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님 고향은 광주. 나에게는, 전남쪽 김치는 뭔가 화려한 맛이 난다는(?) 이미지가 있다. 최소한 초등학교 급식 반찬으로 나오는 중국산 김치맛보단 진하고 깊은 맛이다. 그렇다고 타지역껄 많이 먹어본것도 아니지만^^;;; 암튼, 김치 속 내용물도 아낌없이 때려박아넣는 느낌.
근데 최근 2년간 무슨 재료가 빠지고 간소화됐다. 맛있긴 한데... 비어있는, 좀 일반적인 맛이 되어버렸다
서운함도 모르고 살다가 모 고깃집에서, 그리고 모 칼국수집에서 예전 김치 맛과 비슷한걸 찾고 감동해서 그집 김치를 싹싹 다 비운적이 있다.
어제 어머니가 배추를 절이실 때 여쭈었다.
우리집 최근 김장에 재료 뭐 하나 빠지지 않았나요?
-멸치젓.
엄니 그게 빠지니까 맛이 들해요. 입에 짝짝 달라붙고 진득하고 깊은 맛이 안나요.
-외할아버지가 올해 만들어서 보내주셨는데 한번 써보자.
그리고 오늘의 김장.
외조부님께서 보내셨다는 스티로폼 택배박스는 박스테이프조차 뜯지 않은 것이었으나 상자째 베란다에서 나와 거실로 왔을때부터 위용이 장대했다. 아주, 후각적으로 코를 팍팍 찔렀다. 테이프를 뜯고 나는 잠시 후각을 상실했다...
나는 재빨리 현관, 창문을 다 열고 방문은 닫아걸었다. 방에 이 내음새가 배면 안된다.
그렇다. 어릴때 어머니가 김장재료 넣으시는것중에 뭔가 독극물 향기나는 어두운 색의 액체가 있었는데 저것이로구나... 범인은 멸치젓이었다.
청양에서 오신 비싼 고춧가루느님 새우젓 멸치젓 진간장 생강 마늘 청양고추
를 찹쌀죽(?)에 아낌없이 투하 새우젓의 새우와 눈이 마주칠새라 잽싸게 섞어버린다.
속재료와 섞고있는데 냄새부터 환장한다. 자꾸 침을 삼키게 된다. 그리고 무채와 풀띠기들(...) 투하. 김치 속 양념을 다 섞은 다음, 김장매트 위로 배추를 싹 쏟아버린다. 슥슥 무쳐서 바로 김치통으로 보내면 된다.
배추에 붉은 옷을 입히고 있노라니 어머니께서 배춧잎 하나 뜯어서 속 넣고 돌돌 말아서 직접 먹여주신다. 연례행사다. 막내 딸래미 최우선 시식.
맛있다. 진짜 맛있다. 이게 바로 우리집 맛이여.
엄니 김치는 항상 100점인데 오늘은 500점이여. 전남의 향이 나는 깊은 맛이 입안에 여운을 남긴다. 밥도둑이 따로 없다. 아니 밥도 필요없고 김치만 계속 먹어도 되겠다.
두번세번 더 주세요 하고 보채는데 말만한 딸이 지가 해서 먹진 않고 조르는데도 엄니는 꾸짖음 한번 없이 계속 주신다. 이래서 천고마비인가 보다.
김치통 하나에는 굴을 넣곤 했는데 올해는 굴을 빼기로 했다. 상할지도 모르고, 가족들이 비린걸 크게 좋아하지도않고. 갓김치까지 끝냈는데도 김치 속이 어느정도 남아서 딸은 또 보채본다.
엄마. 요즘 파 비싸요오?
-한단에 천원 이천원 하지.대신 좀 작을거야
그럼 얘네로 파김치 하면 안될까요오오오
-내일 쫌 사와서 하지 뭐.
가을바람보다 더 쿨하셔서 속으로 만세를 외친다.
해외로 공부하러 간 형제가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김치통 닦고 옮기고 하는 모습이 없으니 영 허하다. 겨울엔 온댔으니 김나는 뜨거운 밥에 목살 넣은 맛나는 김치찌개 같이 먹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