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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과 종족(?)의 상관성과 고조선
게시물ID : history_2219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콜라캔
추천 : 5
조회수 : 1167회
댓글수 : 18개
등록시간 : 2015/07/25 19:29:23
저는 원래 오유에 활동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우연히 들렀다 고조선 어떻게 교육해야하는가?라는 주제에 유물과 종족(민족)적 상관성에 대해 언급한 것이 있어 간단하게 언급해보고자 합니다.
 
유물과 종족과 영역의 상관성에 대해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유물이라는 것은 어떤 집단의 유무를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단 그것은 "비파형동검" 단순 한개 유물이 아닌 일정 범위에 걸쳐 공통된 유물조합 또는 양식이 나와야합니다. 교과서에서 나오는 것처럼 "비파형동검, 미송리형토기, 고인돌"처럼 이런 조합이 나와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이런 양식을 판단하는 것은 결국 고고학자의 몫이기 때문에 유물 조합을 잘못 판단한다면 그 오류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체계적인 분석을 필요로 합니다.
 
또 행정력 문제가 나왔는데, 행정력이 지방 곳곳 미치는 것은 국가가 형성되고도 한참이 지나 빠르면 통일신라 ~ 고려시대이고 현재와 같이 점선으로서 행정력이 미치는 것은 현대국가나 들어서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국가로서 성장하지 못한 고조선의 경우는 행정력 문제보단 영역 또는 세력범위라는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막 길게 서술하고 그러면 잘 안 읽으시는 것 같아서 글을 크게 줄이고 마지막으로 몇 가지만 조금 언급하자면 첫째 고조선의 물질문화는 몇 시기에 걸쳐 변동이 됩니다. 우리가 아는 "비파형동검 미송리형토기 고인돌"이라는 조합은 고조선의 전기라 불릴 수 있는 기원전 8세기 ~ 기원전 6세기에 걸친 시기입니다. 이후에는 다른 유물 조합을 거쳐 위만조선대에는 우리가 잘 아는 그 "세형동검"이라 불리어지는 것이 나옵니다.
 
두 번째 앞의 글을 보면 고조선의 물질문화에 대해 쌩판 오류로 언급하신 분이 있는데, "지석묘(고인돌), 세형동검, 빗살무늬토기" 이 3유물은 전혀 시기가 다른 유물들로서 고조선의 물질문화라 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 굳이 고조선이 현재의 대한민국과의 역사적 연속성을 입증하는데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굳이 입증을 하겠다면야 문헌말고도 고고학적으로도 충분히 입증할 수 있습니다. 이미 기원전 4세기경 요동지방의 고조선인들이 한반도 중서부 지역인 충남과 전북 지역에 대거 이주하여 그 문화가 이어지는 것이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잘 아는 그 세형동검문화이구요. 한 가지 알아둘 점은 현재 발굴성과로는 서북한지역인 평양 일대보다 충청도 일대가 요동지방의 물질문화와 더욱 유사하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세형동검문화가 후에 삼한으로 발전하고 이 삼한이 삼국시대로의 계기적 연속성은 고고학적으로도 잘 확인되고 있고 문헌상으로는 더욱 잘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재차 언급할 필요가 없는 문제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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