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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왕후가 건재했다 해서 과연 일본의 야욕을 막을 수 있었을가요?
게시물ID : history_216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diogenes
추천 : 0
조회수 : 501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5/06/23 22:57:09
어차피 러시아가 조선에 손을 뻗은 것은 조선의 독립을 보전해주고자 함이 아니었죠.
 
청일전쟁으로 인한 일본의 팽창을 시기하여 3국간섭을 이끌어내 일본의 야욕을 눌렀던 러시아는 그 댓가로 청나라로부터 만주지역에 광범위한 이권을 강탈해가죠.
 
조선에서는 단지 일본이 러시아가 주도한 삼국간섭에 움찔하는 모습만 보았을 뿐입니다. 문제는 러시아는 딱 필요한 만큼만 조선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뿐이라는 거죠. 이 점은 그 똑똑하신 조선의 왕비가 아무리 설레발을 치고 머 한다 해서 달라질 건 없지 않나 싶습니다.
 
어차피 러시아의 진출은 민비가 살아있던 죽었던 예정된 일이라 봐야할 듯 싶습니다.
 
을미사변을 통해 민비를 제거한 후 일본이 얻어낸 건 잠시동안의 친일내각 성립을 얻어낸 것입니다만, 그 댓가로 조선 조야의 일치된 반감을 얻어냈을 뿐입니다. 오히려 조선이 러시아에 경도되게 했던 거죠.
 
결국 아관파천을 감행한 고종에 의해 친일내각은 타도되고 내각의 여러 용인들은 분노한 군중의 폭행에 타살되고 신정권에 의해 체포되어 처형되었고 몇몇 인사가 일본으로 몸을 피할 수 있었지요.
 
잠깐동안 조선에 세워두었던 친일정부는 일거에  붕괴되고 이와 함께 조선에 대한 영향력도 급속히 상실되고 맙니다.
 
소탐대실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전까지 조선의 개화지식인들은 대부분 친일파였습니다. 왕비를 참살하는 만행에 가담한 꼴이 되고 만 것이 되고 말기 때문에 이후 개화지식인들은 더 이상 당당하게 친일을 내세울 수 없는 몸이되고 말았죠. 조선 민중의 적개심을 받는 인사가 어떻게 조선을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 일본에게 남은 것은 결국 강권에 의한 폭력통치의 길 밖에 남은 것이 없게 되고 만 거지요.
 
어떻게 보면 일본제국주의가  본격적으로 마각을 드러내게 된 게 바로 이 을미사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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