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480년 초, 홍수라는 하천을 사이에 두고 송나라와 초나라의 대 결전이 벌어졌을 때의 일이다.
당시의 宋나라 임금은 송양공(宋襄公), 장수는 공자 목이(公子 目夷)이였으며, 상대방 초나라 장수
는 유명한 맹장 성득신 이었고 양국의 군사력 규모는 楚군이 두배가량 우세한 상황이었다.
송나라 장수 목이는 적의 병력이 월등히 우세하여 이길 수 없으니 회군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 하였으나
송양공은 적은 군사력은 많으나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아군은 인의를 갖추었으니 반드시 아군이 승리할
것 이라고 장담하면서 결전을 명령하였다.
그렇게 여러 날을 하천의 양안에서 대치하고 있다가 병력이 우세한 초군이 드디어 도하작전을 감행하였다.
이때 목이 장군은 적 도하 시 기습공격을 감행한다면 일거에 적을 수장(水葬)할 수 있으니 즉시 공격할 것을
주장 하였으나 송양공은 “仁義” 라는 군영의 깃발을 가리키며 적이 어려울 때 공격하는 것은 떳떳치 못한
처사라고 오히려 목이를 비난하고 공격을 허락 하지 않았다.
얼마가 지나고 초군이 도하를 완료하고 교두보를 준비 하고 있을 때 목이는 다시 도하 시 만은 못하더라도
지금 전열을 갖추지 못한 적을 공격하면 어느 정도의 승리를 보장할 수 있다고 다시 건의 하였지만 역시
송양공은 인의만을 다시 내 세우면서 진을 치지도 않은 적을 공격 한다면 일시적 이득은 취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만세에 지탄을 받는 부끄러움이 될 것 이라면서 또한 공격하기를 불허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전열을 갖춘 초군의 총공세가 시작되었고, 이에 맞선 송군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채 일격에
대패하고 말았으며 송양공 역시 이 전투에서 적장의 칼에 전사하고 만다. 이 고사를 들어 지나치게 명분에 얽매어
현실을 인식 못함으로서 낭패를 보는 바보스런 경우를 비웃는 말로서 요즈음도 자주 사용되는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한다. ※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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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춘추시대 초나라vs송나라 싸움남
송장수가 도하하는 적들을 기습하자고 건의하나 송양공이 인의仁義를 따지며 거부함
결국 조내 똑똑한척 하던 씹선비 송양공에 의해 송나라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