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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예술인가 예술이 아닌가
게시물ID : gametalk_23159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맛사
추천 : 3
조회수 : 865회
댓글수 : 10개
등록시간 : 2015/01/01 11:38:02
신년부터 여러모로 생각하게 하네요. 게임은 예술인가 예술이 아닌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꼽는, '게임이 가지는 예술적 가치'라는 부분은 다른 매체에서도 충분히 표현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매혹적인 스토리 라인? 소설과 희곡이 있지요. 아름다운 관경? 영화와 사진이 있지요. 그리고 그 매체들은 각자의 요소를 특화시키기 위해 태어나고 발전했기 때문에 게임보다 훌륭히 가치를 끌어올리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게임으로 만들었다고 치죠. 스토리 라인을 메인으로 해 진행하며 중간중간에 플레이어가 풀어야 할 퍼즐이 나옵니다. 이 게임이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훌륭하다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오히려 극의 몰입을 방해합니다. 반대로, 게임 플레이를 중점으로 잡아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거리가 유저의 플레이에 따라 변동한다고 칩시다. 이렇게 되면 반대로 스토리 라인이 엉망이 됩니다. 만약 플레이어가 '잘' 플레이해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지 않고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그게 진짜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게임이 지니는 예술적 가치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게임은 매혹적인 스토리를 소설보다 잘 전하지 못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사진만큼 능숙히 전하기 힘듭니다. 게임은 필연적으로 플레이어의 의도가 개입되어야 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그 만큼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전하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예술은 언제나 제작자에 의한 '현실의 재해석'에서 시작되나 게임은 '사용자의 선택'에 의해 그 결과가 좌우되니까요. 그러나 게임에게는 여타의 매체와 비교해 확연한 강점이 있습니다. 이는 게임 이외의 매체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기도 합니다.

게임은 제작자의 의도를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사진학에는 '푼크툼'과 '스투디움'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스투디움은 '그 작품에 있어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성'이라 할 수 있으며, 푼크툼은 이와 반대로 '작품에 있어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성'을 뜻합니다. 가령 느리고 낮은 첼로 연주를 들으며 '슬프다', '우울하다' 따위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스투디움, '첼로를 배운 어린 시절이 생각나 마음이 들뜨네'따위의 감정은 푼크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사실 이 개념이 사진학 외의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예술이란 것은 대개가 이 푼크툼과 스투디움의 싸움입니다. 창작자는 자신이 느낀 주관적 감성(푼크툼)을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형태(스투디움)으로 빚어냅니다. 푼크툼의 비율이 너무 높으면 '난해하다'라는 평을, 반대로 스투디움의 비율이 너무 높으면 '진부하다'라는 평을 받습니다. 모든 창작자들은 진부와 난해를 조율해가며 저마다의 작품을 만들어 갑니다.

다시 게임 이야기로 돌아와서, 게임이 여타 매체와 결정적으로 구분되는 점─즉, 게임이 이 세상에 존재해도 되는 이유는 바로 이 스투디움과 푼크툼이 매우 역동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제가 심 시티를 하고 있다고 가정합시다. 심 시티에서 제작자의 의도는 명확합니다. '좋은 도시를 만들고 꾸려나가기'. 그런데 저는 게임을 플레이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만, 만약 도시에 3달 넘게 전기를 끊으면 어떻게 될까?' 이는 제작자의 의도와 전혀 상관이 없는 저만의 감성(푼크툼)입니다. 물론 게임이 아닌 매체에서도 충분히 떠올릴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지요.(서울 도심의 야경 사진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 답변을 내는 과정에서 게임과 다른 매체와의 차이점이 나타납니다.

게임은 사용자의 '푼크툼'에 명확한 '스투디움'으로 답변을 줍니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요.

이는 게임이 아는 매체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게임은 각기 다른 수만개의 질문에 대해 일관된 기준으로 답변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매체이며, 놀라운 점은 그 대부분이 제작자가 의도하지 않는 부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 감상에서 나온 질문을 다시 자신에게 되묻게 되어 푼크툼의 연속에 빠지게 되는 여타의 매체와는 달리, 게임은 마치 하나의 굳건한 철학을 가진 사람처럼 사용자의 주관적인 질문에 객관적인 답변을 내어 줍니다.
(물론 이것이 게임이 다른 매체에 비해 우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게임이 아닌 매체는 게임에 비해 더욱 강하게 제작자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으며, 몇몇의 사용자들에게 강력히 어필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결론을 내자면 게임은 무의미하지도 않고, 다른 매체에 비해 하등하지도 않습니다. 게임이 예술인가 아닌가?에 대한 확답은 내놓지 못하겠습니다만, 적어도 이렇게는 말할 수 있습니다. 게임은 예술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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