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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향신료 후추 (feat. 역사)
게시물ID : cook_21879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세탄타
추천 : 19
조회수 : 2668회
댓글수 : 7개
등록시간 : 2018/06/13 05: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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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waeha4sgz2.jpg

우리가 알고 있는 후추의 색상은 검정색일겁니다 하지만 사실 후추는 붉은색이라고 할 수 있죠
그 이유를 천천히 알아보겠습니다






aweg3.jpg

15세기 이전까지는 산업혁명전이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냉장고와 같은 물건이 없었을겁니다
(산업혁명은 18세기 후 ~ 19세기)






그렇다면 신선도를 유지해야하는 식품들을 어떻게 보관했을까요?







이를테면 생선이나 고기같은 식자재들은 냉장이나 냉동보관하지 않을 경우 하루내로 부패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간고등어도 사실은 부패를 막기 위해서 염장을 하던 것인데 

31qaw.jpg

사실은 유럽에서도 15세기 전후로 소금은 엄청나게 귀한 물품이였습니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는 소금과 자녀를 교환할 정도로 비싼 물품이였음)




그외에도 꿀에 절여먹는 방식으로 부패를 막기도 했지만 마찬가지로 꿀도 오늘날과는 다르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매우 한정적이였습니다




그러던 중 인도를 통해서 흘러들어온 후추라는 향신료가 유럽사회에 퍼지게 되었고

esrh3a2.jpg

유럽인들은 후추라는 향신료에 눈을 뜨게 됩니다 (개안! )






유럽인들이 단순히 부패를 막기 위해 사용했던 후추는 점점 유행이 퍼져가기 시작했고 어느순간 식탁에 없어서는 안되는
재료가 되어버렸죠 
(귀족 이상의 유럽인들만이 귀한 후추를 맛볼 수 있었고, 이러한 식문화는 프랑스의 대혁명 이후부터 대중에게 퍼짐)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rsh34e.jpg

바로 오스만 투르크의 세력이 커지고 이것이 유럽의 교회와 종교적 마찰을 빚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이것이 왜 문제가 되냐면..





바로 

212a.jpg

육로를 거쳐서 지나가려면 바로 오스만 투르크 영지를 지나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통상적으로는 무역 캐러밴(낙타 운송)은 불가침으로 암묵적인 룰을 지키고 있지만





관계가 나빠질때는 캐러밴까지 급습하게 되는등 점점 후추를 얻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그런 이유로 유럽인들은 후추에 대한 열망을 느끼게 됩니다
(원래 있다가 없으면 매우 아쉬운법)


오스만과의 관계가 나빠지면서 후추를 얻기 힘들어지자 이 틈을 노려서 부강해진 나라가 있습니다

aewha34hazwe.jpg

바로 물의 도시 베네치아입니다
(또는 베니스)


이 도시는 아주 특수한 위치에 있는데

esrh4azhde3.gif

지도상으로 보면 오스만의 영향권을 벗어나서 처음 도달하는 유럽의 도시국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간헐적으로 들어오는 후추는 베네치아까지만 도달했고, 그 뒤의 유럽 국가들에게는 전달되기 힘들어졌죠




그런 이유로 후추 한포대가 말 2필이상과 교환이 되는등 말도 안되는 가격 책정이 되고야맙니다
(이 시기가 베네치아의 전성기이며 베네치아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다르게 오스만에 대해서 중립적이였음)



유럽인들은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후추 가격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오죽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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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전쟁이 후추에 대한 열망이 섞인 전쟁이라고도 표현할 정도였죠
또 다르게는 십자군 전쟁을 포함한 이후의 일련의 사건을 후추전쟁이라고도 합니다
(십자군전쟁에 대한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후추도 분명히 그 한 축을 담당했음)




후추를 향한 열망 때문이었는지 십자군 전쟁은 단순히 종교 전쟁이 아니였습니다
학살 그 자체였고, 본질이 무엇인지 어느순간 잊혀질 정도로 이슬람과 교황청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끔 돌아갔죠
(성전이라고 일컫던 십자군 전쟁은 가는 곳마다 약탈을 자행했고 머물던 도시들을 아무렇지 않게 파괴하고 다녔죠)



부족한 병사의 수를 채우기 위해서 범죄자들에게 전쟁 참여를 할 경우 죄를 사하여주겠다는 약속까지 하는 등
교회는 너무 많은 이들의 희생을 강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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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 후반기 들어서는 소년 십자군까지 등장했고 잔혹하게도 그들을 태웠던 배의 선장들이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해서 소년들을 노예상인들에게 팔아버리기도 했죠




하지만 이런 수많은 피를 흘린 전쟁을 통해서도 오스만과의 대치는 쉽사리 종지부를 찍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누군가 나서는 이가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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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포르투갈 항해자 바스코 다 가마입니다
당시의 포르투갈은 옆나라 에스파냐에 비해서 한참 보잘 것 없는 나라였습니다
(당시 재정이 파탄난 지경)





그런 바스코 다 가마는 상식을 깨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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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해상을 통해서 후추를 운반한다는 계획이였죠




이게 얼마나 대단하냐면 당시의 유럽인들 사이에서는 지구가 평면이며, 어느 순간에 다다르면 폭포처럼 쏟아져서 죽어버릴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있을 정도로 먼 바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미지의 바다를 바스코 다 가마는 여행을 떠났고 곧 인도에 도착해서 후추를 포르투갈로 가져왔죠





보잘 것 없는 작은 나라의 항해자가 이런 신항로를 개척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교과서에서만 배웠지만 왠지 시험에서 나오면 기억도 나질 않고, 틀렸던 바로 그 문제
희망봉의 신항로 개척자 포르투갈 항해자 바스코 다 가마 되시겠습니다
(밑줄 치고 외우세요 시험에 나옵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간다고 하였지요




정말 유럽도 그랬습니다
이후로 옆나라 에스파냐부터 섬나라 영국, 프랑스 등 많은 나라들이 바다를 향해 떠났습니다
바로 이 사건을 우리는 대항해시대라고 하죠
(밑줄 치고 외우세요 이것도 시험에 나옵니다)

serh45seh.jpg

또한 인도에 거점을 둔 무역회사인 동인도 회사는 유럽 국가들과 수 많은 무역 전쟁을 야기했습니다


십자군 전쟁과 동인도 회사까지 후추 때문에 엄청난 피가 흘려졌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럽인들이 그러한 시대속에서 나름대로의 방식을 찾아내려 노력했고 그 결과가 역사속에 있습니다




물론 대항해시대 자체는 역사에서 큰 의미를 지니지만, 세계라는 틀에서 보자면 이후에는 더욱 잔혹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오늘날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있는 이 후추

esrh42azweh.jpg

이제 보이지 않는 붉은색의 의미를 이제는 아시겠죠?






PS. 잠이 오지 않아서 끄적여보다가 결국엔 해가 뜰 징조가 보이니 선거하고 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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