이 밀면서 대통령과 멀지 않은 좌석에 살그머니 앉았다. 고개는 아래로 숙인 채 살짝 눈만 들어 대통령을 쳐다보다 눈이 딱 마주쳤다. 대통령은 환한 미소로 눈인사를 보내셨다. 순간 그 미안함이란 땅 속으로 꺼지고 싶었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을 경질하지 않은 이유

대통령은 참모의 잘못은 크게 꾸짖으셨어도 실수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우셨다. 가끔 여론의 질타에도 참모를 해임하지 않고 감싼 적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다.

‘김선일 사건’이 터졌을 때, 전 국민이 분노했고 여론은 외교통상부 장관의 경질을 요구했다. 대통령은 일단 사건을 수습하고 책임 소재를 따져보자고 말씀하셨다. 전방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터져 국방부 장관을 해임하라는 요구가 드높았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어떤 원칙을 가지셨을까?

“누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어쩔 수 없는 잘못인 경우에는 인책할 수 없다”

이것이 대통령이 남을 질책하거나 용서할 때 사용하는 잣대였다. 개인의 불성실과 불찰로 인한 심각한 과실이 아닌 경우엔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을 일이 아니며, 더구나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모면을 위해 참모를 제물로 삼는 일엔 극도의 거부감을 가졌다.

또 아무리 개인적 실수라 하더라도 공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경우에는 책임을 져야겠지만 구조적 한계가 있는데도 그 때문에 대통령 개인이 상황이 어렵다고 하여 모면을 위해 책임을 묻는 일에는 대단히 엄격했다.

나의 발언에 대한 수구언론의 왜곡, 물어뜯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우리처럼 거짓말 한 번 안해 보고 교과서처럼 살아온 사람은 수구언론이 어느 정도까지 왜곡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내 발언으로 인해 대통령이 곤경에 처하거나 난감하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건만 단 한 번도 질책하신 적이 없었다.

서거하시기 얼마 전에도 내가 대통령을 옹호한 발언이 조선일보의 왜곡으로 대통령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아프게 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비공개 카페에 해명 글을 올리자, 실수한 나를 더 위로하셨다.

“나보다 더 아파하는 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옵니다. 인터뷰가 악의적으로 왜곡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습니다.”

참모로 가까이 모실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

당신에겐 티끌만큼의 잘못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엄격했지만 타인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던 대통령님.

대통령과의 인연이 짧아 혹시 오래된 대통령 동지들이 나를 소외시키고 힘들게 할까봐 대통령은 나를 표나게 편애하셨다. 별로 잘한 일도 없는데 내가 한 조그만 일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몇 번씩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대통령께 이렇게 외치며 소리 놓아 울고 싶다.

“대통령님 빽 믿고 언론의 비판과 왜곡에도 조금도 기죽지 않았었는데, 대통령님 없는 세상 저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저의 넋과 정신적 지주를 잃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답 좀 해주세요~.”

대통령은 내가 청와대를 떠나던 날, 안 오겠다는 사람 억지로 데려다 상처만 입혀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대통령의 청와대’를 증언할 수 있게 된 것만도 영광이라며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이렇게 빨리 님의 시대를 증언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대통령님, 다시 태어나도 대통령님 참모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대통령님을 가까이서 모실 수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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