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테만 해전을 끝으로 일본군은 더 이상 석유를 얻을 통로를 얻지 못하게 되고 남은 비축분으로 전쟁을 이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전쟁은 승리가 목적이 아닌 적에게 좀더 끔찍한 공포감을 조성하여 그들의 전쟁의지라도 꺽어보자는 식으로 방식을 선회하게 됩니다. 사실 약소국이 강대국과 전쟁을 하게 될때 주로 구사하는 전법은 자신들을 공격한다면 너희 역시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며 우린 절대로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항복하지 않겠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을 통해 이후 평화협상에서 조금이나마 자치권이라도 얻던가 보상규모라도 줄이던가 하는 바램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죠. 전쟁이란 것은 강대국이라 해서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며, 결국 엄청난 리스크를 동반하는 행동이니까요. 전쟁이 장기화된다는 그 자체가 이미 엄청난 국력을 빨리는 것이기 때문에 종전이 빨리오면 올수록 좋은 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군은 전쟁의 방향을 바꿉니다. 더욱 처절하고 비참하게. 그리고 미국은 그 지옥도를 보기 시작했으니, 바로 이오지마에서 그 시발탄이 쏘아올려집니다. 이오지마는 B-29가 본토를 공습할때 요격시도를 해볼만하고 또 경보를 본토로 전파하는 역할도 할 수 있는 섬이었습니다. 미국은 사실 그러한 문제는 별 관계 없이, B-29가 도쿄 공습을 마치고 착륙할 시 비상착륙을 할 수도 있는 곳으로 안성맞춤이기에 이오지마를 공격하게 되죠.
사실 애초에 이 섬을 점령하는데 미군은 오랜 시간을 소요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더욱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을지도 모릅니다만, 이오지마에 부임한 쿠리바야시 타다미치 장군은 결코 미군을 쉽게 보내줄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해안선 방어를 포기해버리는 초강수를 두고 이오지마를 완전히 요새화된 섬으로 구축하기 위해 온 사방에 동굴을 뚫어놓기 시작합니다.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의 주인공 쿠리바야시 타다미치 장군, 적어도 가족에게만큼은 따뜻했던 남자인 것 같다.
제가 이전에 맥아더를 디스할때 해안선에 멍청하게 올인하다가 전멸했다! 라는 식으로 디스한 적이 있지만 사실 맥아더가 틀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해안에 상륙하는 적은 이때가 가장 취약한 상황이란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예로부터 도하하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 강을 방어선으로 짜거나 해안가에 요새를 짓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전략의 기본이었죠. 그러나 맥아더든 이오지마 이전까지의 일본군이던 한가지 간과한 점은 바다의 상태입니다. 적의 상륙부대가 그냥 아무 것도 없이 단신으로 돌격해온다면 당연히 해안가에서 그들이 배에서 내릴때 무자비하게 때리는 것이 정답이지만, 지금은 2차대전 시기입니다. 항공기들이 미친듯이 폭격을 가하고 전함의 함포들이 불을 뿜어 쑥을 제조하는 시대란 것이죠. 적의 해군이 강성하지 않다면 해안선을 지킨다는 발상은 정답이겠으나, 적이 상륙한다는 그 자체가 이미 아군 해군이 당했다는 것이오, 적의 해군이 우리 해안을 점령했다는 것인데 해안가에 있는 육군은 당연히 적 함포의 표적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뭐 성능이 아주 우월한 해안포와 대공포로 무장했다면 모를까요.
여튼 쿠리바야시는 동굴로 연결한 섬 안에서 아주 철저하게 농성을 합니다. 쿠리바야시가 자신의 병력들에게 주문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반자이 돌격 금지. 이 것 하나만으로도 그의 전략은 해병대의 정신을 쏙 빼놓았는데, 이제까지 미 해병대가 경험한 일본군은 매우 심플했습니다. 대충 다 때려부순 해안가에 상륙해서 적당히 진을 치고 밤까지 기다리면 새벽 야습으로 어김없이 '덴 노 헤 이 카 반-자-이--!!!!!!'하면서 달려오는 정신병자들을 기관총과 박격포로 싸그리 갈아버린 뒤 유유히 남은 잔당들을 사냥하는 것으로 끝을 마쳤기 때문입니다.
