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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상 공식적으로 왕조에서 인정을 받아 배향되었던 명장들의 명단
게시물ID : history_220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ungsik
추천 : 7
조회수 : 2617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5/07/16 03:3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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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왕조에서 간혹 무성왕묘에 제사를 지낸다, 는 일이 있습니다.
문성왕이 유학의 대성인이자 인류의 스승으로까지 추앙받을 공자라면, 무성왕은 바로 태공망 강자아입니다. 물론 격이야 차이가 심해서 공자에 대한 제사는 끊임이 없지만 무성왕에 대한 제사는 했다 안했다 하구요.


여하간에 이렇게 무성왕을 배향할때를 보면, 역대 명장들 중에 뛰어난 이들을 제후와도 같이 하여 무성왕 옆으로 배향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 언급될 정도면 당대에 가장 뛰어난 지휘관으로 인정받았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우선 760년의 당나라 시기에 꼽인 명단은 이러합니다.



上 元 元 年 , 尊 太 公 為 武 成 王 , 祭 典 與 文 宣 王 比 ,以 歷 代 良 將 為 十 哲 象 坐 侍 。 秦 武 安 君 白 起 、 漢 淮 陰 侯 韓信 、 蜀 丞 相 諸 葛 亮 、 唐 尚 書 右 僕 射 衛 國 公 李 靖 、 司 空 英國 公 李 勣 列 於 左 , 漢 太 子 少 傅 張 良 、 齊 大 司 馬 田 穰 苴 、吳 將 軍 孫 武 、 魏 西 河 守 吳 起 、 燕 昌 國 君 樂 毅 列 於 右 , 以良 為 配 。 後 罷 中 祀 , 遂 不 祭 。 




 

진秦 무안군武安君 백기白起


 

한漢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


 

촉蜀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


 

당唐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위국공衛國公 이정李靖


 

사공司空 영국공英國公 이적李勣(이세적)


 

한漢 태자소부太子少傅 장량張良


 

제齊 대사마 전양저(사마양저司馬穰苴)


 

오장군吳將軍 손무孫武


 

위衛 서하수西河守 오기吳起 


 

연燕 창국군昌國君 악의昌國

 

 




이때 760년에는 백기, 한신, 제갈량, 이정, 이세적을 좌에 두고, 사마양저, 손무, 오기, 악의를 우에 두고 장량으로 배향하게끔 했습니다. 정확히 알수는 없으나, 좌측이 상석이라고 생각해보면 좌쪽에 있는 인물들이 우편의 인물들보다 높게 대접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당나라의 명장인 이정, 이세적이 모두 좌편에 있기도 하고.





이후 782년, 서예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름을 알만한 인물인 안진경의 제안으로 다시 한번 무성왕에 배향하면서 역대 명장들이 뽑히게 됩니다. 이 당시는 숫자가 매우 많아 64명이나 되었습니다.


다음은 64명의 명단입니다.



越相國范蠡,齊將 孫臏,趙信平君廉頗,秦將王翦,漢相國平陽侯曹參、左丞相絳侯周勃、前將軍北平太守李廣、大司馬冠軍侯霍去病,後漢太傅高密侯鄧禹、左將軍膠東侯賈復、執金吾雍奴侯寇恂、 伏波將軍新息侯馬援、太尉槐里侯皇甫嵩,魏征東將軍晉陽侯張遼,蜀前將軍漢壽亭侯關羽,吳偏將軍南郡太守周瑜、丞相婁侯陸遜,晉征南大將軍南城侯羊祜、撫軍大將軍襄陽侯 王濬,東晉車騎將軍康樂公謝玄,前燕太宰錄尚書太原王慕容恪,宋司空武陵公檀道濟,梁 太尉永寧郡公王僧辯,北齊尚書右僕射燕郡公慕容紹宗,周大冢宰齊王宇文憲,隋上柱國 新義公韓擒虎、柱國太平公史萬歲,唐右武候大將軍鄂國公尉遲敬德、右武衞大將軍邢國 公蘇定方、右武衞大將軍同中書門下平章事韓國公張仁亶、兵部尚書同中書門下三品中山 公王晙、夏官尚書同中書門下三品朔方大總管王孝傑;齊相管仲、安平君田單,趙馬服君 趙奢、大將軍武安君李牧,漢梁王彭越、太尉條侯周亞夫、大將軍長平侯衞青、後將軍營平 侯趙充國,後漢大司馬廣平侯吳漢、征西大將軍夏陽侯馮異、建威大將軍好畤侯耿弇、太尉 新豐侯段熲,魏太尉鄧艾,蜀車騎將軍西鄉侯張飛,吳武威將軍南郡太守孱陵侯呂蒙、大司 馬荊州牧陸抗,晉鎮南大將軍當陽侯杜預、太尉長沙公陶偘,前秦丞相王猛,後魏太尉北平 王長孫嵩,宋征虜將軍王鎮惡,陳司空南平公吳明徹,北齊右丞相咸陽王斛律光,周太傅大 宗伯燕國公于謹、右僕射鄖國公韋孝寬,隋司空尚書令越國公楊素、右武候大將軍宋國公 賀若弼,唐司空河間郡王孝恭、禮部尚書聞喜公裴行儉、兵部尚書同中書門下三品代國公 郭元振、朔方節度使兼御史大夫張齊丘、太尉中書令尚父汾陽郡王郭子儀





