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기념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역사게시판 첫글입니다.(사실상의 추천 유도)
일본의 신사참배를 둘러싸고 주위국가들의 반대와, 다 싫어하는데도 궂은 길을 가겠다는 극우파 일본 정치인들의 대립,
그리고 논란이 이어지는데요.
생각해보니 지들이 전범을 핥고 빨던 말던간에 왜 이렇게 일제 군국주의 피해국가들에서 그 일을 두고 화를 내는가가 사실 이해가 잘 안갔습니다.
역사 게시판 분들이야 잘 알고 계시겠지만, 보통 그렇지가 않을거라고 봅니다. 걍 일제의 만행을 떠올리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쉽사리 넘어가는 게 대부분일거라고 봅니다.
까려면 알고까자는 취지에서 쓰는 글이고, 명확한 사건 일시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흐름정도를 이해하는 것을 원해서
기반 지식이 없다는 가정하에 쉽고 재미있게 써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정확한 역사적 사실과 어긋나거나 오해를 부를 수 있다면 거침없이 지적해주시고, 다 아는 이야기 왜 썼냐는 분은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여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1. 메이지 유신.
메이지 유신을 자세히 설명하려면 글을 더 파서 설명해야 할 듯 합니다. 그러므로 극화하여 간단하게 묘사하겠습니다.
일본은 막부 정치-무사계급 중심의 봉건 사회 였는데요. 세계사는 제국 열강들이 한창 제3국 털어먹기를 실행하던 시대였습니다.
바야흐로 일본에도 근대화의 바람이 억지로 몰아붙였습니다. 서양의 배가 들어온거죠.
서양 열강: 흑선 와쩌염 뿌우~ 개항ㄱㄱ!
막부: ㄷㄷㄷ (쫄아서 개항)
흑선(쿠로후네)사건이라고 불리는 반강제 개항 사건을 통해 일본의 문호는 사정없이 열리고 말았습니다. 한국의 운요호 사건과 비슷한 겁니다.
이후 사회혼란 속에 막부에 대한 반감을 가진 개화세력이 집결하고, 이중 유명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유신 3걸이라고 있습니다.
이들의 도막(반 막부운동)이 시작해서 암살도 하고, 정치적으로 세력도 넓히고 이러저러해서 막부를 들어엎게 되는데,
이들의 개혁 및 반정이 성공하면서 일본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했습니다.
이들이 왕정 복고 세력이었던 겁니다.
처음에는 왕을 모셔놓고 막부를 턴 다음에 쇄국정책을 시도하려고 했습니다만, 막부 다 털고나더니만 왕정 복고 세력은 개국을 해버린다는 결론을 내버렸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이들은 일본의 개화세력이 되었고, 개국을 단행하고 서양 열강의 정책을 모방하여 근대화에 발을 내딛게 됩니다.
이렇게 들어선 왕이 국호를 내세운 것이 명치이며, 따라서 개혁은 메이지 유신, 이 시대는 메이지 시대라고 불리게 됩니다.
한국 역사와 다른 점은, 우리나라에서는 세도가문과 쇄국 정치세력이 건재하였으나, 일본은 탈탈 털리고 개화세력이 집권하게 되었다는 거죠.
2. 일왕, 그리고 신토.
일본의 왕은 사실 그 존재가치가 걸어다니는 전국옥새 정도였습니다. 왕권은 소실된지 오래였으며, 막부의 봉건정치는 옹고했습니다.
막부는 걸어다니는 전국옥새에게 정치 권력을 넘겨받았다는 명분을 쥐고있었으나 그건 무사-귀족 계급에서나 아는 이야기이지, 평민들 입장에서는 막부대가리가 곧 왕이었습니다.
도막 유신 세력들이 집권하고, 막부가 가지고 있던 권력을 일본의 왕이 돌려받는 사건, 대정봉환이 일어난 이후로 절대왕권을 명목상으로 구성했습니다. 실제 내부사항을 보자면 이게 절대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명분상으로는 확실히 막부가 가진 모든 권력을 왕이 다 회수했다는 논리죠. 그러나 대부분의 일본 민중들에게 갑자기 나타난 일왕이 절대권력으로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메이지 시대가 시작되고 몇년 지나지 않아, 유신세력은 신도라는 종교를 국교로 선포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신토란 일본의 건국 신화와 토착신앙이 어우러진 종교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하늘에서 강림한 신들과, 자연물, 나라에서 난 영웅들을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종교입니다.
일본 게임이나 만화등에서 아마테라스, 스사오노라는 이름을 종종 들어보셨을텐데, 이것이 일본의 건국신화상 강림한 대표적 신들이고요.
오오쿠니누시라는 스사오노의 피를 이은 신이 일본을 세우고 이후 이 계보가 바로 세계유일의 황제, 일본의 왕에게 계승되고 있다는게 이들 건국신화 주 내용입니다.
거기에 도교, 불교적 영향이 가미되어 독특한 형태의 토착신앙으로 발전한 것이죠. 어쩌면 힌두교와도 유사한 모양일 수 있습니다.
뻔한 이야기입니다만, 유신세력은 이 신토를 중심으로하여 절대권력의 정통성을 민중에게 인식시키기로 했습니다.
원래 불교, 도교적 영향이 존재했던 이 신토는 정치와 사회적 변화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미되며 변모해왔는데, 유신세력은 천황을 중심으로 교리를 전면 재해석했습니다. 특히 그 경계가 모호했던 불교적 요소들을 강제적으로 신토교리로 부터 분리시키고, 일왕과 그 조상, 그리고 신격화한 영웅을 중심으로 교리를 만들고, 이에 따르지 않는 신사들을 없애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전역에서 7000여개에 달하는 신사가 폐소되었는데, 거부하는 신주들을 경찰력을 동원해 잡아들이기도 했답니다.
