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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상에 깃든 '식민철학'의 그림자
게시물ID : history_224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lvarez
추천 : 5
조회수 : 75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8/12 15:47:08
다카하시 도오루는 한국 사상을 처음으로 근대적 시각에서 연구한 학자다. 유교를 비롯해 불교, 금석, 서지, 민요, 민속, 한글 등 거의 모든 한국의 사상적·문화적 유산을 섭렵했다. 그가 조선총독부 문화정책의 기틀을 다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조선의 사상과 신앙사는 모두 중국의 사상과 신앙사에 종속된다”며 조선 사상의 특성으로 △옛 사상에만 머무는 고착성 △창조적 사상을 발생시키지 못하는 비독립성을 꼽았다. 조선인의 또다른 특징으로 당파성·형식존중·문약성·심미관념의 결핍·공사의 혼동·낙천적 성격 등을 지적했다. 

“한국 성리학사를 주리파·주기파·절충파(농암문파)로 분류하는 삼분법이 지금까지도 무비판적으로 답습되고 있다.”(최영성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 “몇몇 후학들이 이를 반성하긴 했지만 오늘날까지도 일본과 남북의 학자 대부분이 (다카하시의 방법론을) 그대로 수용하고, 조선 주자학의 요체를 표현하는 데 적절치 못한 ‘주리’와 ’주기’라는 용어를 어떤 의혹도 없이 사용하고 있다.”(이형성 전주대 강사)

이상호 계명대 교수는 중등 윤리 교과서에서 다카하시의 흔적을 건져 올렸다. “초기 윤리 교과서는 한국 주자학을 파쟁과 당파의 원인이자 국망의 원인으로 바라봤고, 70년대 말까지는 아예 한국 철학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며 “이는 토착화된 우리 사상에 대한 전반적 회의를 반영하는 것이자 다카하시의 영향력이 개입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의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도 여전히 “내용적 측면에서는 다카하시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의 영향력은 왜 문제인가. 이성환 계명대 교수는 “유학을 중심으로 한 한국인의 민족적 에토스는 다카하시의 논리에 의해 ‘화석화’됐다”고 평가했다. 최영성 교수는 “(다카하시의 연구는) 한국인의 정신적 지주에 치명타를 가하려는 저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국사 왜곡보다 한국유교 왜곡이 더 효과적이고 근본적”이라고 지적했다.

-다카하시 도오루, 조선유학대관에서 인용-
 나는 일찍이 조선은 ‘주자학의 실험장’이었다고 말하였다. 실제로 조선의 5백년은 오직 주자학 한 조목을 가지고, 다른 모든 교학과 경설(經說)도 배제, 억압하여, 위에서 아래까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오직 주자학의 교실이자 실험장이었다.

  조선의 유학은 그 학설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극히 간이하고 또 단조롭다. 고려 말부터 천편일률적으로 주자학에만 골몰하여 학자의 학설도 반드시 주희의 진의에 부합하였는가 여부를 논의하는 양상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조선 유학의 가치는 학설보다 오히려 사회적 ․ 정치적으로 국가와 사회에 끼친 영향에서 보아야 하리라. ……조선은 전후 640년 동안 주자학이 한 차례 수용된 이후 끝내 다른 학파의 흥기를 보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그의 선택이 옳았는가의 여부는 또다른 문제라 하더라도, 그와 동시에 사상은 더욱 고착되고 진보나 발전을 잃어버렸다.

  즉, 다카하시는 조선이 주자학 일변도의 사회였으며, 그것이 조선 사회가 역동성을 상실하는 주요한 요인이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논조는 성리학이 조선을 멸망으로 이끈 중요한 요소의 하나였다는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이덕일,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에서 인용-
 단절해야 할 커다란 과거는 성리학 신정(神政) 체제였다. 일 년에도 몇 번씩 청나라 조공 사신을 보내면서도 속으로는 망해 버린 명나라를 섬기는 교리를 제공하는 것이 성리학이었다. 명나라 황제를 임금으로 섬기는 성리학 체제에서 조선은 제후의 나라에 불과했다. …… 노론에게 성리학은 배타적 권력을 유지하는 최상의 도구였다.

이덕일은 조선이 멸망한 궁극적인 원인을 노론에서 발견하였다. 그에 따르면, 18세기 후반 조선을 통치했던 정조는 조선 사회 저변에 나타났던 근대로의 이행이라는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고자 했지만, 노론은 여전히 “성리학 신정(神政) 체제”에 집착하면서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노론이 정조라는 ‘계몽군주’를 독살하고 집권하여 주자학 일변도의 반동 정치를 전개해나감으로써 조선이 멸망에 이르렀다고 보았다. 이 같은 이해는 성리학이 조선의 멸망을 초래했다는 인식으로 귀결된다.  

식민사학은 여전히 살아쉼쉬고 있다는 이덕일의 주장은 어떤면에서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카하시 도오루같은 식민철학자가 만든 사상의 틀을 노론이 조선을 지배했고 성리학이 조선을 망쳤다고 주장하는 이덕일같은 사람이 지금도 계승하고 있으니 말이죠. 식민철학자의 사상틀을 계승한 사람이 있지도 않은 식민사학해체를 부르짖으니 참 아이러니 합니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80936.html / 한국사상에 깃든 ‘식민철학’ 그림자
http://semper-vigilans.tistory.com/m/post/53 / 이덕일과 식민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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