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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을 생산하고 거래용 물품으로 발전시킨 사람들은 바로 아랍인들이었다. 그만큼 아랍 세계에서는 아편에 대한 연구도 많이 진행되었고 그에 대한 책자도 많이 나왔다. 9세기에 아랍의 학자들과 의학자들은 아편으로 알려진 아프- 염(또는 우피안, 아시운)과 그 조제약품에 관한 책을 출간하였고, 이러한 아편에 대한 지식은 널리 퍼져나갔다.
아편에 대한 지식은 아프리카, 중동, 스페인 전역을 여행한 라제스와 같은 아랍 상인들과 의사들에 의해 널리 전파되었고, 아랍 의사인 ‘아부 알리 알 후세인 압달라 이븐 시나’때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의사이자 시인이며 자유사상가였던 그는 아랍 세계 밖에서는 아비세나로 알려져 있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페르시아 이스파한의 궁정에서 지내며 아편을 연구했다. 이스파한의 궁전은 원래 양귀비 재배로 유명했던 곳이다.
아랍 세계에서 음주는 예언자의 가르침에 따라 엄격한 금지사항 중 하나였다. 마치 서양 세계에서 술은 허용하지만 마약은 금지하는 것과 같은 차원이었다. 아랍 세계에서는 아편과 해시시 같은 마약 등을 금지하는 종교적 가르침이 없기 때문에 마약은 술 대신 사용되었다. 이런 문화적 특성으로 아비세나도 아편을 복용하였으며 물론 중독되었다. 그는 양귀비와 포도주잔을 예찬하는 시를 쓰기도 했으며 결국 포도주에 섞은 아편을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58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아랍에서는 빵에 아편을 넣어 먹기도 했다
고집 센 호색한이었던 아비세나는 아주 존경받는 의사였으며, 그가 만든 의학 규범은 5세기 동안 표준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그는 많은 질병 중에서도 특히 이질, 설사, 눈병 치료에 아편이 아주 높은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632년 마호메트가 사망하고 100년도 지나지 않는 사이에 아랍 제국은 급속히 확장되었다. 아랍인들이 진출한 지역은 서쪽으로는 스페인, 남쪽으로는 아프리카의 동서해안, 동쪽으로는 인도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식민지를 건설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발길은 중국까지도 닿아 있었다. 아랍 세계가 넓어지면서 아랍 제국의 학자와 의사들은 그리스인들이 저술한 서적들을 연구하여 발전시켰다. 그리고 자신들이 연구한 수학과 의학 등의 지식을 아랍이 점령한 넓은 지역에 마호메트의 가르침과 함께 전파했다.
아랍인들이 가는 곳에는 어디에서나 아편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지닌 이 희한한 물품은 부피가 작고 쉽게 변하지도 않으며,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모두 빼앗아버리는 완벽한 상품이었다. 날이 갈수록 아편 교역의 규모는 커지고, 유럽과 인도 등 아랍인들의 발길이 닿는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물론 당시에는 아편에 대한 죄의식도 없었고, 오히려 질병을 치료하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약이라는 의식이 훨씬 강했다.
출처 | http://blog.daum.net/bluros 푸른 장미님의 블로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