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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암살의 배경-만주계획과 노선전환
게시물ID : history_2180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lvarez
추천 : 5
조회수 : 94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06/29 15: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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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계획이란, 1947년에서 1748년 초까지 김구를 비롯한 군사주의 성향을 지닌 우익 민족주의자들이 추진한 만주에서의 군사계획을 뜻한다. 임정은 일제시기 말 광복군의 창설과 아울러 만주에서의 군대육성과 국내진공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만주계획은 그것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군사계획이었다.

만주계획은 당시 우익 군사주의자들이 고민하고 있던 남한․미국․중국을 축으로 한 ‘동북아 반공군사동맹’의 수립과 연관을 맺고 있었다. 
김구를 비롯하여 이청천, 이범석 등 중국 국민당 지역에서 활동했었던 우익 민족주의자들은 북한을 무력으로 공격할 뿐만 아니라 국부군과 연계하여 중공군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구체적인 계획 중 하나로 만주계획이 수립된 것이었다. 

이 계획은 실행으로 옮겨져 1947년 4월 27일 심양(瀋陽)에서 장연지구민주자위군(長延地區民主自衛軍)(이하 장연군)이 창설되었다. 
김구는 여러 차례 연락원을 파견하며 조직을 주도했다. 
장연군은 5개 대대 약 900여 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주로 광복군과 조선혁명군 출신 장교들이 간부를 맡았다.

장연군의 임무는 
① 만주 동북지방의 한국교민 보호 및 선무활동, 
② 조선의용군 포로 수용 및 교도, 
③ 유사시 남한 국방경비대와 협공하여 북한 공산군을 섬멸하고 통일정부 수립에 기여한다는 것 등이었다.

장연군은 1년 반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운영되며 뚜렷한 성과를 남기지는 못했지만, 
당시 임정의 건국구상과 통일방안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임정세력은 1947년 말까지 강경한 반소․반공․반북노선을 견지하며 한중 반공군사동맹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구가 남북협상 이전까지 대북 타격정책과 아울러 만주계획을 추진하는 등 강경한 반공․반북노선을 견지했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48년 1월 김구는 이승만과 결별하고 중도파와 합작하여 남북협상에 나서면서 만주계획 추진 중단 의사를 밝혔다.

김구의 군사적 반공․반북노선에 공명했던 우익 군사주의자들은 김구의 노선 전환을 계기로 이탈했지만, 
결국 그 정도로 관계가 마무리되지는 않았다. 

이들 중 많은 인물들이 김구 암살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보면, 이들이 김구에 대한 실망을 넘어 증오까지도 가지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김구 암살에는 백의사와 장연군에 관련된 인사들이 다수 가담했다. 

이승만세력은 이들을 통해 더욱 손쉽게 김구의 뒤를 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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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고한 극우반공주의자였던 김구는 단정반대와 통일정부 수립으로 노선을 바꾸면서, 그의 강력한 지지자였던 우익군사주의자들의 지지를 상실하고 이들이 이승만지지로 돌아서면서 급격히 지지기반을 상실하고 결국 암살을 맞이하게 됨.

이 얘기는 그냥 개인블로그 주장은 아니고
저명한 한국현대사 역사학자인 정병준의 2005년 논문 백범 김구암살 배경과 백의사에 상세하게 나옵니다
출처 http://jayouropen.egloos.com/4458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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