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닉언급에 대해서는 매우 죄송하다고 생각합니다. 사과드립니다.
먼저 여기 책게에 계신 많은 분들이 정말 문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신 분들도 계실테고
저처럼 전공으로 배우시는 분들도 있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끄러운 저의 글 실력을 가지고 저의 주장을 펼치기에 부끄럽지만
누군가 물꼬를 틀어 둔다면 이야기가 쉽게 나오지 않을까 해서 이야기 합니다.
(본 이야기는 모두 저의 단순한 생각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국정화 교과서는 절대로 시행 되서는 안 된는 주장도 밝힙니다.
1. 한국 문학의 시대적 변화
한국 문학의 근대와 현대를 나누는 지점은 많은 문학을 연구하시는 학자들마다 다르시겠지만
저는 현대문학과 근대문학을 나누는 것을 해방 전후의 시점과 6. 25 전쟁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특히 6.25 전후 문학을 기준으로 한국의 현대문학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2. 한국 현대 문학
지금 한국의 현대 문학 그러니까 6.25 전후 문학부터 지금의 문학적 발전을 이야기 해본다면 엄청난 발전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6.25 전후의 피난민들의 고통과 혼란스러운 정국 독재에 저항하는 문학과 노동자들의 아픔을 대변 한 문학
독재의 시대가 끝난 직후 새로운 양상으로 전환 된 문학의 시점까지 문학의 변화는 수 많은 작가들로 인하여 변화를 거쳐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현대 문학은 고비라고 할 정도로 매우 위태로운 상황 입니다.
90년대 수 많은 스타 작가들을 배출했던 한국, 정말 이름만 들어도 누구인지 바로 이야기 되는 시기의 젊은 작가들이
그렇게 문학적으로 다양성을 추구했던 문학들이 갈대처럼 쓰러지는 현실을 바라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문학이 점차 심오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문학의 심오성 그것은 외국과 경쟁하는 한국 작가들의 새로운 역량과 방식이 기술적인 측면에서 커진다는 점에서 매우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작가들의 등장이 한국 문학의 새로운 바람이 될 것이다. 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문학이 과연 심오해지는 것만으로 그 문학이 발전했다고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외국의 많은 작가들 남미의 가브리엘 마르케스, 호르헤 보르헤스처럼 심오한 그러니까 남미의 문학적 토대라고 할 수 있는 마술적 리얼리즘처럼 문학적인 성과가 있다면 저는 매우 좋은 변화이자 큰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현대문학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처럼 문학적인 의미와 업적이 잇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당연히 외국의 작가들의 오래된 문학적 업적에 대해서 비교를 하는 것은 옳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현대문학은 한국적이다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려해진 문장과 기술를 살려낸 작가의 탄생들이 문학의 특징들을 갉아 먹는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오래 사셔서 영미 문학을 자주 접하셨다고 해서 이야기 합니다. 영미 문학의 특징들을 저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저는 영미 문학을 시대와 같이 성장해온 문학이라고 생각 됩니다.
영국의 현대 문학 대표 작가 도리스 레싱을 이야기 한다면 영국의 사회적 배경을 착실하게 표현 해낸 작가로서, 자기 특유의 문법과 언어를 이용해서 문학적 완성을 해내고 돌아가신 작가라고 생각 합니다.
아니면 미국을 본다면 필립 로스는 인생과 삶에 대한 그리고 미국의 뒷 면을 밝히면서 자신의 세계관을 완성하고, 필립로스 작품의 대표적인 주인공 네이선 주커먼이라는 존재까지 만들어 낼 만큼 역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이스 캐럴 오츠는 80의 나이에도 공포와 죽음에 대한 자기 특성을 여전히 유지 시켜냅니다.
아니면 노벨문학상의 주인공 토니 모리슨은 흑인과 미국사회에 대한 자기 성찰과 고백으로 사회적 의미와 흑인으로서의 의미성을 문학적으로 녹여 내렸습니다.
