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부천으로 출퇴근하는 직딩입니다. 어제 날씨 정말 추웠죠.. 아침에 생각없이 와이셔츠에 마이 한장만 걸치고 출근한 탓에, 막상 퇴근하고 서울광장을 향하면서 '이거 가봐야 얼마 못버티겠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일단 무작정 서울광장을 향해 지하철을 탔습니다.
FTA가 타결된 22일 당일에는 무작정 국회로 갔습니다. "FTA가 타결되었답니다." "날치기로 통과해버렸어요" 직장내에선 저의 이런 목소리에 공감해주는 분이 없어서, 친한 청경 동생만 데리고 갔습니다. 도착하니 국회앞 횡단보도에서부터 전경병력이 삼엄하게 에워싸고 있어 조금만 가까이 가도 제지당할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일단 길을 건너 국회를 한바퀴 빙 돌았습니다. 국회앞에선 상황이 발생하지 않은 탓에, 전경들은 국회 정문이나 후문에 모여 앉은 주력 병력을 제외하곤 전경버스를 들락거리며 담배를 태우며 시간을 때우는 분위기였습니다. 저희가 지나가면 길도 잘 비켜줬구요. 그렇게 전경 외엔 아무도 만나지 못한 채 국회를 한바퀴 돌고 나서, 같이 간 동생과 술한잔 하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어제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보고 인터넷 기사들을 살펴 보니, 그저께의 상황이 저희가 겪은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살수차와 전경에 대치하여 많은 고초를 겪으셨더군요. 오유와 페이스북, 나꼼수 공지들을 보면서 오늘은 서울광장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만이 머리 속에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7시 좀 넘어 서울광장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야당들과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의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었고, 서울 광장 한켠을 잘라먹은 공사 자재 울타리를 둘러싸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더군요. 시설은 정말 열악했습니다. 제가 자리잡은 곳이 대충 전체 대열의 중간정도였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청하는 조용한 분위기였는데도 불구하고 조그마한 무대에 올라오신분이 누구인지, 무슨말씀을 하시는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분인지도 잘 안보였지만, 다음엔 서울광장을 가득 채울만큼 더 좋은 스피커를 준비하겠다고 하셔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온 부분도 기억납니다. 이정희 의원의 말씀은 힘이 있어서인지 거의 들을 수 있었구요.. ㅎㅎ 사람들이 이정희! 이정희를 연호할 때가 저에겐 제일 신나는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옆에 여성분 촛불이 꺼져서 몹쓸 흡연자의 비장의 아이템 라이터를 꺼내어 불을 붙여드리는 훈훈한 장면도 있었습니다만 생기지는 않았습니다. ^^;;
한시간정도 지나자 엉덩이가 시려 앉아있지도 못하고 구석으로 나와 걸어다녔습니다. 전경버스가 서울광장을 에워싸고 있고, 전경 병력들이 전후방으로 배치되어 있는 게 보였지만 그때까지도 별다른 긴장감은 서로에게 감돌지 않았습니다. FTA당일 국회에서 봤던 전경들처럼 보초만 서다가 돌아가겠구나 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렇게 걸어다녀도 몸이 오들오들 떨리고 추위가 가시지 않아 지하철역으로 내려와 다시 부천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흔한 잠바나 코트 하나 걸치고 가지 않은 제가 멍청한 거죠.
돌아오는 길에 페이스북을 검색해보니 친구가 동영상을 하나 찍어 올렸더군요. 틀어보니 살수차가 물을 뿌리고 비명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소름끼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게 오늘 광경이야? 하고 물어보니, 그렇답니다. 천하에 몹쓸놈들이랍니다. 무력감에, 패배감에 젖어 이건 아니라고 무엇이라도 해 보려고, 작은 희망의 불씨라도 확인하고 싶어 나온 그 순수한 사람들, 어린 학생들을 에워싸놓고 물을 뿌렸답니다. 성인 남자도 버티지 못해 도망친 그 추운 날씨에.. ㅎㅎ 미치겠더군요.
다음 참석때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해 볼 생각입니다. 이미 비준까지 끝난 마당에, 이렇게 모이는 건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고 가까운 사람들조차 우리를 별난 사람 취급하지만.. 아직 저는 제가 태어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봅니다. 바로 당신이 그렇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