사실 반자이 돌격은 과달카날에서 미군을 놀라게 했지만 이후엔 오히려 편리하게 만드는 요인이 됬는데, 반자이 돌격의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니라서 뭐라 설명할 가치도 없었지만, 초반엔 꼴에 기관총으로 엄호라도 해줬지 나중엔 기관총도 없으니 그 쓰레기 같은 아라사카 소총을 들고 지들끼리 모여서 집단 기도를 하다가 광언까지 내지르며 덴노 헤이카 반자이!!하면서 온 사방에 소리치니, 이건 뭐 기습도 아니고 그냥 뭣도 아닌 븅신같은 짓거리였습니다. 문젠 이걸 일선 지휘관들이 선호했다는게 가장 큰 문제겠지요.
니코니코니!!! 영국군:?? 뭐래는겨
여튼 확실한건 반자이 돌격은 그냥 연합군 병사들에게 있어서는 그냥 조롱거리였고 저~언혀 쫄리지도 않았던 건 사실입니다. 애초에 신장도 훨씬 작은 애들이 니코니코니!! 아니지 반자이! 하면서 달려온다 해서 딱히 겁먹을 이유도 없고 백병전을 해도 그냥 패 죽이면 그만이었으니까요. 일설엔 미해병대 병사가 달려온 일본군 장교의 일본도를 손으로 잡고 그의 칼을 뺏어서 난도질 해버렸다는 이야기만 봐도 그냥 반자이는 말 그대로 무가치함. 그 이상 그 이하로 표현할 방법이 없는 전술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반자이 돌격질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중일전쟁만 해도 군벌들이 오합지졸마냥 모여서 무장수준도 형편없는 중국군에겐 반자이 돌격이 제법 잘 통했고, 그 시대 그 대가리가 조~오금도 발전하지 못한 일본군이 미군을 상대하러 온 것이니..
쪽바리들아! 돌격은 이렇게 하는거다!!! 반자이 컨셉으로 찍은 미군 해병대 사진 매우 씐나보인다.
여튼 아주 놀랍게도 반자이 돌격만 안했는데 일본군의 저항은 아주 독하게 변합니다. 얼마나 독한지 최초로 미군의 사상자가 일본군 사상자보다 많게 나옵니다. 물론 '사상자'기준이지 '사망'은 일본군 21000명 중 생존자는 단 200명 뿐이었지만요. 동굴 속에 처박혀 게릴라 전을 벌이는 일본군을 미군은 정말 진짜 독한놈들을 상대하는 기분으로 싸워야했고 동굴에 처박힌 그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태평양의 타이거 M4셔먼의 화염방사기 장착버전이 투입되고 보병들에게도 화염방사기가 널리 보급되어 동굴마다 싸그리 불태워버리며 전진해야만 했습니다.
미군은 이오지마를 일주일이면 점령할 것이라 믿고 왔으나, 이미 이오지마에서만 미군은 한달의 시간을 소모합니다. 이런 지옥도가 두번 다시 나오지 않길 기도해야만 했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지옥도는 끝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수리바치산 정상에 깃발을 꽂은 미 해병대원들, 원랜 더 작은 깃발을 꽂았다가 대대장이 그건 대대 금고에 두고 더 큰 성조기를 올리고 있는 것인데 이 것이 종군기자에게 찍혀 이들은 일약 대스타가 되지만... 그들의 마지막은 허무했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영화 아버지의 깃발을 보자. 이오지마 전투를 미군의 시각과 일본군의 시각으로 조명한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두 작품 다 전쟁의 허무함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는 명작이다.
이오지마 다음으로 미군의 칼날이 향한 오키나와에서도 똑같은 양상이 계속됩니다. 일본군은 오키나와 방어작전의 일환으로 기쿠스이 작전을 전개하는데 별거 없습니다. 다같이 카미카제하러 가는거죠. 약 1900여기의 항공기가 카미카제를 시작합니다. 이때 미군은 일본군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닳고 영국군에게까지 지원을 요청한 상황이었지만 이 미친 자살돌격에 미군도 상당한 피해와 정신적인 충격을 받게 됩니다. 이때 일본군이 입은 피해는 총 1100여기로 그들 대다수가 자살돌격으로 인한 희생자였고 여기엔 조선인도 최소 10명 이상이 포함된 숫자였습니다.
그리고 이때 일본군은 정신줄을 놔버린 나머지 전함마저도 옥쇄돌격을 시켜 개전 초부터 일본군의 희망이자 한방이라 대접받던 야마토는 미군을 향해 돌격하다가 적의 배는 만나보지도 못한 체 항공기들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하다가 최후를 맞이 합니다. 이 옥쇄돌격의 이유도 참 어이가 없는데,
'병력을 남긴 체 패전한다면 연합함대의 체면이 어찌되겠는가?'