또한 마치 이집트의 파라오마냥 일왕을 현세의 신으로 숭배합니다. 단 한줄기를 타고 도도히 내려온 신의 혈맥. 일본과, 나아가 세계를 지배할 정당한 단 하나의 황제로 추앙하기 시작한 겁니다.
이렇게 변모해버린 신토는 국가신토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며, 이후 일본 근현대사에서 일왕이 일본의 구심점이 되도록 만든 가장 강력한 정치도구로 활약하게 됩니다.
3. 군국주의의 광기, 그리고 국가신토.
원래부터 호칭은 천황을 걸고 있었으니, 왕권의 정통성을 확립한 일본은 명목상으로나마 제국이 되었고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개화를 서두른 일제는 점차 제국주의 열강들의 행위를 흉내내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이있는 한국도 털고, 대만도 털고.
그 사이 국가신토는 일제의 정치도구로써 맹활약합니다. 팽창하는 국력과 함께 국가신토의 맹위도 점점 커졌고, 정부는 이것이 야마토의 정통성을 이은 일제의 문화이며 신성한 임무임을 강조합니다.
서양 열강들의 정치구조를 흉내내기는 했으나, 그 정치적 사상적 바탕에 민중의 힘이 결여된 일본은 개국이후 전체주의적 사상이 널리 퍼지게 되었고, 그들의 구심점을 유지시켜주는 국가신토와 일제는 기묘한 영향을 주고받게 됩니다. 일제는 군대를 일으키는 것을 종교적으로 합리화하기 위해 국가신토를 통해 군대를 신성화했고, 이는 다시 전체주의를 군국주의로 변모시킵니다.
군국주의의 광기는 프로파간다에 불과했던 종교의 껍질을 벗은 국가신토를 국가의 구성원 대부분이 프로파간다임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퍼졌고,
일왕에게 충성하는 신성한 군대는 그 임무에 충실해야 하며, 황국의 신민은 당연히 일왕에게 충성하기 위해 군대를 유지하기 위한 어떠한 희생도 해야한다는 미친 이론으로 발전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진격을 멈출 수 없는 일제의 군대는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군국주의에 희생당한 타국민의 시체만이 아니라 자국민의 시체마저 방패막이로 쓰며 진격하던 광기의 집단은 결국 원폭 두방 맞고 갑작스레 정신을 차립니다. 더이상은 노답이었거든요.
그래서 일왕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합니다.
군국주의의 광기와, 국가신토의 마지막이었습니다.
4. 신사참배와 인간으로 돌아온 일왕.
미국은 그 누구보다도 이 미치광이 집단들의 광기를 많이보고, 많이 기록한 나라입니다.
일왕에게 충성하겠다고 비행기를 타고 배로 돌진하지를 않나, 총알이 다 떨어지고 전략적 패배가 확실한데 도주는 커녕 대검을 꽂고 돌격하지를 않나... 이 미친 집단의 배경에 무엇이 있는가를 그들은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정전협상 내용중에는 그래서 이러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왕은 인간이라는 것이죠.
국가신토 또한 당연히 완벽히 철폐되었습니다. 단순히 군국주의적 광기가 아니라, 자국우월주의를 아주 종교적으로 체계적으로 믿어오던 미치광이 집단들에게 앞으로 평생 그 짓거리 하지 못하게 막은 겁니다.
맥아더 장군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일왕과 사진을 찍어 일본에 그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른 재산을 거의 몰수당하고 일본 의회에서 돈을 타서쓰는 명목상의 왕으로 다시 전락했죠.
인간에서 신이 된 지 단 3대째, 일본의 왕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왕은 철저히 의회의 허가에 따라 움직이는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국가신토의 그림자는 쉬이 사라질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전대 일왕은 야스쿠니 신사에 전범이 합사된 이후로 참배를 가지 않았으며, 현대의 일왕도 야스쿠니 신사에는 참배를 가지 않습니다.
국가신토의 숭배물이자, 신토에서 신의 자손이라 불리는 일왕의 행위로써는 아이러니해 보일 수 있으나,
이들은 생존을 위해서던지 아니면 정말 의식적으로 극우를 싫어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극우와는 선을 그은 셈입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왕조의 태도일 뿐, 지금도 일본 총리는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로 참배를 다니며,
나아가 헌법 9조마저 무력화한 법안을 주도하여 군국주의의 그림자를 비추고 있습니다.
극우의 정신적 바탕인 국가신토는 명목상으로 사라졌으나, 신토는 애초에 국가신토의 성립때 당시 집권세력들에게 변형된 형태만이 남아있습니다.
그들이 신토의 신사에 참배하는 것이 순수한 종교적 목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착각일까요?
아니면 전범조차 신이라고 추앙하며 한 국가의 원수가 거기에 절하는 것을 합리적으로 의심하는 것이 바른 선택일까요?
단순히 전범을 모시고 절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 등뒤에 그려진 군국주의의 그림자가 주위 국가에게 불쾌감과 불신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아베신조는 2013년 주권회복의 날 행사를 강행하며 일왕 내외에게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습니다.
불행중 다행으로 일왕은 당황하며 입을 다문채로 그들의 함성을 피해 퇴장했습니다만, 그 자리에 가득찬 그 함성이 제눈에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광기로 보이더군요. 광복 70주년 입니다. 일왕이 인간으로 돌아온지도 70년입니다.
우리가 한순간 눈을 팔고 이 사실을 잊는다면 그들이 언제라도 돌변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저는 지울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