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 『민족인가, 국가인가? - 신라 내물왕 이전 역사에 답이 있다』, 소나무, 2006
p. 159
손진태가 건국신화에 대해 위와 같은 주장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 아니라 1945년 이전에 쓰다 소키치 같은 일본인 역사가들이 한국의 건국신화를 허구의 산물이라고 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건국신화에 대한 주장은 손진태만이 아니라 이병도도 따랐다. 와세다대학 교수였던 쓰다 소키치의 제자인 손진태 등은 그들의 스승이 한국의 건국신화를 비판한 정치적 의도를 간파하지 못했다. 일본 와세다대학의 스승에게서 식민사학을 익힌 그들이 건국신화를 전설의 고향쯤으로 여긴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건국신화 허구론이 손진태, 이병도 이후 몇 세대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조금만 변용된 채 현대 한국의 역사체계, 더 구체적으로 후식민사학의 역사체계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p. 160.
주7)
신라 내물왕 이전의 역사를 보면 이병도는 쓰다 소키치가 제시한 틀 속에서 삼한론을 발전시켰다. 그의 역사하기를 식민사학, 후식민사학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그러한 역사하기를 가지고 친일파라고 단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가 일제시대에 진단학회를 만들어 일본학이 아닌 한국학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를 단순히 친일파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p. 177
이병도나 손진태를 식민사학자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쓰다 소키치가 발명한 식민사학의 역사체계를 충실히 따른 후식민사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은 누구도 '삼국사기' 초기 기록과 '삼국지' 한韓 조에 대해 사료비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 쓰다 소키치가 발명한 식민사학의 역사체례에 따라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불신하고 '삼국지 한韓 조를 중심으로 삼한론을 발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