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단, 음식에 대해 호불호가 별로 없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뭔가를 되게 맛있게 먹으면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음식의 맛과 함께
그 날의 날씨, 그 날의 분위기, 그 날의 시공간, 함께 식사를 나눈 사람들...
이런 것들이 많이 기억에 남는 편이다.
이를테면
파리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은? 이라는 질문에 주저없이 '홍합탕'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홍합이래봐야 흔하디 흔한 재료이고 또 이렇다할 조리법이없어서 음식의 천국인 파리에서 굳이? 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추운 겨울,
지하철을 타기도 애매하고, 걷기는 또 좀 멀지만 그래도 걸을 수 밖에 없는
(파리여행을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파리시내를 한참을 걸어 저녁때쯤 도착한 샹젤리제 거리.
그리고 그 거리의 끝에 개선문.
그리고 그 개선문 앞에 벨기에 홍합집. 30분을 넘게 추운 거리에서 기다려 먹었던 뜨끈한 그 느낌.
뭐 이런식이다.
얘기가 옆으로 샜는데...
아무튼 지난 가을에 그날도 비가 추적추적 왔던것 같다.
외국에서 오랫만에 온 남친과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동대문 뒷골목에 있는 '닭한마리'라는 음식을 먹게 되었다.
(물론 식당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동대문 쇼핑몰과 인접한 골목 안에 있는 식당)
물론 나는 음식 이름이 일단 '닭한마리'라는 점에서 매우 호기심을 자극했는데,
결국 나온걸 보니 큰 양푼냄비에 닭 한마리가 토막으로 들어가있는 곰탕이었다.
그냥 닭곰탕이다.
그래도 뭔가 부추였나? 아무튼 곁들여서 고기를 발려먹고 그 국물에 칼국수를 말아 먹는 방식인데
함께 나오는 겉절이 김치가 환상적으로 맛있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뜨끈한 국물은 끝없이 들어갔고,
북적대는 식당에서 우리의 대화도 끝없이 이어졌었다.
가격은 2만원.
닭 한마리 값을 생각하면 결코 싸진 않지만 그래도 둘이서 한끼를 나름 '고기'와 함께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꽤 만족스러운 식당이다.
오늘처럼 비오고 싸늘한 날마다 그 닭한마리가 생각나면 어떡하지.
헤어진 남자친구가 그리우면 어떡하지.
아 배고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