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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그리고 역사.
게시물ID : history_219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푸쉬킨
추천 : 6
조회수 : 64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07/10 22:26:51


역사적으로 인간은 동물 군에 군집 생활을 하는 하나의 개체이며 

집단 생활에 맞게 언어, 정서적 교감 능력이 발당한 동물입니다. 

 그런 인간이 군집 생활을 시작하며 맺게 된 남녀 관계는 

가장 기본 적인 성욕의 충족을 통한 종의 보존 목적도 있지만 

인간이란 종이 지속 적으로 유지되는 또 다른 안정장치 

사회생활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시작했습니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군집생활을 시작한 인간이란 종이 

성적동반자 관계와 함께 자녀의 양육과 같은 일상생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비공식적인 협력관계가 발전 된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집단내에서 남녀로 이뤄진 협력관계가 

이방인과 이방인의 만남을 신뢰의 관계로 정립하는 수단이 되면서 

이는 이들이 살아가는 공동체 내에서 

결혼이라는 무리 내 공식화의 과정에 이르게 됩니다.

무리 전체가 증인이 되는 남녀의 협력관계 계약은 

당사자를 중심으로 주변인들을 친인척 관계로 맺게 하고 

이런 안정적인 동질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인하여 

집단의 규모는 보다 확장하고 발전하게 되죠 
 
인류는 인간 상호관 협력을 공식화하는 방식 결혼이란 제도를 도입함으로 써 

보다 안정적인 군집환경을 조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사상 이런 집단의 출현을 씨족사회라 부르죠 

씨족사회는 다른 씨족 사회와 만나 부족사회를 이루고 

부족사회는 다른 부족사회를 만나 초기 국가를 형성함은 역사에 배우는 과정입니다.


역사서의 다양한 기록에서 보듯 

한반도 역사에서 단군신화. 삼국 건국설화, 고려 건국설화 등등 

거의 대부분의 국가형성 설화는 결혼이라는 상징이 반드시 들어가게 되는 이유죠 


하지만 청동기 문명과 함께 시작된 사유재산의 축적과 계급사회의 출현은 

결혼이란 제도를 또 한번 바꾸게 합니다.  

힘을 축적한 특정 친족집단이 주어진 땅과 재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게 됨에 따라 

권력과 부를 가진 혈족은 그렇지 않은 혈족과 협력관계를 거부하게 되고 

집단간의 관계는 협력에 의한 확장이 아닌 지배-피지배 관계로 정치적 확장이 성립함에 따라 

결혼이란 제도는 신뢰관계를 확장하는 네트워크 방식이 아닌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당사자가 아닌 혈족의 판단으로 권력과 재산을 가진 이들만 혼인관계를 형성하는 결혼관행이나   
 
외부 혈족을 배제한 동일한 혈족간의 혼인만 허락하는 족내혼의 관계 등이 그것으로 

전자는 로마나 중국과 같이 여타 역사상 나타난 국가들 모두에서 나타난 현상이고 

후자는 이집트나 고려, 일본과 같은 국가에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결혼은 사유재산과 권력 지위를 혈족에게 승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면서 

결혼은 당사자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가족의 선택사항이 되게 되는 것이고 

이질적인 혈족이 사유재산의 승계에 개입하면 안됨으로 

여성의 혼외정사의 통제와 정절의 강요와 같은 사회관행과 

적자, 서자를 차별하는 제도가 나타나게 됩니다.

고대 불평등 사회에서 사유재산의 보호를 위해 

아내가 “타인의 씨를 너의 밭에 뿌리지 않도록” 주의 깊게 감시하고 훈계하는 

법과 도덕의 관념이 발생하게 된 이유죠 

기독교의 구약성서에서 "처녀성을 지키지 못 한 여성을 돌로 쳐 죽이라" 한 것이나 

동아시아 유교국가에서 정절의 도덕을 강요하고 열녀문을 세우며 칭송한 것도 같은 차원입니다. 


더불어 보다 확장된 국가와 보다 발전된 농경사회의 정착은 

정치적 -경제적인 이유로 

지배층 뿐만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계층에서 여성의 지위가 추락하게 됩니다. 


