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0일 발표한 재벌 개혁 3대 과제는 4년여 전 대선 공약보다 구체적이면서 독한 규제들을 많이 담고 있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재벌을 선별해서 집중 규제하고 이를 포함한 10대 재벌도 맞춤형으로 엄격한 법의 잣대로 재단하기로 했다. 특히 금산분리 원칙을 강화하면서 재벌의 제2금융권 계열사를 점차적으로 독립시키겠다고 강조했다. 금융 계열사의 경우 다른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도 제한하기로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드러난 정경유착 문제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준조세금지법을 신설하고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연금 등 기관투자가 의결권 행사 지침) 등 도입도 추진한다.
◆ 4대·10대 재벌만 정밀타격
문 전 대표는 19대 대선을 앞두고 내놓은 재벌 개혁 과제에서 대한민국 산업구조를 완전히 뒤집어 새로운 경제질서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문 전 대표는 이날 토론회에서 '재벌 적폐 청산이 진정한 시장경제로 가는 길'이라는 문구도 내걸었다. 경제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재벌 개혁이 최우선 과제임을 분명히 했다. 문 전 대표는 재벌도 양극화되고 있어 주요 재벌에 경제력이 집중된다는 판단에 따라 4대 재벌을 포함한 10대 재벌 개혁에 전력을 다하기로 했다. 그는 또 "금산분리로 재벌과 금융을 분리시키겠다"고 공약했다.
이에 대한 세부적인 방법으로 문 전 대표는 "재벌이 갖고 있는 제2금융권을 점차적으로 재벌의 지배에서 독립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이로 인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삼성증권 등을 소유한 삼성그룹에 직격탄이다. 한화생명과 한화증권 등을 보유한 한화그룹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재벌에 주어진 특혜도 폐지하거나 축소하기로 했다. 문 전 대표는 "재벌 대기업에 대한 조세감면 제도는 폐지하거나 축소해서 늘어나는 재정 수입으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값싼 산업용 전기요금도 현실화한다. 문 전 대표는 "15대 대기업은 가정용 전기료보다 매년 평균 2조5000억원가량 전기요금을 적게 내고 있다"며 "수조 원에서 수십조 원의 이익이 나는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되고 있는 값싼 산업용 전기료를 현실화해서 전기료 부담을 공정하게 하고, 에너지 과소비형 산업구조를 개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재벌의 갑질 횡포를 사전에 예방하고 가습기 살균제처럼 기업 때문에 피해를 입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 최순실표 정경유착 원천 차단
최근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반영해서 정경유착을 없애기 위한 여러 대책도 제시됐다. 문 전 대표는 "대기업이 지난 2015년에 납부한 준조세가 16조4000억원에 달해서 법인세의 36%에 해당한다"며 "대기업 준조세금지법을 만들어 정경유착 빌미를 사전에 차단하고 기업을 권력의 횡포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대기업들이 최순실 씨의 미르·K스포츠재단에 사실상 반강제로 출자했다가 논란이 된 점을 감안한 조치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무리하게' 찬성표를 던졌다가 특검 조사를 받고 있는 국민연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나왔다. 문 전 대표는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주주권 행사 모범규준인 스튜어드십 코드의 실효성을 높이고, 그 법·제도적 기반으로서 자본시장법도 보완하겠다"고 공약했다.
재벌 총수들이 비상장사를 통해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도 나왔다.
문 전 대표는 "재벌 총수의 사익 편취가 주로 비상장 계열사에서 일어나는 점을 감안해 다중대표소송과 다중장부열람권도 제도화하여 재벌 총수와 맞설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재벌의 중대한 범죄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세웠다. 문 전 대표는 "중대한 반시장범죄자는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없게 하여 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며 "법정형을 높여 집행유예가 불가능하게 하고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총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 서면투표를 도입해 공정한 이사진을 선출하도록 제도화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