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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9 |
그런데 한국사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나라 사회학사를 새롭게 쓴 석학 최재석 고려대 명예교수가 1980년대부터 한국고대사를 연구하다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했다. 한국 고대사회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모두 일본인이었고,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일본인들의 연구 결과가 그대로 '한국의 역사'로 무비판적으로 수용됐던 것이다. 최 명예교수는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학자 30명의 논문들을 치밀하게 비판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학술 성과를 거뒀다. 일본 출판사들은 최 명예교수의 연구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일본 우익의 테러 위험 탓에 출판하지 못했고, 한국 역사학계는 하나같이 침묵했다. 일본의 반응은 이해가 가지만, 한국 역사학계의 반응은 도대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이런 결과가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 어떻게 반영됐을까? <삼국유사>에 '고조선은 단군왕검에 의해 서기 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는 기록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라고 한다' 등의 표현을 써서 '믿기 힘들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아내는가 하면, 중국에서 온 망명객 위만이 세운 위만국을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라고 버젓이 서술하고 있다.
우리의 기록인 <삼국유사>나 <제왕운기> 기록을 무시한 것은 물론, 한민족의 역사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져 왔다는 조선총독부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식민사관의 '단군조선 부정하기'가 스며들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은 스치듯 언급하면서 '중앙집권국가' '기틀' 등의 단어를 교묘하게 배치해 삼국의 건국 연대를 몇백 년씩 잘라먹고 있다.
게다가 조선왕조에 버금가는 500년 역사를 가진 가야는 거의 투명인간 취급한다.
심지어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임을 증명하는 유적`유물에도 불구하고 요하문명 등 우리 민족의 원류인 문화를 중국의 것으로 단정 짓는 교과서도 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같은 우리 사서보다는 <삼국지> <일본서기> 같은 중국과 일본 사서를 더 존중(?)하여 그것에 따라 서술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현 역사 교과서의 모습이다.
대표적인 것이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이다. <삼국사기> 기록과 일본사서 기록이 일치하지 않으면 무조건 <삼국사기>가 틀렸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고대에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꿰맞추기 위한 터무니없는 조작론에 불과한데, 우리 역사 교과서는 아무런 비판 없이 그것을 수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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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52945&yy=2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