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제목 해석
집요흉악한 조선공산당 마침내 궤멸되다
추격개시 이래 4년여, 원흉 이재유 드디어 잡혀 묶이다
일체의 국제 루트와의 절연, 붉은 독재자를 꿈꾼 암약
이재유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두산백과' 네이버 사전으로 링크 대체하겠습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66107&cid=40942&categoryId=39766
http://media.daum.net/zine/newsview?newsid=20081127144724113
일제의 가혹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헌신함으로써, 일제의 치안유지에 큰 타격을 가하였다. 함남 삼수 출생. 보통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과정도 졸업하지 못하고 자퇴하거나 퇴학을 당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1926년 일본에 건너가 그곳의 노동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본격적으로 사회과학 연구를 시작하여 공산주의운동가로 성장하였다. 1928년 고려공청 일본총국에 가입해 선전부 책임자로 활동하던 중, 제4차 조선공산당사건 관계로 체포되어 3년 6월의 수형 생활을 겪었다. 만기출옥 직후인 1933년 2월경 이현상 ·김삼룡 ·정태식 등과 ‘경성트로이카’라는 공산주의 비밀결사를 결성, 생산현장의 기본대중을 조직화하는 가운데 조선공산당 재건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활동하였다.
이후 수차례에 걸친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경성재건그룹’ 및 ‘조선공산당재건 경성준비그룹’을 결성하여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한 비타협적 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1934년 1월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탈출에 성공한 후 경성제대 미야케[三宅鹿之助] 교수의 관사에 은신하였는가 하면, 뛰어난 변장술로 번번이 일제의 검거망을 뚫어, 신문지상에 ‘신화적 인물’로 보도된 바 있었다.
공산주의자와 대중의 결합을 촉진하여 공산주의운동의 대중적 토대와 영향력을 강화시켰고, 여타 그룹과의 공동투쟁을 통하여 종파적 경향을 청산하려 노력하였으며, 불충분하나마 반제민족통일전선 방침을 실현하여 종전의 좌편향적 오류를 일정하게 극복함으로써, 한국 공산주의운동에 큰 기여를 하였다. 1936년 12월 4년간의 파란만장한 지하활동 끝에 체포되어 징역 6년의 형량을 마쳤으나, 미전향자라는 이유로 석방되지 못하고 1944년 10월 41살의 짧은 생애를 마쳤다. 2006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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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국내에서 독립운동이라면 가장 유명한 가장 인기많았던 슈퍼스타급이었던 인물이었지요.
당시 그의 위상이 어느정도였는가는 총독부 관제언론인 경성일보 기사가 말해준다고 생각해요.
이재유 검거 당시 총독부 경찰에서 동원되었던 형사만 60여 명이었다고 하더군요. 어찌나 기뻤던지 이들은 잠복하면서 했던 복장을 갈아 입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기념촬영을 했다고 합니다..
두번째 사진이 이재유 체포 당시 찍은 기념촬영인데, 저기서 X자 표시되있는 인물이 이재유입니다. 저 당시 일본 형사들은 체포 성공을 기념한다고 변장한 복장 그대로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이재유를 체포했던 담당 경찰서였던 당시 서대문경찰서는 축제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이재유의 체포로 조선총독부는 '이제 식민지 조선에서의 독립운동은 끝났다!'고 엄청 선전하지요. 그리고 얼마안있어서 또다른 대형사건이 터지는데, 그게 바로 그 김일성의 '보천보 사건'.... 이 보천보 사건 자체가 오늘날 북한에서 떠드는것과 달리 굉장히 과장되었지만, 이 사건의 의의는 '식민지 조선에서의 독립운동 정신은 아직 살아있다'고 알린것이었죠. 이재유의 체포로 독립운동 자체가 매우 침체에 빠질무렵이었습니다.
1930년대 이후로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깊이 연구하면 느끼는것이 사회주의계열 운동가들이 굉장히 활발했음을 느낍니다.(사회주의계열 운동도 이것도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습니다. 이를테면 코민테른으로부터 지령받는쪽도 있고, 전혀 그런것과 관련없이 자생적으로 조직해 활동했던것도 있고. 급진파도 있고, 온건파도 있었고.. 기타 등등..) 이재유 경우는 코민테른을 비롯해 어떠한 국제 공산주의와는 전혀 연계가 없던. 오히려 그 방식을 거부하고, 구체적 삶에 뿌리박고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실천운동을 중시하는 민족주의적 모습을 보였던 '민족주의적 공산주의' 사상을 신념을 가졌던 인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