고대-중세 국가형성과 함께 빈번하게 발생한 전쟁은 

전쟁에 참여 할 수 있는 남성의 역할이 커짐에 따라 

제공되는 인력 중요성에서 노동인력의 중심은 여성이 아닌 남성이 되었고 


농경사회의 정착과 쟁기, 우마를 이용한 농사방법 발전함에 따라 

과거 채집활동 기초적인 농법을 통해 노동력 제공의 의미를 함께 지녔던

여성노동력은 발전된 농업국가에서는 그 가치가 상실 됨에 따라 


결혼을 통한 1. 성욕해소와 종족의 번식 2. 생존에서 협력관계 구축이란 의미는 

1번 항목만 남게 됩니다. 

따라서 결혼시 신부값을 지불하던 관행은 심화된 농경사회일 수록 

여성이 지참금을 준비해 결혼하게 되는 관행으로 역전이 되며 

불필요한 노동력의 제거라는 명분으로 여아살해 현상도 나타나게 됩니다.    


농경사회를 유지한 고대-중세 

서양과 동양의 국가는 이런 사유재산에 기반한 불평등한 계급관계가 

보편적인 사회시스템으로 구축됨으로 인하여 

안정적인 사회의 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다양한 제도, 법, 종교, 도덕 등을 도입하였고  


강제성을 띄는 법과 제도 도 영향을 주었지만 

보다 직관적으로 개개인에 도덕성에 영향을 주는 종교는

불평등한 계급사회를 유지하는 도구로 크게 활용되며  

안정적인 사회의 유지라는 명분으로 

대다수의 삶에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를 통해 강요하는 결혼제도가 대표적이었고  
(출산의 장려, 처녀성의 강조, 가족제도에 반하는 행위 금지 : 간음, 동성애 등) 

동아시아의 유교나, 이슬람 역시 (처녀의 정절 중시, 출산의 장려, 부계 중심의 도덕률) 등

종교는 이런 부계중심의 불평등한 결혼제도를 민중들에게 교육하고 보급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결혼제도, 결혼을 당사자의 관계가 아닌 

사회 전체의 계약으로 본 시각이 그런 예이죠 

“하느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이런 계급중심의 중세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한 결혼제도가 종말을 고하게 된 것은 

유럽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유럽에서 발생한 산업혁명 인류역사에서 그동안 경제적 생산방식을 책임 진 농경이 

공장제 생산으로 중요성이 변화하게 됨에 따라 

사회의 구조 역시 다르게 변화 한 것이죠 


과거 가족제도에서 농경을 위해 집단적으로 생활하던 삶의 양식은 

임금노동이란 것이 탄생하게 되고 시장경제가 점차 확산 됨에 따라 

가족의 속박에서 벗어난 계급이 증가하게 되었고 


더불어 귀족과 같이 혈족의 상속을 바탕으로 재산을 얻은 계급이 아닌 

시장경제를 통해 스스로 획득한 부를 바탕으로 삶을 영휘하게 된 

중간계급,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은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통합 사회 

즉 특정 절대진리를 중심으로 순응하며 세계를 이해 하는 사고의 영역 역시 변화시키며 

개개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새로운 정치, 사회, 철학을 발생시키게 됩니다 

종교가 아닌 이성을 중심으로 세계를 이해 하여야 하며 

사회적 관계는 무력, 종교 등이 아닌 이상과 정의를 바탕으로 새롭게 구축되어야 한다는 

계몽주의의 출현이 그것입니다. 


계몽주의 시대 나타난 

고전주의, 이성을 중시하며 종교가 아닌 인간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관과 질서를 재구축하는 시도와 

낭만주의, 인간의 심성을 중심으로 집단이 아닌 인간 개개인 감정과 심성이 곧 가장 큰 가치라는 의미를 부여한 

이런 문예사조 등장 및 의식의 확산은 


결혼 제도 역시 종교과 가족이 개입하여 재산, 지위를 위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낭만주의 정신에서 보듯 인간 개인의 감성, 행복이 목적이 되며 

결혼은 개인의 감성을 중심으로 행복추구를 위한 선택으로 결정된다는 주장이 나타나게 됩니다. 

따라서 이 시기를 거치며 결혼은 교회나 사회의 계약 영역이 아닌 개인적인 계약의 영역이 됩니다.    


