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와 아래의, 모친이름은 같은데 부친이름이 바뀌었네요
더자세히 알고픔, 포털(특히 네이년)에서"이명박 가족사"검색해보셈
사진출처 http://blog.daum.net/01077674435/10605730
아버지 이름은 원호적에 덕쇠(德釗)였고 33세에 일본에서 법원의 허락을 득해 충우로 바꾸었다. 덕쇠라는 이름은 떡쇠, 마당쇠, 돌쇠와 같은 계열의 이름으로 양반과는 거리가 멀다. 두 형들의 이름은 무특(무디기)과 경특(경디기)이다. 일본에는 이덕쇠 혼자 간 게 아니라 맏형 경특과 함께 오사카로 가서 이웃에서 살았으며 형제가 대가족을 이루면서 ‘스키야마’로 성을 바꾸어 씨족단위로 살았다.
어머니는 반야월 채씨가 아니라 인천 채씨다. 총각으로 일본에 갔다는 1935년에는 이미 3남매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귀선, 상은, 상득. 현 국회부의장인 이상득이 이덕쇠의 3째 아이였는데 1935년생이다. 덕쇠는 6남매를 모두 일본에서 낳은 게 아니라 4번째인 ‘귀애’는 포항에 건너와 1938년에 낳았다. 이 때 3남매는 4, 6, 9살이었고, 학령기에 접어들었다. 이 때 채씨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뒷바라지를 했으면 포항에 계속 눌러 있었다는 것이 된다. 만일 그랬다면 이명박(1941)과 바로 밑의 여동생인 이말분(1945)을 일본에서 낳은 여인은 다른 여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돌림자를 이탈한 것은 명박이만이 아니라 말분까지다. 이를 속이기 위해 이명박은 위 두 책에 ‘말분’이를 ‘귀분’으로 썼다. 이복형제설이 끼어들 수 있는 대목이 바로 이 대목이다. 자서전과 어머니를 읽으면 명박과 말분은 서자 취급을 받았다. 학교도 못 가게 하고, 돈만 벌라 했으며 종국에는 둘만 남겨두고 모두가 상경했다. 둘은 배고픔에 못 이겨 무작정 상경했다. 이런 서자 취급을 받았으면서도 ‘어머니’라는 책을 써서 띄우는 것은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들며 정략적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