범려, 손빈, 염파, 왕전, 조참, 주발, 이광, 곽거병,


등우, 가복, 구순, 마원, 황보숭, 장료, 관우, 주유


육손, 양호, 왕준, 사현, 모용각, 단도제, 왕승변, 모용소종


우문헌, 한금호, 사만세, 위지경덕, 소정방, 장인단, 왕준, 왕효걸


관중, 전단, 조사, 이목, 팽월, 주아부, 위청, 조충국


오한, 풍이, 경감, 단경, 등애, 장비, 여몽, 육항


두예, 도간, 왕맹, 장손숭, 왕진악, 오명철, 곡율광, 우근


위효관, 양소, 하약필, 이효공, 배행검, 곽원진, 장제구, 곽자의





여담으로 이 명단에 앞서 760년의 10명은 빠져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아예 논외로 보려는 모양입니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당나라에서 명장을 뽑는데, 이세적이나 이정을 따로 뺴놓을리가 없으니까요.




그 후로 이렇게 명단이 나오게 제사를 지내는것은 송나라 시기에 접어들어서 다시 보입니다. 1123년 시기에 72명의 역대 명장들을 선발했습니다.



於是釋奠日, 以張良配享殿上,管仲、孫武、樂毅、諸葛亮、李勣並西向;田穰苴、范蠡、韓信、李靖、郭子 儀,並東向。東廡,白起、孫臏、廉頗、李牧、曹參、周勃、李廣、霍去病、鄧禹、馮異、吳漢、 馬援、皇甫嵩、鄧艾、張飛、呂蒙、陸抗、杜預、陶侃、慕容恪、宇文憲、韋孝寬、楊素、賀若弼、 李孝恭、蘇定方、王孝傑、王晙、李光弼,並西向;西廡,吳起、田單、趙奢、王翦、彭越、周亞 夫、衞青、趙充國、寇恂、賈復、耿弇、段熲、張遼、關羽、周瑜、陸遜、羊祜、王濬、謝玄、王 猛、王鎮惡、斛律光、王僧辯、于謹、吳明徹、韓擒虎、史萬歲、尉遲敬德、裴行儉、張仁亶、郭 元振、李晟,並東向. 凡七十二將云.




선화 5년, 예부에서 말하길 



"무성왕묘에 배향된 이들 중, 본전에 이미 봉작이 있는 이는 덜어내고, 아직 봉작되지 않은 이들 중, 제의 재상 관중을 탁수후로 의봉하고, 대사마 전양저는 황산후, 오의 대장군 손무는 호독후, 월의 재상 범려는 수무후, 연의 장수 악의는 평로후, 촉의 승상 제갈량은 순흥후로 하며, 위의 서하수 오기는 광종백에 봉하고, 제의 장수 손빈은 공종백, 전단은 창평백, 조의 장수 염파는 임성백, 진의 장수 왕전은 진산백, 한의 전장군 이광은 회유백, 오의 장군 주유는 평로백으로 하였습니다."



