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유대인들만큼 해외이주의 역사가 긴 민족은 없을 겁니다.
이들의 역사에 대해 읽다보면 정말 흥미롭기도 하면서 대단한 거 같아요.일반적으로 로마제국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면서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가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유대인들은 이보다 훨씬 일찍 해외 여기저기로 진출했습니다.유대인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는 페니키아어(카르타고)와 상당히 유사했다고 하는데 페니키아인들은 일찍이 지중해를 안마당으로 삼아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남주, 스페인 남부에 식민도시를 건설했습니다.상업민족이었던 페니키아인들과 마찬가지로 유대인들 또한 도시에 거주하면서 고대 그리스, 그리고 고대 이집트에 많이들 진출했습니다.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재위 기간 로마시에 거주했던 유대인 인구가 7000명에 달했고, 로마 최대의 상업도시이자 학술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는 거주민의 1/4가 유대인이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다른 민족은 호스트 국가에 완전히 동화되는 것에 반해 유대인들은 신기하게도 종교 때문인지 해당 사회에 동화되지 않고 독자적인 공동체을 계속 유지했습니다. 유대인 사원(시나고그)가 그러한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었는데 로마 전성기에는 이집트, 로마, 히스파니아(현대 스페인), 갈리아(현대 프랑스), 그리고 로마령 밖에 있던 게르마니아(현대 독일)에도 시나고그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유럽 역사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하게 된 시기는 중세시기입니다.사회적 혼란과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유럽인들은 걸핏하면 전쟁에 동원되었고 엄격한 기독교 교리는 그들로 하여금 대부사업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기독교가 아니어서 병역을 면제 받았고 처음부터 도시에 거주하는 상인계층이어서 행정과 돈계산에 능했습니다.그래서 로마를 멸망시킨 게르만족 왕들 (그들 대부분은 문맹)중 일부는 이들에게 행정과 금융 그리고 의술을 위탁하면서 우군으로 삼으려고 했었죠. 게르만 왕들뿐만 아니라 스페인을 정복한 아랍인들도 이들을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이들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낸 게 스페인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인데 스페인을 정복한 이슬람국가는 이들의 지식과 능력 덕택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알안달루스(Al-Andaluz)의 학문적 성과 중 상당 부분이 이들 덕분이었습니다.심지어 스페인에서 마지막 남은 이슬람 국가를 멸망시키고 기독교 원리주의로 무장한 카스티야-아라곤 왕국도 유대인을 경제관료로 (물론 개종할 것을 전제로..) 기용할 정도였죠. (그런데 그렇게 도움을 받아놓고선 결국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다는 게 함정)이렇게 스페인에서 추방당한 유대인들을 두고 "셰파르딤" 유대인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북아프리카, 베네치아,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합니다. 당시 오스만 제국의 술탄은 이를 두고 "카스티야 왕국이 자기나라 백성 중 가장 우수한 이들을 선물해주니 기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훗날 영국의 수상이된 "벤자민 디즈라엘리"의 아버지도 셰파르딤 유대인이었습니다.이와 비슷하게 프랑스와 독일 등지에도 상당한 규모의 유대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프랑크 왕이자 서유럽의 아버지 카를대제 덕분에 성장했다고 합니다.서로마 멸망 이후 카를대제가 서유럽을 다스릴 당시 유럽에 금, 후추, 비단등의 물품이 거의 사라지고 동방과의 무역이 거의 중단되었는데 카를 대제는 유대인들에게 동방과의 무역할 수 있는 일종의 독점권을 부여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은 기독교가 아니기에 교회가 심판할 수 없고, 이들은 황제의 소유이기 때문에 황제만이 그들을 재판할 수 있는 ... 어떻게보면 특권을 부여해줍니다. 대다수가 농민이었던 피지배계층과 대다수가 전사였던 지배계층이었던 유럽에서 상업과 고리대금업 그리고 학문에 종사했던 유대인들은 이웃들에게 시기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도 현지 사회에 동화되기를 거부하고 끼리끼리만 모여다니니 단단히 미움을 샀겠죠. 그 와중에 중세후기에 가면 여러 차례 유대인들에 대한 추방령이 내려집니다. 왕들의 입장에서는 막대한 부를 쌓은 이들의 재산이 탐이 났습니다. 그리고 여론의 지지를 기반으로 이들은 유대인들을 추방시켰고 귀금속은 가져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게 스페인의 유대인-이슬람인 추방 칙령인데 그 내용으로 보면 사실상 유대인들의 재산을 강탈하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추방은 하되 재산을 못가지고 가게 했으니까요.이런 식으로 스페인과 프랑스 그리고 일부 독일 공국에서 유대인들을 추방시켰는데 아직 중부 유럽에서는 본격적인 탄압이 가해지지 않았습니다.중부유럽에 살던 기존 유대인들과 도망쳐온 유대인들은 독일과 폴란드에 걸쳐 큰 세력을 형성했는데이들은 금융에 특출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16세기 유럽 최고 부자였던 가톨릭교도 푸거가문(Fugger)도 이런 유대계로 추정됩니다(이들의 이름으로 추정하길... jakob, andreas, barbara 등... 그리고 유대인들과 폭넓은 교류를 했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독일 등지 유럽의 히브리어 MANUSCRIPT를 가장 잘 보존했었음 )또한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유대인 우대정책을 취하면서 이들이 정착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아무튼 유대인들은 유럽전역에 걸쳐 금융과 상업에 종사하면서 부를 축적하였고 19세기에 이르면 이들 중 적지 않은 숫자가 유럽사회의 젠트리가 되고 로스차일드 가문 같은 경우 전설적인 위치에 오르게 됩니다.유대인들의 부와 명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들에 대한 이미지는 나빠지게 되었고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국제 유대 음모론"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보수당 정치인 마크 사이크스(mark sykes, 그 유명한 밸푸어 선언을 주도한 사람)도 국제유대인 파워를 신봉하여 1차대전 당시 유대인들의 도움을 얻어야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밸푸어 선언을 주도하게 됩니다. 어쨌든 이러한 음모론이 확산이 되면서 유대인들은 좌우에서 모두 공격당하게 됩니다.좌파는 국제 자본주의의 해악은 유대인들의 작품이라 비난했고 우파는 국제 볼셰비즘은 유대인들의 음모라며 비난했죠.그 결과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홀로코스트....유대인들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유럽사의 또 다른 이면을 볼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