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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하비
포맷은 관장기를 사용해 아편을 장 속에 주입했을 경우 입으로 먹었을 때보다 훨씬 빠르게 효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 결과를 바탕으로 밀초와 동물성 기름으로 겉을 싼 모르핀 좌약들이 발명되었다. 흡입제를 만드는 방법도 시도되었으나 너무 많은 시간이 소모되었고 그 방법을 사용하다가 환자에게 큰 불평을 사기도 하였다. 피부에 붙이는 패치(patch)를 활용하거나, 피부가 벗겨진 생살에 아편 연고를 직접 바르는 방법들도 시도되었다. 하지만 물집이 잡히는 등 부작용이 생겨 혁신적인 방법이 요구되었다.
약품을 피하에 주입하는 방법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1656년에 크리스토퍼 워렌 경은 속입 빈 새의 깃촉을 이용해 개들에게 아편을 주사한 적이 있었다. 심지어 그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여 실험도 했으나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 뒤 라파지 박사가 모르핀을 대동맥에 직접 넣은 방법을 착안해낸 1830년대에 이르러서야 워렌 경의 실험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라파지 박사가 생각해낸 피하 주입방법은 아주 원시적이고 유치한 수준이었다. 랜싯(양날 끝이 뾰족한 의료용 칼)을 모르핀 용액에 담근 후 피부 속에 수평으로 밀어넣고 몇 초간 가만히 있는 방식이었다. 나중에 이 방법은 아주 작은 모르핀 환약들을 날이 무딘 침을 이용해 피부 밑에 집어넣는 방식으로 개량되었다.
이런 가운데 고대 알렉산드리아에 기계학의 천재인 헤로에 의해 발명된 주사기의 개념과 함께 침의 원리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를 기초로 하여 의학용 피하주사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주사기를 처음 만들어낸 사람이 누구인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1845년 아일랜드 더블린의 개업의인 프란시스 린드 박사는 속이 빈 바늘에 병을 붙여 약품들을 주사했다. 그리고 에든버러의 알렉산더 우드 박사는 기구제조자인 퍼거슨의 도움을 받아 1853년 드디어 오늘날과 같은 피하주사기를 완성했다. 이후 우드의 피하주사기는 런던 성 조지 병원의 찰스 헌터 박사에 의해 더욱 개량되었다. 우드의 피하주사 방식은 영국에서 널리 장려되었고, 2년 만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1856년 포디스 바커 박사가 최초로 피하주사를 환자들에게 놓았다.
우드의 기술은 환자의 팔에 약물을 주사하는 방식으로 빠른 효과를 보였다. 또한 약물을 입으로 섭취했을 때에 나타나는 위장의 불쾌한 반응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드를 비롯한 많은 의사들은 의외의 것에 틀린 예상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약물을 주사하는 것이 복용했을 때보다 약에 대한 중독성 요구를 일으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삼키는 행위를 없애면 욕구는 사라질 것이라는 게 당시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을 굳게 믿고 있던 우드는 모르핀을 주사했다. 모르핀 주사는 눈의 염증과 월경통을 비롯해 류머티즘으로부터 알콜 중독에 의한 섬망증(譫妄症, 착각과 환각, 흥분을 유발하는 의식 장애의 일종)까지 모든 것을 치료했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이 터지고 말았다. 모르핀을 처방받은 많은 환자들이 모르핀 중독자가 되었으며, 피하주사에 의한 최초의 모르핀 중독 사망자가 생겨난 것이다.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그 사람은 바로 우드가 사랑하는 아내였다.
판화 - 모르핀에 중독된 여자
모르핀은 중독성 물질이 아니라는 잘못된 믿음과 새로게 발명된 주사기로 인해 전혀 새로운 문제, 즉 모르핀 중독자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잘못된 지식을 믿고 있던 의사들은 부유한 환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모르핀과 주사기를 제공했으며, 친절하게도 혼자서 주사하는 방법까지 꼼꼼하게 가르쳐 주었다.
당시의 모르핀 중독자들은 대부분 중류 및 상류계급 출신들이었다. 정밀하게 만든 주사기와 바늘은 값이 무척 비싸서 하층민은 감히 구입할 엄두를 내지 못했으며 아예 모르핀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중독자들은 돈이 많은 중년의 전문 직업인이거나 사업가들이 대부분이었다.
출처 | 푸른 장미님의 블로그에서 동명의 글을 발췌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