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가 한창 전성기였을 때는 빈부 격차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같은 경제 시스템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부(富)가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토지를 소유한 가문이 고작 100여개 정도로 줄어들었다. 빈곤의 늪에 빠진 절대 다수의 스파르타인들은 양육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아예 출산을 포기하였다.그 결과, 스파르타 시민권을 가진 남성인 스파르탄(Spartan; Spartiate)들은 기원전 640년 9천명에서 300년 뒤에는 1천명으로 급감하였다. 아무리 무적의 군대를 갖고 있던 스파르타라고 하더라도 그 숫자가 턱없이 줄어들자,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몰려드는 적들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스파르타의 명맥은 유지되었지만, 그 뒤로는 두 번 다시 패권국의 지위를 노릴 수 없는 약체 폴리스로 전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