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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서 제르튀르너의 연구 결과가 널리 알려지자 여기저기서 이와 관련된 후속연구들이 이루어졌다. 프랑스 약제사인 조제프 카방과 피에르 조제프 펠레티에는 모르핀 생산과정을 발전시켰고, 1818년에 프랑스 의사인 프랑수아 마장디는 알칼로이드의 의학적 적용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마장디는 동맥류(動脈瘤, 동맥내강이 부분적으로 부풀어오른 상태)를 앓고 있는 한 소녀의 증상에 관해 기술했다. 그 소녀는 통증으로 인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의사들과 약제사들, 무면허 의사들, 최면술사들, 본초학자들에게 치료를 받았지만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게다가 그 소녀는 아편도 삼키지 못했다. 마장디는 아편을 복용하지 못하는 그 소녀의 상태를 감안하여 초산염과 모르핀의 황산염을 함유하되 강도를 달리한 두 가지 형태의 환약들을 처방했다. 그러자 그녀의 증상은 씻은 듯이 가라앉았고, 비슷한 증상의 다른 환자에게서도 좋은 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편 모르핀 외에 다른 아편 알칼로이드들도 발견되었는데, 1832년에 P.J. 로비케가 코데인을 추출해냈다. 코데인은 양귀비 꼬투리에 대한 그리스어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것이다. 같은 해 펠레티에는 나르세인을 발견했고, 1835녀에 펠레티에와 함께 일하던 티부메리는 테베인을 발견했다. 또한 1848년에는 머크가 파파베린을 분리,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코데인, 감기약 또는 진통제로 사용
모르핀은 발견 후 10년 동안은 중독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약효가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 자살이나 살인의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1830년 발자크는 자신의 소설 <악마의 희극>에서 모르핀을 화약과 함께 인간이 만든 파괴의 도구로 규정했다. 또한 악마의 입을 빌어 지옥에서 갑자기 인구가 증가한 첫째 원인으로 모르핀을 지목했다.
파파베린, 발기유발제로 사용
부정적인 측면으로 많이 알려지던 모르핀이었지만, 1820년대 초기까지 서유럽에서는 상업적으로 이용되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마장디의 논문이 번역된 이후 모르핀을 진통제로 사용하였다. 모르핀은 효과도 좋을 뿐만 아니라 생산비가 저렴하고, 의사들이 정확한 용량을 처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1840년대까지 모르핀은 사용의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으며, 옛날에 아편이 수많은 질병의 치료약으로 사용되었던 것처럼 많은 질병 치료에 사용되었다.
출처 | 푸른 장미님의 블로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http://blog.daum.net/bluros/662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