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차 베트남 하노이를 찾은 노 대통령과 원자바오(溫家寶)중국 총리에 대한 공항 의전 문제로 한.중 두 나라가 신경전을 벌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중국 측이 원 총리의 전용기 도착 시간을 예정보다 2시간가량 앞당긴 게 발단이었다.
의전 신경전=외교 당국에 따르면 당초 노 대통령 전용기는 이날 오후 5시7분에, 원 총리 전용기는 오후 7시에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이에 맞춰 베트남 측은 우선 공항 안팎에 태극기를 내걸고 환영 준비까지 마쳤다.
그런데 중국 측이 느닷없이 도착 시간을 우리측 예정시간보다 2분빠른 오후 5시5분으로 변경 통보한 것. 이 통보를 받은 베트남 당국은 오후 4시20분쯤 태극기를 내리고 오성홍기를 올렸다. 공항에서 준비 상황을 점검하던 우리 측 관계자들은 화들짝 놀랐다. 원 총리에 대한 의전이 먼저 진행되면 노 대통령 전용기는 공중을 선회하거나 착륙해도 계류장에서 중국 측 의전이 끝날 때까지 20여분간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이에 따라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 측은 베트남 당국에 강하게 항의하고 당초 일정대로 행사를 진행토록 요청했다. 하지만 베트남 측은 "도착 순서대로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우리가 착륙 시간을 당기는 수밖에 없었다.
"속도를 내라"=경호실 관계자 등과 협의를 거쳐 당시 캄보디아 상공을 날고 있던 대통령 전용기 기장에게 이런 사실을 무전으로 알렸다. 이 때부터 전용기의 속도가 빨라졌다. 엔진 출력을 최대한 높이고 항로를 직선으로 바꾸는 한편 고도도 낮췄다. 항로를 다소 바꿔도 베트남 근처까지 온 데다 노 대통령 전용기라는 것을 캄보디아나 베트남 측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었다. 문제는 고도를 낮추게 될 경우 우기인 베트남과 캄보디아 곳곳에 형성된 대형 구름을 뚫고 가야 하는 것이었다. 비행기가 흔들려 노 대통령을 비롯한 탑승객들이 불편할 수 있었던 것. 하지만 기장은 최대한 기체의 평형을 유지하며 구름 속을 질주했다. 얼마 뒤 공항 관제탑 레이더에 노 대통령 전용기가 먼저 깜빡였다.
'선 도착, 선 의전'을 내세웠던 베트남 측은 오성홍기를 내리고 다시 태극기를 게양했다. 이번에는 반대로 다급해진 중국 대사관 관계자들이 백방으로 뛰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 전용기는 예정 시간보다 9분 이른 오후 4시58분에 안착했다. 곧바로 30분 가량 의전이 진행됐다. 반면 원 총리의 전용기는 공항 주변을 몇 차례나 선회한 뒤 착륙한 뒤에도 20여분간 활주로 주변에서 기다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