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통령 이시영 - 상해임시정부 재무총장: 김구 한독당출신, 이승만의 전횡에 반대 1951년 부통령직 사임
국회의장 신익희 - 임시정부의 내무총장: 1956년 야당(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 유세도중 사망
대법원장 김병로 - 항일변호사: 57년 대법원장 은퇴. 1963년 윤보선(尹潽善)·허정(許政)과 함께 야당활동
국무총리 이범석 - 광복군 참모장: 1953년 이승만의 숙청으로 자유당에서 제명됨. 박정희때 윤보선, 유진오 등과 통합야당 신민당 활동
외무장관 장택상 - 일제시대 청구구락부 사건으로 투옥: 48년 12월 사퇴, 박정희때 한일협정반대투쟁, 신민당 고문 등 야당활동
내무장관 윤치영 - 일제시대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투옥: 48년 12월까지 재직. 친일파등용 문제로 이범석, 장택상 등과 갈등
재무장관 김도연 - 28독립선언을 주도하여 투옥: 1950년까지 재직. 한민당 및 민주당으로 야당활동
법부장관 이인 - 항일변호사: 한민당, 이승만 대통령과 뜻이 맞지 않자 물러났다.
국방장관 이범석 - 국무총리 겸임
문교장관 안호상 - 철학교수: 독일유학한 철학박사, 이승만, 박정희 시절 공직에서 활동, 1995년에 허가없이 방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농림장관 조봉암 - 공산당에서 전향한 항일운동가: 1949년 장관직 사임. 1957년 진보당 창당, 1958년 간첩죄 및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1959년 11월 사형.
상공장관 임영신 - 독립운동가이고 교육가: 미국유학파, 여성정치인, 1949년 6월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사회장관 전진한 - 일제시대에도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 1951년 부산에서 이승만과 결별했다.
교통장관 민희식 - 교통전문가: 40일 만에 그만둠
체신장관 윤석구 - 교육 사회운동가: 625때 인민군에 피살.
무임소 장관 이청천 - 광복군 총사령관: 자유당 활동, 57년사망
무임소장관 이윤영 - 북한에서 항일 목사로 활동, 조만식 제자: 1956년 조선민주당으로 부통령 출마, 516군사정변 후 군정연장반대투쟁위원회 의장
국회부의장 김동원 -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 독립운동가 출신: 1948년 한민당 당선, 1950년 625때 납북.
국회부의장 김약수 -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반민특위 활동, 남로당국회프락치사건 연루 복역중 625때 월북.
사회장관 전진한 - 국내항일운동가: 43일만에 그만둠
총무처장 김병연 - 국내항일운동가: 조만식계, 조선민주당
기획처장 이순탁 - 국내항일운동가: 1950년 625때 납북되었다
공보처장 김동성 - 국내항일운동가: 자유당 국회부의장, 박정희 때 민주공화당 중앙위원으로 있었다. 독재쪽에서 일한 것으로 보임.
말도 많고 그 평가도 엇갈리는게 많은 대한민국 초대 내각에 대해 한번 찾아봤습니다.
이승만이야 다들 알테니 일단 넘어가고, 표면적인 타이틀과 활동만 보면 친일행각보단 오히려 독립운동에 가담으로 인해 고초를 겪거나, 일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독립운동가들이 대한민국 초대 내각의 주류입니다. 이후의 행적이 문제될수 있지요. 여기에 과오가 있다면 이에 따른 비판과 평가를 내릴수 있을 겁니다.
이들의 공로를 평가한다면,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작게나마 헌신했다는 점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 및 정부 수립에 공로가 있으며 일했다는 점이겠지요? 이승만 내각의 반민족적 행위가 문제라면 이후 정치싸움과정에서 힘이 몰린 이승만이 자신의 세력기반을 다지기 위하여 반민족행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반공이라는 타이틀을 걸어 반대파들을 갈아버렸다는 점이겠지요.
사회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라고 하나, 이 갈등이란 것도 정반합의 구조를 거쳐 긍정적인 요인을 낳을 때에야 좋다고 봅니다. 뭐, 저도 아직은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민족주의적, 반공적 요소의 물이 덜 빠진 풋된 객관주의자라서 자유시 참변 및 자금 파동을 일으켰던 공산주의자 일파들에 대하여는 곱게 보지 못합니다.
암살이라는 영화들은 다들 보셨는지요? 거기서 전 염석진이라는 인물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며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요한 인물이라고 봅니다. 다들 꼭 한번 보시면서 왜 그러한 이야기들이 나오는지를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알면 알수록 다사다난했던게 독립운동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