이런 어처구니가 없는 이유로 야마토는 스스로 죽으러 갔습니다. 히로히토가 해군이 허구헌날 항공기만 카미카제 시키고 잇으니'야 니들은 그거 전함 만들어서 써먹지도 않냐?'하고 찔러대기도 했고요.
오키나와에서 양상은 더욱 졸렬하게 돌변했는데, 그들은 민간인을 옥쇄시킵니다.
오키나와에 거주하던 민간인들을 일본군에 의해 부비트랩 대우를 당하거나 자살을 종용당했다. 오키나와에 거주하던 민간인 30만명 중 10만명이 죽었다. 10만명이.
일본군은 정신이 나간 수준이 아니라 그냥 미쳤던 것이죠. 그들에게 전쟁이란 천황을 위한 집단 자살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보호해야할 민간인이란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오키나와 전투엔 1500명의 학도병들이 끌려왔었고 오키나와 주민들오 약 4만명 가량이 반강제로 징집되어 싸워야만 했으며 여학생들에게도 예외없이 간호부대로 징집되어 싸움을 강요했습니다. 이 미친 광기에 미군은 정말 말그대로 '질려'버립니다.
이는 사실 일본군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래 니들 아주 질려버리지? 우리랑 전쟁하기가 지치지? 힘들잖아? 적당히 항복 받아줘 우리 조건 좀 내세우게 해줘 부탁이야. 이게 이들이 이런 미친 짓을 하게 만든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과 달리 미국이 생각한 것은
'일본인들의 세뇌는 심각하다. 그들이 세뇌로부터 벗어나고 우리에게 굴복하기 위해서는 더 큰 충격이 필요하다.'
예, 그들은 일본을 항복시키기 위해서라면 정말로 싸그리 죽여버릴 각오도 하고 있었을 겁니다. 미국이 원한 것은 오로지 '무조건'항복이었으며 일본에게 항복을 종용하기 위해 이미 일본은 이오지마가 당한 시점부터 싸그리 불바다가 되고 있었습니다.
일본인들 중에 그래도 '민간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미군은 더이상 '민간인'이란게 무의미하단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래서 이미 1945년 3월부터 미군은 도쿄에 대공습을 시작으로 정말 일본인들을 싸그리 죽여버리기 시작합니다. 나중에 도쿄 대공습에 대해 다룰 일이 있다면 다시 다루고 싶지만 여튼 이미 미국은 일본에 대공습을 가해 정말 대도시란 대도시는 모조리 불태워버리며 기아작전을 통해 그들의 목구녕을 막아버렸으며 굶어죽어가는 그들이 다시 일어날까봐 중소도시까지 모조리 폭격합니다. 이럼에도 일본은 항복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전쟁에 민간인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 글의 진짜 주인공, 정말 오랜만에 언급된 듯한 엔터프라이즈는 사실 오키나와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게 됩니다. 기쿠스이 작전의 일환으로 시작된 일본의 카미카제 공격을 받아내던 엔터프라이즈는 총 26기의 일본 함재기들의 공격을 받게 되지만 늘 그랬듯이 쉽게 그들을 물리치고 다시 오키나와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싶었으나... 일본군의 아직도 남아있던 에이스 도미야스 슌스케 중위는 26기와 함께 돌진하다가 집중포화를 피해 구름 속에 몸을 숨깁니다. 한동안 구름 속에서 엔터프라이즈의 위치를 파악하던 그는 이후 엔터프라이즈의 경계가 다소 느슨해진 틈을 타 급강하 폭격을 시도.
빠르게 급강하하여 엔터프라이즈의 전방 엘리베이터를 향해 자살돌격을 감행합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노리면서 폭탄을 분리시켜 내부 격납고까지 피해가 가도록 유도한 고난도 기술을 선보였죠. 이로인해 엔터프라이즈의 엘리베이터가 하늘 높이 치솟아 날라가버리고 화재가 발생하여 연기가 높게 치솟으나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합니다만, 전설의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들 답게 빠른 속도로 화재를 진압하고 비행갑판을 보수하고 침수구역의 물을 빼내는 등 이미 데미지 컨트롤에 있어서는 장인 수준인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들은 엔터프라이즈를 다시 한번 무사히 살려냅니다.