이렇듯 그들 대륙 혹은 세계 속에 묻어나는 특징과 사회적 배경 혹은 문학적 성찰을 문장이 아니더라도 표현 해내고, 그것이 문학적인 완성 단계까지 이끌도록 만들어 내어 문학적 특징을 표현합니다.
한국도 물론 그런 시기가 있었습니다.
70년대 조세희 작가가 펴낸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은 노동자와 가난한 세대의 아픔과 갈등을 상징과 은유로 표현 해낸 작가입니다.
80년대 이문열과 황성영 작가는 그 시대의 혼란에 대한 의미를 정면으로 문학 속에 담아 냅니다.
그것이 독재시대의 비겁했던 소시민을 은유한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베트남 전쟁의 상처를 담아낸 '무기의 그늘' 을 본다면
90년대는 자기만의 문학 특유성으로 무장한 작가들의 등장으로 문학계의 생태계는 다양해 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영하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은희경 - 새의 선물, 천운영 - 바늘 처럼 자기 색이 강렬한 문학가들의 데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작가들은 90년대 특유의 문학적 색들이 더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완전히 없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편혜영, 김중혁, 손보미, 장강명, 구병모등 처럼
하지만 대부분의 문학은 그러니까 지금 데뷔를 하려는 문학에는 이러한 색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신춘문예의 소설들을 봐도, 입시문학처럼 비슷한 주제와 자기 고백이 주를 이루고,
문학상의 오른 문학은 데뷔한 작가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한 장소로 전락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문학이 더이상 베스트셀러를 오르지 않고, 많은 이들이 한국 문학을 비판하는 이유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더이상 한국문학은 한국문학 같지 않아졌다.
3. 한국 현대 문학의 방향성
저는 마지막으로 한국 현대 문학은 이제 거의 누구도 보지 않는 문학의 단계까지 추락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이해 할 수 없는 이야기, 지금의 사회적 배경은 더이상 볼 수 없고, 문학적인 장르도 드물게 보이는 이러한 문학적 현실이
과연 독자를 위한 것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러한 한국문학의 방향성은 순수문학만을 취급하는 현재의 관점과 기준을 훼손 시켜야만 문학적 의미를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보면 하루키 특유의 문학적 의미를 간직하고 있지만, 표면적인 문학은 판타지이고 sf입니다.
미국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도 재즈시대에 써낸 로맨스 소설입니다. 표면적 이유로는요. 영국에 오만과 편견도 로맨스 소설 입니다.
201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파트릭 모디아노의 대표작 어두운 상점가의 거리도 표면적으로 탐정소설이자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저는 문학이 장르화가 되어서 가벼워 진다 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문학의 장르가 문학적 흥미와 더불어 그 안에 의미를 내포하기에 가장 좋은 상징이자 비유로서 쓰여 진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적 기술로서는 매우 대단한 한국의 소설들이 장르와 만나 또 다른 문학적 특성을 살린다면, 그것이 한국의 하루키 같은 작가의 탄생이 이어 진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작가만의 역량 뿐만이 아니라 바로 그 주변의 문제도 반드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작가를 만들어내는 출판사입니다. 문학 출판사를 본다면 대형 출판사에서 데뷔를 하여 평론가에게 눈길을 받은 작가만이 문학계의 주류로서 생존이 가능합니다.
그럼 문단 내에서 주류에 드는 작품들만 쓰다보면 문학의 다양성은 점차 훼손됩니다. 저는 신춘문예가 작가의 길을 잇는 통로다. 저는 불편하다는 생각을 많이합니다. 이러한 신인들을 위한 문학상은 필요하지만 무조건 그 문학상에 등당해서 평론가에게 인정 받아라는 심사를 하는 작가 선출은
나의 문학이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는 문학 밖에 못한다는 점을 생각 해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한국 문학의 방향성은 정말 어둡다고 생각 되지만
만화계도 무너져버린 현실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도약하여 만든 웹툰처럼 문학도 새로운 길로서의 도약이 문학의 진정성과 다양성 그리고 새로운 발전으로 한국 문학의 전성기와 방향성을 되찾아 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