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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번의 국왕 승쩬칸포가 당태종에게 보낸 비야냥...
게시물ID : history_2295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cckk
추천 : 2
조회수 : 1293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09/15 15:4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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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스러운 천자께서 사방을 평정하니 해와 달이 비치는 나라는 모두 신하가 됐지만, 고구려가 멀리 있음을 믿고 신하의 예를 갖추지 않았습니다. 이에 천자께서 스스로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요하를 건너 (고구려를) 토벌해 城을 무너뜨리고 陣을 함몰시켜 ‘빠른’시간에 개선하셨습니다. 폐하가 출행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지니지 않았는데, 귀국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기러기가 빨리 난다고 하나 폐하의 빠름에 미치지 못합니다. 거위는 기러기이니 금으로 만든 거위를 바칩니다.”

말이 꽤 재미있네요..ㅋㅎ

암튼 대당제국의 수도를 점령한 유일한 국가 토번... 신라가 나름 그 덕을 본것 같네요.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1432

신라 통일 이면에 ‘비단길’ 둘러싼 唐·티벳 국제전 있었다

당제국은 고구려를 멸망시키기 위해 동쪽에 전력을 투입했고, 서쪽 토번(티벳)이 강국이 되는 여건을 마련해줬다. 토번은 당이 백제멸망전쟁에 참전하자 670년 천산남로를   석권했다. 그러자 신라가 당에 도전했고, 결과적으로 당은 서쪽에 발목이 잡혀 이를 방치했으며, 679년 2차 대비천 전투에서 토번에게 참패했다.....


........나당전쟁이 시작된 670년 당나라 최정예 주력 11만이 청해성 방면 티벳고원 大非川에서 발생한 결전에서 토번(티벳)군에게 전멸당한 것을 알았다. 

대비천 전투에서 참패한 당의 장군은 고구려총독이었던 薛仁貴였다. 668년 당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평양에 지배기구인 안동도호부를 설치했고, 그 도호에 설인귀를 임명했다. 

669년 新城으로 치소를 옮겼고. 그해 말 설인귀는 고구려를 떠나 토번군과 싸우기 위해 청해호 부근 대비천으로 향했다. 당의 주력의 축이 만주에서 서역으로 이동했던 것이다.

670년 이를 알아차린 신라가 당과 전쟁을 결정했다. 


실크로드 경영권을 둘러싼 당과 토번의 전쟁은 이것으로 끝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교역의 이권을 둘러싼 전쟁은 이후 150년 간 지속됐다. 실크로드 전쟁은 현재 우리 한국민족의 모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환경이 됐다. 


675년 당은 한반도에 투입했던 말갈군대마저 티벳고원으로 이동시켰고, 나당전쟁은 종결됐다..........


출처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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