그러나 다시 대대적인 보수가 필요했던 시점이었기에 엔터프라이즈는 다시 귀항해야만 했고 해군공창에서 수리를 받던 엔터프라이즈는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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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Jday를 맞이합니다. 일본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연이은 원자탄을 맞고 결국 히로히토의 무조건 항복 선언문이 라디오를 통해 낭독됩니다. 신형 전함 미주리에서 맥아더와 니미츠를 비롯한 연합군 지휘관들 앞에서 일본군은 항복서명을 하게 됩니다. 이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장소에 엔터프라이즈는 차마 참가하지 못했으나,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은 엔터프라이즈가 결국 일본을 이겼다는 그 사실입니다.
엔터프라이즈는 미군이 가장 열악한 상황에서 언제나 1선에서 싸운 용맹한 함선이었고, 그녀가 걸어온 행보 그 자체가 태평양 전쟁이었습니다. 그녀가 격추시킨 항공기는 911기이며 91척의 적함선을 격침시켰고 최소 192척의 적함에 피해를 주었습니다. 물론 그녀의 전과가 태평양 전쟁 최대의 전과는 아니며 에식스급 항공모함 호넷(요크타운급 호넷의 이름을 계승했다.)이 그 주인공이지만, 잠재적 전과는 훨씬 많고 무엇보다 엔터프라이즈가 전선에서 싸운 시절은 애송이 에식스급 따위가 참여한 시기보다 훨씬 열악하고 최악의 상황에서 홀로 싸워나간 시절이었습니다.
엔터프라이즈가 일본을 이긴 이유는 요크타운 급의 우수한 설계와 우수한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들 그리고 그녀만이 가진 미친 행운이 엔터프라이즈가 마지막까지 투쟁을 할 수 있었던 이유였을 겁니다. 물론 엔터프라이즈 뿐 아니라 새러토가와 레인저 등 개전 이전부터 활동했다가 종전까지 살아남은 항공모함들은 더 있지만, 미드웨이에서 승리를 장식한 것은 엔터프라이즈였고 새러토가가 과달카날에서 어뢰맞고 나가리 된 상황에서도 그들을 물리쳤던 것은 엔터프라이즈였습니다.
그러나 엔터프라이즈의 최후는 다소 쓸쓸했습니다. 엔터프라이즈는 전 후 수송함으로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던 미군들을 다시 귀환시키는 일을 했으나, 점점 제트기가 등장하고 덩치가 커져만 가는 항공모함들 사이에서 엔터프라이즈는 더 이상 남아있을 수 없었죠. 결국 엔터프라이즈의 스크랩 처리가 결정되고 1958년 마지막 항해를 멋지게 마칩니다.
엔터프라이즈의 용사들은 엔터프라이즈를 지키기 위해 모금 운동을 하고 의회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필사적으로 엔터프라이즈를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돈이 죄라고 모금운동으로 모은 돈은 부족했고 이 역사적인 함은 결국 스크랩 처리를 당하고 맙니다.
안녕... 엔터프라이즈..
엔터프라이즈가 해체될 당시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 출신까지 그 해체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영웅을 그들이 보내주겠다는 의미에서였죠. 물론 엔터프라이즈의 영광스러운 이름은 이후 계속 최신예 항공모함들에게로 이어져 현재 미국의 최신예 항공모함은 제럴드 R.포드급 항공모함의 3번함으로 엔터프라이즈의 이름은 계승되는 것이 확정됬습니다. 아쉬운 점은 범선은 컨스티튜션 함도 여전히 살려서 굴리고 전함인 미주리함도 개수하면서 버티다가 다시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남겨뒀으면서 이 전설적인 함을 어째서 그땐 그렇게 쉽게 포기할 생각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뭐 어찌보면 영웅의 최후는 늘 씁슬한 맛이 남는 법인거 같기도 합니다. 우리의 엔터프라이즈의 이름은 그래도 계속 남게 되니 위안을 삼기도 하고요. 우주로까지 떠난 엔터프라이즈니까요.
우주로 떠나버린 엔터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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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엔터프라이즈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났습니다. 약간 용두사미같은 이야기였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서 썻다고 생각합니다. 밀게 여러분들의 추천과 성원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모자란 글솜씨에도 재밌다고 해주시는 여러분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모르겠지만, 뭔가 땡기는게 있다면 하게 되겠지요. 금요일 버티고 신나는 토요일을 기다리며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