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의 아들이 vip와 친한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맡은 최필립인것이 역사의 아이러니지만
어쨌거나 억울하게 총살당해 돌아가신 독립운동가의 명예복원에 경하드립니다~
"친일파 숙청" 요구했던 독립운동가 故 최능진씨 64년 만에 재심서 무죄
.....최능진씨는 1899년 평남에서 출생해 미국과 중국 등지에서 수학하면서 도산 안창호가 이끄는 흥사단에 가입, 활동했다. 해방 후에는 평남 건국준비위에서 활동하다 소련군의 진주와 우익 탄압 등으로 1945년 월남했다. 미 군정청의 경무부 수사국장으로 재직하며 친일파 숙청을 요구하고 백범 김구 선생 등과 함께 한민당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했다.
그러다 1948년 제헌 의회 선거에서 서울 동대문 갑구에 이승만에 맞서 출마했고, 이승만 정부 수립 후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는 죄목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뒤 인민군에 의해 풀려나자 서울에서 정전·평화운동을 벌이다 이승만 정권에 의해 친북 활동가로 몰려 이듬해 1월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20여일 만에 총살당했다.....
http://media.daum.net/society/clusterview?newsId=20150827174008535&clusterId=1633709
이승만 정권이 총살한 '독립운동가 최능진', 64년 만에 '무죄'
백범과 함께 친일파 청산·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 등 활동
한국전쟁 때 정전운동 벌이다 '이적죄' 몰려 군법회의서 사형
재판부 "허망하게 생명 빼앗긴 고인에게 안타까운 마음 표해"
.............1899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최씨는 일제강점기에 안창호의 흥사단에서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해방 뒤 월남해 미군정청 경무부 수사국장이 됐으나 친일파 출신 경찰관들의 축출을 요구하다 자리를 잃었다. 김구와 함께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 활동을 했고,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 때 서울 동대문에서 이승만에 맞서 출마했으나 입후보를 취소당했다. 그해 정부 수립 직후 반란을 꾀했다는 이유로 구속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한국전쟁 발발로 인민군이 서울에 진주한 직후 풀려나 정전·평화운동을 벌였고, 국군이 서울을 수복한 뒤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대대적 부역자 색출·처벌을 주도한 것은 일본 관동군 헌병 오장(하사) 출신으로 악명을 떨치던 합동수사본부장 김창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