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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령뿐만 아니라 많은
친일파들이나 추후 매국노가 될 분들이 존경하기에 딱 좋은 케이스인것 같습니다.
이완용같은 분들이 대한제국을 매국한후
그후손들이 조선총독부총독까진 아니더라도 부총독을 계속 지내다가
독립후 대한민국 총리나 대통령이되었다면
본인들 친인척들 후손들 잘먹고 잘살수있었을거니
딱 그런 삶이 어떤거다..라는 기준이 될수있는 분이니..ㅡㅜ
http://media.daum.net/culture/book/newsview?newsid=20150805114504509
[임기상의 역사산책 116] 조국을 버리고 왜군 장교로 들어간 조선 청년의 초상노컷뉴스 CBS노컷뉴스 임기상 선임기자 입력 2015.08.05. 11:42 수정 2015.08.05. 15:53
"29일 치안부 군정사 징모과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교사) 박정희(23)군의 열렬한 군관 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 합격증명서와 함께 '한목숨 다 바쳐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담당자를 감격시켰다."
또, 이 신문은 박정희 훈도가 편지에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라고 적었다고 전했다.
거수경례하는 생도가 만주국 황제 푸이(簿儀·일본제국이 세운 괴뢰국가 황제)가 내린 금시계를 받는 박정희이다. 이날 우등생 수상자는 모두 5명으로 일본계 2명, 만주계 2명, 그리고 조선계가 1명이었다. 그 조선계 1명이 바로 박정희 생도이다.
그는 나라를 버리고 일본의 괴뢰국가인 만주국에서 출세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졸업과 함께 그는 기다리고 갈망하던 일본 육군사관학교로 출발한다.
그래서 군관학교 예과 졸업생 가운데 우등생을 뽑아 일본 육사에 편입시키는 특전을 베풀었다. 일본 육사에서도 박정희는 '빡세게'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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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일본 육사에서 본과 2년 과정을 마치고 1944년 4월 유학생대를 3등으로 졸업한 후 소련-만주 국경지대인 치치하얼 주둔 관동군 635부대에 배속됐다. 당시 그의 계급은 '상사대우'였다. 3개월 후인 1944년 7월 1일 마침내 '황군 육군소위'로 임관돼 만주군에 배치됐다. 이 시기는 장준하와 김준엽 등 수많은 학병들이 일본군을 탈출해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시기였다.
박정희가 소속한 만주군 보병8단은 열하성 남부에 있는 반벽산에 주둔하고 있었다. 전체 병력은 약 3천 명 정도이고, 주임무는 그 인근에 있는 모택동의 팔로군 토벌이었다....
출처 | http://media.daum.net/culture/book/newsview?newsid=20150805114504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