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토대 교수 우메하라 스에지(1893~1983) 이분도 대단하신듯..한국사학계에 2015년까지 영향을 끼치셨으니...ㅡ
"금관총 목곽 위에 4m이상 두터운 강돌층 없다"
한겨레 | 입력 2015.06.23. 20:00 | 수정 2015.06.23. 21:40
경주 금관총 재발굴 결과 발표
반원형 아닌 사각형 평면 봉분
돌무지덧널 무덤 얼개에 대한
일 학자 학설 따른 통설 깨져
'공사용 비게틀' 나무 구조물 흔적
공법의 수수께끼도 처음 풀려
"90년 이상 신라 고분들을 짓눌러온 일본 학자의 잘못된 학설을 이제야 바로잡게 됐습니다."
23일 낮 경주 노서동 금관총 발굴 현장에서 만난 조사단원들은 묵은 체증을 덜어낸 듯한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3월 94년 만에 금관총 재발굴에 착수한 국립중앙박물관이 석달여만에 조사결과를 공개한 이날 현장설명회에서는 기존 고고학계에서 깜짝 놀랄만한 내용이 튀어나왔다.
무엇보다 신라고분의 특징적 형식인 돌무지덧널 무덤(무덤 중심의 관과 목곽 주위에 강돌을 쌓은 뒤 흙으로 덮은 무덤)의 얼개에 대한 학계의 절대적 통설이 송두리째 뒤집혔다. 도굴 등을 막기 위해 관, 부장품을 넣은 목곽 위에 4m이상 강돌층을 쌓고 흙을 덮어 반원형 봉분을 만들었다는 상식이 엉터리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조사단이 금관총을 재발굴한 결과 목곽 위엔 한두줄 정도의 얇팍한 돌들만 깔려있었다. 두터운 돌층은 옆 사방으로만 쌓았고 돌무지 봉분의 모양도 윗부분이 평평한 사각형 평면임이 밝혀졌다.
육중한 돌무더기가 위에서 관과 목곽을 내리누르는 구조가 아니었다는 게 명확해진 셈이다. 조사단장인 송의정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연구부장은 "70년대 황남대총 조사 때도 비슷한 구조가 나왔으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며 "금관총 재발굴을 계기로 신라돌무지고분 구조에 대한 기본 인식을 바꿀 수밖에 없게 됐다"고 했다.
국내 고고학계는 1921년 신라 금관 등의 부장품만 수습한 채로 금관총을 졸속발굴한 뒤 보고서에서 목곽 위에 돌층이 쌓인 고분 단면도를 급조했던 일본 교토대 교수 우메하라 스에지(1893~1983)의 학설을 별다른 비판 없이 통설로 추종해왔다. 이번 발굴로 교과서 등에 기술했던 신라고분 구조에 대한 내용을 수정해야하고 경주의 명소인 대능원의 천마총 전시관 구조도 당장 바꿀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