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에 욕먹을 각오로 한번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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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역사게시판이든 애국심이나 애향심 등을 울컥하게 만드는 글은 한번쯤 올라오기 마련인거 같습니다.
저에게는 유난히도 태극기 휘날리며가 그러했고 이번에 개봉한 암살을 보고 나니 더 그러한거 같습니다.
그런데 꼭 그런 글에는 단순히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작성자의 사적인 감정이 섞이곤 하는거 같습니다.
대표적인게 김구와 이승만이라는 해방전후의 두 거인이겠네요. 한쪽은 격렬한 독립 투쟁의 선봉에 섰던 사람이고 한쪽은 외교독립론을 위해 활동했던 사람이니 두 사람모두 일단 '독립운동가'는 맞습니다.
다만 이승만쪽이 더 유명했고 미국의 입맛에 맞았으며 그 자신의 기회를 포착하고 활용하는 모습이 김구보다 더 나았던 모양입니다. 실제로 이승만은 미국에서도 그닥 좋지 않는 모양세를 보인적이 있으니 후인들의 입장에서야 이승만보다 김구가 더 호감형으로 다가오는것 같습니다.
더구나 김구는 안두희라는 작자에 의해 암살까지 되었으니 그의 호감도는 더욱 하늘을 찔렀겠지요.
실제로 김구의 해방전후 행보는 획기적이었고 나라를 위한다는것이 눈에 보일정도로 헌신적이었습니다.
정읍발언 같은 행동이나 하면서 똥이나 뿌려댓던 이승만과는 분명 차이가 있겠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승만과 김구라는 두 거인을 두고서 울분을 토하기도 하고 육두문자를 흘리기도 하며 각자 평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도 이런 모습이 불편하곤 합니다.
두 사람을 평가하는 행위 자체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평가에 섞여 있는 감성적인 부분이 불편합니다.
제가 학교에 막 입학했을때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당부가 있으십니다.
"역사란 것도 결국 사람의 일이다. 그러다 보니 그것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학자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감정이입도 되고 해서 과거의 행위자를 감정 섞인 '인간의 눈'으로 보곤 한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신의 눈'이다. 어떠한 가치관과 철칙에도 흔들리지 않고 사실만을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아직 군대도 다녀오기 전이었던 갓 스물의 저는 그런걸 이해할 턱이 없었고 솔직히 관심도 없었습니다.
수년이 흘러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을때 저는 저 말씀을 잊고 있었고 나중에서야 기억해 냈습니다. 그리고는 그 말의 참뜻을 쫓았습니다만 창피하게도 아직도 저는 저 말씀에 몸통은 커녕 꼬리만 멀리서 바라본 수준입니다.
우리는 왕왕 세상의 것에 감정적이 되곤 합니다. 역사도 마찬가지 인지라 과거를 논하는 우리는 종종 그들과 함께 하곤 합니다. 이승만이 되었든 독립운동을 위해 투신한 한 이름모를 남성이 되었든 우리는 그들과 한 숨결을 같이 하려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이 정녕 궁극적으로 올바른 역사 인식인가요?
격해진 인간의 눈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각자 다른 길을 보여주곤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다면적인 모습이 있는 것이고 그것에 대해 복합적인 평가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취해버린 인간의 눈은 이를 불가능하게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주변으로 전파되서 답없는 마녀사냥으로 까지 확장되곤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조선의 선조이겠군요.
반대로 긍정적인 감정에 취해버린 경우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경우에 신격화가 되겠네요. 잘알려진 박정희에 대한 보수층의 인식이 그러하겠습니다.
한마디로 감정적이 되기 쉬운 인간의 눈은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는 대신 '왜곡된 역사관'을 심어주는 첨병 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도 말한적이 있습니다만 이성적인 인식이라고 해서 부정의에 눈을 감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승만과 일제를 평함에 있어서 잘잘못을 따질때 필요한 것은 인간의 눈으로 본 감성적인 분노가 아니라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태도 즉, '신의 눈' 입니다.
물론 역사커뮤는 모두 그냥 취미 생활을 즐기는 이들의 것입니다.
저 또한 그러하고요. 모든 이들에게 '신의 눈'을 요구하는 것은 그냥 바보 같은 소리이겠지요.
역사를 취미로 여기는 이들 중에는 이와 같은 애국심이나 분노감을 진심으로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전 그런 이들에게 '넌 틀렸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제가 말하는 것은 정론일 뿐입니다.
분노감에 몸겨워하고 애국심에 가슴 벅차하는 이들도 역사에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들이 있어야 세상의 혼란함에 내몸 하나 뉘울 정의로운 길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감정을 자극하는 글과 그것에 취한 이들의 글이 난무하는 장소라면 역시나 전 불편합니다.
저것들이 종국에 가서는 역사를 왜곡하고 모욕하게 될테니깐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가슴은 뜨겁게 그리고 머리는 차갑게'
여러분이 사랑하고 지키고자 하는 역사적 정의를 위한 뜨거운 가슴은 끝까지 지켜 주세요. 대신에 감정이 휘몰아치는 역사 인식과 그것의 표출 보다는 '차갑지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역사인식'을 가져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