흔히 말하는 신데렐라 동화나 낭만주의 문학에서 보이는 사랑을 위해 

지위와 재산을 포기하는 고귀한 주인공의 모습은 낭만주의 사조에서 흔히 나타나는 

개인의 감정과 선택이 그 무엇보다 우선한다는 새로운 관념의 표출이고 

연극과 문학이란 매체는 이런 새로룬 문화를 민중에게 새롭게 교육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는 산업사회가 시작하며 유럽에서 생산 방식이 변화했고 

이에 맞춰 새로운 결혼제도와 남녀관계가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과거 가족단위 농장에서 농업이란 장기적이고 협력적인 노동력을 제공하며 참여한 경제양식은 

공장에서 임금노동이란 형태로 일단위로 장시간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경제양식으로 변화하였고 

농경사회에서 필요한 노동의 동반자가 아닌 영혼의 동반자 개념으로 부부관계가 필요해 졌기 때문이죠 

더불어 배우자는 임금노동 환경에서 언제든 결합이 가능한 형태여야 하며 이는 개인의 선택의 영역입니다 


계몽주의 사회에서 '연애라는 행위'는 성욕의 해소와 배우자의 선택이란 영역에서 

과거 종교가 농경사회에 부여한 '하늘이 정해준 짝' 이란 도덕률 처럼 

낭만주의 사조 이후 문학, 연극으로 교육된 개인의 감정이 최상의 가치란 

'사랑'이란 개인에 감정에 기반한 도덕률을 배우자 선택의 과정에 제공하는 일종의 합리화 양식입니다. 


이런 결혼제도의 탄생은 또 다른 산업혁명기 근대적 가족제도의 탄생을 가져 오게 합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의 결혼제도와 산업혁명 이후 결혼제도는 

전통적으로 존중 되어 온 남성의 가부장적 권위와 개인의 존중이란 새로운 가치관이 충돌하게 하였고 

양자는 전통적인 결혼관 "남성은 여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라는 관념이 

임금 노동시장에도 개입하게 되었죠 

임금노동 시장에서는 가족단위 노동력이 농경생활 처럼 삶과 연계 한 것이 아니라 

노동 행위는 가정을 떠나 특정 장소에서 시간 단위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녀의 양육과 가정의 삶을 책임지는 노동력이 필요하고 

이는 배우자인 여성이 담당하게 되는 것이죠. 

근대 시기 산업혁명기 사회에서 이상적인 가정의 행태는 

남편이 외부에서 일을 하며 여성이 순종적으로 가정을 돌보는 형태이며

또한 남자는 아내가 살림에 전념하게 하는 것이 사회적 성공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었죠  

대부분의 문학작품에서 여성의 모습은 순종적이고 상냥하며 가정을 돌보는 여성으로 그려지고 

근대 시기 이런 여성상을 '레이디' 숙녀라고 표현하죠 


하지만 당연히 이는 현실과 괴리가 있는 이상향입니다. 

일부 중산층 계급을 제외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남녀 모두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생계가 유지되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반대로 이런 상황은 남성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이상향을 위해 

남성 가장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함으로 결코 임금노동을 그만둘 수 없다는 명제로 작용하게 되어 

19세기 노동시장에서 남성 임금노동자들이 보다 순응적이고 근면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대현상도 발생하게 됩니다. 

산업혁명 이후 수십년간 자리잡은 가부장제 환상에 기반한 

남성은 가족을 위해 노동을 지속해야 한다는 관념은 

노동운동가들로 하여금 최저임금이란 개념을 정립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남성 가장이 한 가정을 이끌기 위해 최소한 필요한 임금)   

마르크스와 같은 사회주의자의 경우 19세기 여자와 어린이도 노동에 시달리는 참흑한 환경을 

비판함으로써 남성 노동자들의 분노와 단결을 이끌며 노동자를 중심으로 

공산주의 혁명을 촉발시키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20세기 초반까지 지속 된 전통결혼과 근대결혼의 결합 형태의 결혼 제도는 

20세기 중반을 넘으며 또 한번 변화하게 됩니다.


