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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0년~1556년사이, 신성로마제국(+스페인, 네덜란드)의 카를 5세는 제국 정책의 수행을 위해 총 3801만 117 두카트의 채무를 상환해야 했습니다(원금+이자). 그리고 이는 그 시기동안 신대륙에서 왕의 몫으로 세비야에 들어온 금과 은보다 총 200만 두카트 이상 많은 양이었습니다. 이 채무 가운데 3310만 두카트는 외국 상인들에게 대출 받은 것이었고요(독일, 플랑드르, 이탈리아-특히 제노바인들-) 즉 스페인에 도착한 황제몫의 금과 은의 대부분이 바로 외국으로 유출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신대륙에서 발견한 귀금속의 1/5는 왕의 몫이었습니다. 물론 신대륙 모험가와 광산주들이 100% 정확하게 세무신고를 했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고) 이런 채무 때문에 스페인은 막대한 신대륙의 부를 착취했으면서도 그 부를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제국 정책의 수행을 위해 들어간 막대한 비용이 신대륙의 금과 은보다 상회했기 때문에 스페인은 역설적으로 이전보다 더한 조세부담을 겪어야 했죠. 결국 카를로스 5세가 퇴위하고 펠리페 2세가 스페인 왕위를 계승하자 파산을 선언해버리게 되었죠(....) 한편 민간으로 스며들어간 신대륙의 황금은 스페인에 막대한 인플레이션을 일으켰고, 결국 원래 주변국에 비해 그리 충실하지 못했던 스페인의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국제적인 가격경쟁력을 상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저지대 국가들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 되었죠. 물론 스페인 사람들이 멍청해서 그런건 아니고, 이들도 1550년대 이후론 본격적으로 이런 현상을 직시하고 그에 대한 분석에 매진했고, 심지어 정확한 진단을 내린 이들도 많았고, 심지어 그럴듯한 대처법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이걸 실행하기란 어려웠죠. 17세기 국제 무역의 중심이 된 네덜란드는 16세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암스테르담 은행을 설립, 귀금속의 '저수지' 역할을 합니다. 막대한 귀금속을 여과없이 그대로 시장에 내놓은 결과 '금의 저주'를 겪게 된 스페인 사람들의 희생 덕분이죠 아무튼 결론은 대출은 계획적으로(....) |
출처 | http://m.cafe.daum.net/Europa/3L0P/2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