이에 석전일에, 장량을 전상에 배향하고, 관중, 손무, 악의, 제갈량, 이적을 나란히 서향하게 하고, 전양저, 범려, 한신, 이정, 곽자의는 나란히 동향하게 했다. 동무에는 백기, 손빈, 염파, 이목, 조참, 주발, 이광, 곽거병, 등우, 풍이, 오한, 마원, 황보숭, 등애, 장비, 여몽, 육항, 두예, 도간, 모용각, 우문헌, 위효관, 양소, 하약필, 이효공, 소정방, 왕효걸, 왕준, 이광필을 나란히 서향하게 하고, 서무에는 오기, 전단, 조사, 왕전, 팽월, 주아부, 위청, 조충국, 구순, 가복, 경감, 단경, 장료, 관우, 주유, 육손, 양호, 왕준, 사현, 왕맹, 왕진악, 곡률광, 왕승변, 우근, 오명철, 한금호, 사만세, 위지경덕, 배행검, 장인단, 곽원진, 이성을 나란히 동향하게 했다. 무릇 72명의 장수가 이와 같았다. 






이것이 송나라 시기의 선정입니다. 보면 아시겠지만 장량은 뭔가 약간 격이 다른 논외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아마 상징적인 의미일 겁니다.  



서향 - 관중, 손무, 악의, 제갈량, 이적


동향 - 전양저, 범려, 한신, 이정, 곽자의



동무에서 서향 ─ 백기, 손빈, 염파, 이목, 조참, 주발, 이광, 곽거병, 등우, 풍이, 오한, 마원, 황보숭, 등애, 장비, 여몽, 육항, 두예, 도간, 모용각, 우문헌, 위효관, 양소, 하약필, 이효공, 소정방, 왕효걸, 왕준, 이광필


서무에서 동향 ─ 오기, 전단, 조사, 왕전, 팽월, 주아부, 위청, 조충국, 구순, 가복, 경감, 단경, 장료, 관우, 주유, 육손, 양호, 왕준, 사현, 왕맹, 왕진악, 곡률광, 왕승변, 우근, 오명철, 한금호, 사만세, 위지경덕, 배행검, 장인단, 곽원진, 이성 





이게 급수를 나누는 것 같은데, 일단 언급되는 명단을 봐도 앞과 후가 전혀 차이가 틀리니까요.


즉, 앞의 서향과 동향에 있는 10명은 뒤에 언급되는 인물들보다 대접이 높다고 보면 될겁니다. 오기나 백기는 당나라 시대보다 위상이 추락하고 관중, 범려 등이 올라갔습니다. 







원나라가 중국을 지배한 후, 쿠빌라이 칸이 이전 중국 왕조의 풍습을 흉내내서 1283년에 다시 10명을 선발했습니다.


이때 10명이 전원 언급되지는 않고, 다만 5명의 이름만 남아 있습니다. 그 다섯명은,




손무, 


장량, 


관중, 


악의, 


제갈량




정도입니다. 이름이 언급디지 않은 다섯명에 곽자의나 한신, 백기가 포함되었을 수도 있으나, 우리로선 알 수가 없습니다.





단 한번도 빠짐없이 이름이 언급되는 인물이라면



손무, 


장량, 


악의, 


제갈량 정도가 됩니다. 




당연한 소리지만 원나라 시기까지의 일이라 명, 청 시대의 명장들은 포함이 되지 않았구요. 명나라부터는 무성왕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았습니다.






아,리고 이렇게 뽑으니까 여기에 포함시키기는 좀 그렇지만,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한번 뽑은 적이 있었죠. 역대 명장 이런게 아니라, 당대 지휘관 중에 뽑았습니다. 바로 10대 원수 말입니다.




주더, 펑더화이, 린뱌오, 유백승, 하룡, 진의, 나영환, 서향전, 섭영진, 엽검영 이렇게 말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위치상 보면 주더는 거의 홍군 아버지 격으로, 신해혁명 때부터의 엄청난 활동 커리어에 당초에는 마오랑 급 수 차이가 난다고 보기도 힘든 수준이니 다른 사람하고 같이 엮이는건 굴욕 수준인듯 한데 



그냥 공적으로만 봐도 주더, 펑더화이, 린뱌오, 유백승, 하룡, 진의 이 정도까진 네임맬류로 어떻게 한다 해도



다른 사람들은 같이 엮기에는 솔직히 쩌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니





마오가 일부러 주더를 엿 맥일라고 이러지 않았나 의심이 들기도 하네요. 

 

출처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mbsIdx=1538354&cpage=&mbsW=&select=&opt=&key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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