인권의 보편적 보장이란 관념의 확산으로 여성의 인권향상 운동도 늘어나게 되고 

과거 공장제 노동 중심의 산업이 서비스 중심의 산업으로 변화함에 따라 

육체적 노동중심의 남성 노동시장이 아닌 여성의 노동력 참여도 그 중요성이 높아지게 됨에 따라 


결혼이란 이름으로 물질적 협력 관계를 맺어야 할 이유가 점차 희박해지는 환경이 조성 됩니다 

20세기 서구가 1970년대를 기점으로 이혼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사례가 그러하고 

개도국 역시 정보화 사회를 구축하며 이혼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사례가 그러합니다.


기대수명의 연장도 있지만 경제생할을 유지하는데 결혼이란 행위가 필요 없어진 것도 원인입니다. 

때문에 남녀관계의 경우 성적인 동반자로써의 관계, 정서적 동반자로써 역할이 중요해 지며 

자유연애 동거, 동성애 커플 등과 같은 다양한 결혼형태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환경이 조성 됩니다.


반대로 결혼이란 제도의 이러한 변화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했는데 

20세기 중반 이후 주요 선진국에서 문제가 된 결혼의 측면인 출산률이 감소하게 되죠 


이는 결혼이란 기존의 관계 역시 새롭게 변화할 것을 요구하게 됩니다. 

 
유럽 주요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결혼과 출산의 분리 현상이 그렇습니다.

미혼모의 지원을 통해 배우자가 없는 출산을 국가차원에서 보호한다던지 

입양활동의 지원을 통해 부모가 없는 출산과 출산이 불가능한 부부를 연결하는 행위 등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그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사회의 협력관계도 다양하며 변수도 많아 

일정한 예측이 힘들지만 애초 인간이 무리집단의 안정과 확장을 지속하기 위해 

당사자간 협력관계를 결혼이란 제도로 공식화하며 활용해 왔다면  

향후 사회의 안정과 확장을 위하여 미래 어느 순간 결혼제도가 오히려 방해가 되는 때가 되면  

결혼의 공식화가 폐기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현재는 이런 현상 등이 과도기이고 

변화의 방향은 모를 뿐이죠 

 
한국의 경우 참으로 특이한 국가인데 

농경시대 유교적 가족주의 결혼제도도 이어지고 

기독교의 유입 이후 서구 기독교가치관을 기반으로 한 보수적인 결혼제도 역시 존재하고 

영화 국제시장에서 보듯 유럽 산업혁명기 남자가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관념도 이어지며 

선진국에서 나타난 결혼 기피현상도 나타나는 중입니다 
(물론 한국은 그것이 자발적이 아닌 경제환경 열악으로 인한 강제적인 요인이 크죠)



한국에서 결혼제도는 무엇에 익숙해지느냐 차이일 뿐이 아닌가 하네요 


* 추가 

특정 제도는 만들어 낸다고 곧 사회에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확산되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그 동의는 이론적 교육이 아니라 직관적인 수용과  익숙함(?)을 통해 달성되죠 

원시시대 남녀가 함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결혼은 기본적인 성욕의 충족이 원동력이었을 것이고 

농경기 가부장제에 입각한 상속, 여성예속의 결혼은 죽음의 공포와 종교라는 신앙이 수용과 익숙함을 담당했고 

산업혁명기 사랑이란 감정에 기반한 결혼은 문학작품과 연극, 음악 등 예술작품이 담당했고 

현대 다양한 인간 상호협력에(편부,모가정, 입양가정, 동성애가정, 동거) 기반한 결혼은 

미디어, 인터넷이란 매체가 담당하는 중이죠 


과거와 현재의 차이점이라면 그 익숙함이라는 것을 이전에는 일방적 수용으로 교육했다면 
  
현대는 매체의 발달로 그것이 애초 존재함을 인식함으로써 이해하고 익숙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동성애가 대표적이죠) 

때문에 전통적인 교육과 자발적 인식사이에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전통적인 결혼관 (가정유지, 출산)에 위협이 되는 간통죄를 처벌한 사례나 

사랑이 중요하다는 결혼관에 위협이 되는 성욕을 위한 만남, 정략결혼 등을 부정적으로 보는 풍조나 

결혼제도 밖에 존재 해온 다양한 삶의 형태 동성애, 독신주의 등을 불안한 시각으로 보는 것 등 

교육받은 관념과 새롭게 존재를 인식한 것이 충돌하는 사례들이죠. 




역사적으로 보면 그냥 존재하는 현상 들이고 

특정 현상을 기준으로 다른 현상을 옳고 나쁘다 규정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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