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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러시아간 첫 조약. 나비효과?
게시물ID : history_2187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푸쉬킨
추천 : 1
조회수 : 117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7/03 23:54:42
 
모피를 찾아 시베리아를 정복하며 동진한 러시아는
 
드디어 극동에서 청나라와 조우 하게 됩니다.
 
처음 러시아 짜르의 국서를 전달하며 패기를 보였던 러시아는
 
청나라의 반격으로 알바진 요새가 포위되며 불리한 상황에 처했고
 
결국 양국간 최초의 조약을 맺게 되죠
 
 
네르친스크 조약
 
 
양국간 언어적 문제도 있었지만
 
양국의 입장은 전혀 달랐습니다
 
러시아 입장 : 극동 진출에서 노력한 흑룡강(아무르강) 유역의 다수 교두보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러시아 내부 문제도 발생하였고 흑룡강(아무르강) 유역에서 사실상 청나라에 밀렸으니
 
양보하며 최대한 이익을 얻는 선에서 협상을 마무리 하자
 
청나라 입장 : 어서 준가르부도 제압해야 하고 그냥 시끄러운 북방 문제를 이 참에 해결하자
 
 
이때 청나라는 무력을 앞세워 첫 회담에서 강경한 자세를 취합니다
 
" 청나라는 원나라를 계승한 나라다 바이칼호랑 레나강 동쪽 지역은 다 청나라 땅임"
 
 
러시아 입장에서 용납될 수 없는 조건이었고 몇 차례 결렬 끝에
 
러시아가 양보하고 청나라의 동의를 구하는 선에서 대흥안령(스타노보이) 산맥을 기준으로
 
청나라와 러시아간 국경선이 성립하게 됩니다.
 
흑룡강 이북으로 상당히 후퇴를 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극동지역 교두보 전부를 상실한 것은 아니죠 
 
 
청나라 입장에서 보면 조약의 전반 조건에서 목적은 준가르 부를 제압하기 위해
 
북방을 안정 시키는게 중요하였을 뿐
 
흑룡강이던 바이칼 호던 청나라 관민이 거주하는 지역도아니고
 
사실 애초에 강경한 자세를 취한 것도
 
"바이칼호" ? 쓸모없는 지역이고 "레나강 ? 이런 강이 대체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르는" 그냥 던진 말이었습니다
 
이는 러시아측도 마찬가지였지만 흑룡강 주변이 아니라 바이칼 호 주변까지
 
후퇴하게 되면 기존에 흑룡강(아무르강) 유역 주변에 구축한 광산, 소금호, 모피산지 등
 
너무 잃는게 많았음으로 허용할 수 있는 조건은 아니였습니다.
 
 
물론 네르친스크 조약에서 강희제가 통치하는 청나라가
 
사실상 러시아를 일방적으로 무력 제압하며 국경을 확정한 것이었음으로
 
보다 강경하게 나갔으면 어찌되었을지 모르지만
 
북방의 러시아인들과의 소소한 국경선 분쟁 보다는
 
청나라 강희제는 준가르부 정벌과 안정 시급했음으로 마무리 짖고
 
이로써 동아시아에서 최초의 중국 러시아간 조약인 네르친스크 조약이 체결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국경선으로 말이죠
 
 
네르친스크 조약.jpg
 
이후 러시아는 보다 동진하여 흑룡강을 경계로 삼게 되고 나아가 북경조약으로 연해주도 먹게 되죠
 
우리가 아는 현대 러시아 제국의 극동지방 국경이 이때 확정됩니다.
 
 
하지만 잠시 돌아가 짚어 볼 것이
 
네르친스크 조약 첫 회담에서 양국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자세히는 몰랐지만
 
청나라 측에서 강경한 자세를 취하며 막 던졌던 말
 
" 바이칼 호와 레나강 동쪽은 청나라 영토다!" 했을 때
 
레나강이 어떤 강이었냐면........
 
 
레나강.gif
 
시베리아를 가로 질러 북극으로 가는 엄청난 강이었습니다..
 
레나강 동쪽 = 시베리아 전체.
 
 
 
회담 첫날의 선택으로 근대 역사 또는 현대 국경지도가 완전히 바뀌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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