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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 황제의 유산과 무능한 부하때문에 일찍 내려가신 갈바
사실 1년동안 황제가 4번 바뀌는 치킨 레이스의 시작으로 더 유명하시기는 합니다.
오늘날의 유료 화장실을 만드시고 유료 화장실 그 자체로 이름을 남기신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님 orz
가령 가이우스와 네로가 공직 생활을 시작한 때를 기념하여 상여금이 지급되었던 것을 사례로 볼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율리우스 - 클라우디우스 왕조기 그러니까 아우구스투스 부터 네로까지의 기간동안 전체를 본다면 상여금은 빈번하게 지급되지 않았다.
아우구스투스는 유언장에 군단병들에게 일인당 75데나리우스를 지급하 도록 명시하였으나 티베리우스가 실제로 지급한 금액은 그 두 배였고 아우구스투스의 유언은 티베리우스가 사망하였을 때 지켜진다.
또 사비누스는 갈바에 대한 군단병들의 충성심을 확보하기 위해 1,250데나리우스를 지급할 것을 약속하였다. 이 액수는 군단병의 약 6년 연봉에 해당하는 큰 금액인 탓에 많은 호응을 얻었지만 결국 지급되지 않았다.
사실 내란기에는 군인들은 봉급보다 더 많은 보답을 받기 위해 전쟁에 참가하였다. 말 그대로 긁지 않은 로또이니 말이다.
그러나 베스파시아누스는 내란기이지만 평화시기와 같은 정도의 상여금만 지급하였다.
사실 기록만 보면 많아 보이지만 군단병이 복무 기간 동안 상여금을 지급받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만일 어떤 군인이 복무 기간이 20년으로 증가된 기원후 6년에 입대하였다면 그 군인이 기원후 26년 제대할 때까지 받은 상여금은 아우구스투스의 유산에서 받은 150데나리우스 뿐이다.
티베리우스 시기에 복무한 군인이라면 기원후 31년 세자누스의 몰락 후 받은 적은 액수의 돈과 티베리우스 사망시에 받은 75데나리우스 뿐이다.
물론 근위병은 상당히 많은 액수의 상여금을 자주 받았지만 군단병들은 액수나 심지어는 횟수면에서 그에 훨씬 못 미쳤다.
예를 들어 카리굴라 시기에 군단병은 분할급보다 조금 많은 100 데나리우스의 상여금을 받은 반면, 클라우디우스의 즉위시 근위병은 3,750데나리우스를 받았다. 이는 군단병의 약 17년 연봉에 해당하는 거금이다.
군단병은 한 번의 분할급 정도를 받거나, 많이 받아도 1년 연봉에도 못 미치는 액수였다.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후에 상여금의 액수나 횟수가 늘어났지만 여전히 근위병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군단병에게 상여금은 공제없이 전적으로 자신이 소유할 수 있는 돈이었기 때문에 군대를 지원하는 주요 동기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 액수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군단 복무에 대한 선호도는 날이 갈수록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